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A eNews KCA eNews – 2016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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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성도 여러분, 그리고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완연한 가을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늘을 보는 일도 잦아지고 그때마다 끝없는 경외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지난 한 달 저의 일정을 중심으로 미주 교회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즐겁게 읽어주시고 기도의 제목으로 삼아주시기 바랍니다.
1. 글렌데일 교회 ‘카이암 안식일’ 방문 설교 (10. 1)
지난 달 eNews에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다시 한 번 카이암 사업을 위해 도와주신 최진성 목사님과 헌신하신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 카스다 운영위원회 (10.19)
전화회의로 카스다 운영위원회(위원장 김영진 목사)가 열렸습니다. 카스다 운영 약관과 게시판 운영에 대한 의논이 있었습니다. 수고하신 김영진 목사님과 운영위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참석자 –김영진(위원장), 김정한, 박인승, 권오영 등)
3. Church Park 목사님 면담 (10.21)
개신교회에서 목회하시던 Church Park목사님을 만나서 오찬을 나누며 개인의 간증과 향후 봉사 계획 등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개신교회 일선 사역과 신학교 교수로 일하신 분이 재림 교회 새 가족이 되어 그분의 관점으로 보는 재림교회에 관하여 이야기하실 때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귀한 만남을 갖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4. 랄리 교회 청빙 위원회 (10.22)
전화회의로 랄리 교회 청빙위원회(위원장 박홍석 장로)가 열려서 참석했습니다. 합회의 지원 규모와 후보자 추천 등의 안건을 다루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저나 박홍석 장로님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5. 북미지회 소수민족 지도자 회의 (10.24)
매년 지회 회의실에서 열리는 이민자 교회 지도자 회의(의장 Ernest Castillo 목사)에 참석했습니다. 각 단체들이 사업 보고를 하고 내년 사업 계획을 지회 차원에서 의논하는 자리입니다. 이 회의에는 한국 교회를 포함해서 히스패닉, 아시안, 남아시안, 난민 선교, 루마니안, 그리스, 짐바브웨,포르투갈 언어권 등의 사역 책임자들이 참석합니다.
6. 북미지회 연례 행정위원회(NAD Year End Meeting) (10.27-11.1)
북미지회 대강당에서 열린 연례 행정위원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번 회의는 작년에 지회 새 회기를 시작하고 열린 첫번째 행정위원회(의장 Dan Jackson 지회장 목사)였습니다. 지회가 십일조의 1퍼센트를 지방 교회 사역을 위해 환원하는 안건 등이었습니다. 내년 초 지회 본부가 대총회 건물에서 이사를 나와 새로 마련한 건물로 입주할 예정입니다.
7. 와싱톤-스펜서빌 교회 설교 (10.29)
지회 연례 회의가 열리는 기간에 안식일을 맞아 와싱턴 스펜서빌 교회(담임 - 윤영화 목사)를 방문하고 안식일 예배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주신 윤 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8. 볼티모어 교회 설교 (10.29)
볼티모어 교회(담임 설대환 목사) 초청으로 오후에 드리는 안식일 예배에 참석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밸리 교회로 전근이 결정된 설대환 목사님이 그 주말에 캘리포니아를 방문중이어서 뵙지 못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 임흥순 집사님 댁에서 열린 30-40 성도님들의 저녁 교제 모임에 참석해서 현실적인 신앙 문제에 대하여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진 것도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9. 성우회 설교 (11. 2)
캘리포니아 팜스프링(Desert Hot Springs)에서 열린 전국 성우회(회장 조광림 목사) 특별 집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130여분의 은퇴 사역자, 교역자 가족들이 참석한 이번 집회는 전국 단위로 열린 첫 성우회 모임이어서 뜻이 깊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30여년만에 만난 옛 동역자들도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이 집회를 위해 수고하신 조광림 목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10. ‘오늘의 신앙’ 방송 녹음 (11.3)
세리토스 교회에서 ‘오늘의 신앙’ 책임 목사 이준석 목사님의 도움으로 ‘오늘의 신앙’ 설교 방송을 녹음하였습니다. 청중이 없는 가운데 카메라 앞에서 설교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시청하게 될 분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귀중한 도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준석 목사님의 사역에 감사드립니다.
11. 10월 목회자 인사 이동 소식
1) 청빙이 진행 중인 교회 – 그린스보로 교회, 랄리 교회, 호놀룰루 교회, 볼티모어 교회, 트로이교회, 괌 교회 등
12. 끝머리 인사
우리는 실생활의 각 분야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삽니다. 아프면 의사를 찾아가고 치아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치과의사를 찾아갑니다. 외국으로 여행할 때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조종사가 조종하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합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음식만큼 중요해진 인터넷이나 컴퓨터 등의 기술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사용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보험 구입, 요가 레슨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우리 생활 속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 많아질 수록 예수님께 기도하는 일은 적어지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비가 오고 강풍을 비켜가게 해 줄 전문가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절실한 기도를 했습니다.
절박함의 절대 총량, 과연 감소하는가?
문명의 발달로 기도 생활이 경시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과연 문명의 발달로 인간 본연의 절박함의 총량이 감소할까요? 인간 본연의 절박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요? 남녀빈부를 막론하고 절박함을 겪는 분야는 어디인가요? 그리고 인간의 절박함은 감소하는 것인가요, 잊혀지는 것인가요? 아니면 둘 다인가요?
절박함은 고통인가, 환희인가?
절박함이란 마음 속에 있는 무거운 부담감입니다. 몇 해 전에 들은 내가 알고 있는 한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하면서 개인 사업도 잘 꾸려나가는 형제였습니다. 그 형제가 어느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한적한 곳에 문득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 날 사업에도 가정에도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평범하지만 괜찮은 하루였습니다. 갑자기 차 안에서 혼자 소리내어 울었던 그 일은 그 형제 자신에게도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 본연의 절박함의 총량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 것을알게 되었습니다. 밑도끝도 없이 울었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와 함께 울고 있는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그와 함께 울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왜 그 형제의 짧게 진술한 경험담에 그토록 깊이 공감하며 몰입했을까? 그 형제는 내 속에 눌려있었던 절박함을 끄집어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억누르고 있었던 절박함, 외면하던 나의 절박함이 그 순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나는 그 형제가 차를 세우고 울고 있을 때 나도 함께 울고 있는 사람임을 다른 사람에게는 숨겼는지 몰라도 나 자신에게는 숨길 수 없었습니다.
첫째, 죄책감
이 죄책감의 굴레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리스도의 긍휼에 잠기는 경험이 충분하지 않을 때마다 숨도 못 쉬고 있는 가엾은 자신의 영혼을 보게 됩니다. 이 절박함은 문명 개발과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속에 있습니다.
이 숨막힘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구주이신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정상적인 판단력이 작동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구주 예수님이 절박하게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시편32편 1-3절)
둘째, 이기적 동기가 충돌하는 인간 관계
지속 가능한 상호 존중과 사랑의 관계가 절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양질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즐거움이 부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무관심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건강한 상호 관심을 나누는 것이 우리 삶에 중요합니다. 이것을 막는 것이 자기 중심적 사고의 틀입니다. 자아가 우주의 중심이 되어 모든 관계에서 자신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희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황금율은 사문화되었습니다. 이런 이기심으로 결국 타인에게 실망을 주는데 더 슬픈 사실은 이런 이기심으로 자신이 먼저 가해자가 되기 전에 희생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세계관이 흔들리는 위험은 한 번도 감소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자기중심적 사고에 우겨쌈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절박함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립보서 2장 1-4절)
셋째, ‘끝’을 향해 가는 사람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일이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젠가 끝날 것입니다. 푸른 아늘 아래에서 공원을 걸을 때, 사랑하는 가족들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잠길 때, 존중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할 때에도 이 행복한 시간이 시간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짓누릅니다.홀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약속을 주장할 때 그분의 약속이 거듭거듭 재확인됩니다. 이런 유의 절박함 역시 조금도 총량이 줄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변화와 발전도 ‘끝’에 대한 운명을 고쳐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죄인의 운명적 행진을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STOP”이라는 큰 글씨로 적은 푯말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영생은 약속이기 이전에 명령이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편 133편 1-3절)
영생의 명령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은 우리의 요청을 받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렇게 짙고 무거운 줄도 모를 때 하나님은 우리와 헤어질 수 없는 절절한 사랑으로 영생을 준비하셨고 우리에게 받으라고 강권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우리 자신과 세상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영생의 명령’이 우주에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이 엄중한 명령이 울려퍼지기를 원하십니다.
2016년 11월 4일(금)
그리스도의 작은 제자
권오영 드림
President of KCA
Cell) 909-253-9130
Email) waterandwind@hotmail.com- 이전글어거스타 한인교회 발맛사지 전도 봉사 1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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