기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그리스도의 것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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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박힘으로 그리스도의 것이 됨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우리는 죽음으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 3:27).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 6:3)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 7).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의 경험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아직도 육신 가운데 살고 있고 외모를 보아도 다른 사람과 똑같지만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며 성령 안에 살고 있다(롬 8:9 참조). 육신 가운데 살지만 육신에 속한 삶을 살지 않으며 육신이 그를 다스리지 못하므로 육신의 일에 관해서는 죽은 것이다.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라”(롬 8:10).
성령 안에서 행함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고 안 사는 것에 관해서 의심이 있는가? 조금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기 때문에 성령에게 복종해야 한다. 오직 성령의 능력―태초에 깊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며 혼돈한 가운데서 질서를 가져오신 똑같은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어느 사람이나 살 수 있다.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4S=Job/33/4e). 똑같은 기운에 의하여 하늘들이 지어졌었다(시 33:6 참조). 하나님의 영은 우주의 생명이다. 우리의 코에 있는 하나님의 영(:3S=Job/27/3e 참조)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킨다. 성령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임재이며 그 안에서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행 17:28)다. 우리는 살기 위하여 성령을 의존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서 행하고 성령의 지도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 예배”이다.
얼마나 놀라운 가능성이 여기에 제시되고 있는가! 육신에 속하여 살면서 육신이 영인 것처럼 한다.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는 신령한 자니라”(고전 15:44, 46). 지금은 육의 몸을 가지고 있으나 그리스도의 모든 참된 추종자들은 부활시에 신령한 몸을 받을 것이다(고전 15:42-44 참조). 그렇지만 이생에서 육의 몸으로도 미래에 신령한 몸으로 살 것처럼 신령하여야 한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롬 8:9)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고전 2:14, 15).
“사람이 거듭(위에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3, 6) 우리가 육으로 태어날 때에는 갈라디아 5장에서 열거하고 있는 모든 악을 물려 받는다. 우리는 육에 속한다. 썩은 것이 우리 안에서 지배한다. 다시 태어남으로 하나님의 충만함을 물려 받고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벧후 1:4) 하였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엡 4:22)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벗어 버리고”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롬 6:6)다. 성령 안에 거하고 성령 안에서 행할 때에 우리가 실제로 죽어 무덤에 묻힌 것처럼 육신과 그 정욕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권세가 없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영이 홀로 육신을 지배한다. 성령은 육신을 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육신은 여전히 썩어 없어질 것이며 여전히 정욕으로 가득하며 여전히 성령을 거역하려고 하나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칠 때에 성령이 육신을 저지시킨다. 만일 우리가 머뭇거리고 우리의 마음이 애굽으로 되돌아 가거나 자만하고 성령을 의지하기를 게을리한다면 그때 우리는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고 다시 범죄자가 된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며 인간의 육신으로 신령한 삶을 사는 능력을 과시하셨다.
이것은 육신이 되신 말씀이시며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게 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이 사랑과 온유의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실 때에 우리는 헛된 영광을 바라지 않으며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될 것이며 누구나 이것을 시인하여 아무도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뽐낼 마음을 조금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그리스도의 생명―을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신다.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계 22:17; 요일 1:2; 고후 9:15).
십자가의 영광
5장의 마지막 부분과 6장에서 본 편지서의 실천적인 면을 공부한다. 성급한 독자들은 6장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후반부는 실천적인 신령한 생활을 다루고 전반부는 이론적인 교리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것은 큰 잘못이다. 성경의 어느 곳에도 이론은 없다. 그것은 모두 실천해야 할 사실이다. 성경의 어느 곳에도 영적이 아니고 실제적이 아닌 부분이 없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모두 교리이다. 교리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산에서 무리들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가 “입을 열어 가르쳤”기 때문에 교리라고 불리운다. 어떤 사람은 교리에 대하여 일종의 멸시를 나타내고 그것이 마치 난해한 신학의 영역에 속하고 매일의 실생활에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리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리스도의 설교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는 항상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모든 참 교리는 실천해야 한다. 교리는 오직 실천하도록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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