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적 기별들의 절정을 가져온 감동적인 기별--- A. G. 다니엘스
페이지 정보
본문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바로 2, 3주일 전에 주께서는 거의 2년간에 걸쳐서
매 달마다 주신 모든 교훈의 절정이 될 감동적인 기별을 주셨다.
“복음 사역자의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석하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복음을 고안해 내는 것이 아니고, 이미 위탁된 복음을 올바르게 분석하는 것이다.
그들은 회중에게 제시하기 위하여 낡은 설교를 의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낡은 설교로서는 백성들의 요구나 경우에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가 슬프게도 등한시 되고 있다.
우리 기별의 중심은 예수님의 사명과 생애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극기와 온유와 겸비를 생각하게 함으로
교만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자신들과 모본되신 그리스도를 비교해 봄으로 겸손해지도록 하라.
청중들에게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겸손해 지신 예수님을 보여주라.
그들에게 그들의 담보물 되시는 분은 인성을 취하셔야 했고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구주께서는 사람과 같은 모양을 취하셔야 했으므로
하늘 아버지의 저주의 어두움과 공포 속을 인성으로 통과하셔야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라.
[역자 주: 담보물의 의미: "담보물이라고 한 것은 당신의 의로써 인류를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킨다는 뜻" -1SM257]
하나님의 아들의 굴욕을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 있는데까지 묘사해 주라.
그리고 그대가 그분께서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빛과 영광의 보좌를 인성과 바꾸시는 것을 볼 때에
그분의 굴욕의 절정을 보았다고는 생각지 말라. 그분은 하늘을 떠나 이곳으로 오셨다.
지상에 계시는 동안 타락한 인류의 보증인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셨다.
그분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운명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분은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불순종함으로 생긴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자 선택하셨다.
그분은 잔인한 취급과 모욕과 비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견디기로 선택하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죽으시는 방법이 우주를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욕과 치욕을 못 느끼셨던 것은 아니셨다.
그분은 그것을 가장 비통하게 느끼셨다.
그분의 본성은 당신께서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는 죄많은 인류들의 본성보다 더욱 탁월하고 거룩하고 순결하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통렬하게 느끼셨다.
그분은 하늘의 통치자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되신 분이었다.
그분은 천군 천사들의 사령관이셨지만 어떤 사람보다 더 수치스런 치욕적 죽음을 인류를 위하여 당하셨다.
아, 교만한 자들은 이 사실을 정녕 깨달아야 할 것이 아닌가!
아, 그들은 구속의 의미를 이해하고, 예수님의 온유와 겸비를 배우고자 노력해야 한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8년 9월 11일).
이 교훈은 특별히 목사들 곧 이스라엘의 교사들에게 주어진 교훈이다.
(1)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석해야 했고,
(2) 그들은 새로운 복음을 창안해 내서는 안되었지만, 이미 위탁한 복음을 진실되게 설명해야 하였다.
(3) 그들은 ‘낡은 설교’를 계속적으로 해서는 안되었다. 그 설교는 백성들의 갈망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4) 그들은 슬프게도 등한히 해 왔던 주제들을 매우 강조해야 했다.
(5) 그들의 기별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생애가 되어야만 했다.
결론적인 구절은 이 탁월한 주제를 깨닫게 하고자 주어진 요점 곧 그리스도의 사명과 생애로 이루어졌다.
당시를 회고해 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볼 때 이 직접적이고 분명한 모든 엄숙한 기별이 목사들 모두의 마음에
보다 깊은 감명을 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주께서 기별을 증거하기 위하여 보내신 사자들인
존스와 와그너를 통하여 그처럼 분명하고 열렬하게 제시한 부흥과 개혁과 회복에 관한 영감적인 기별을
꼭 적절한 시기에 듣고 받아들일 준비를 충분히 갖추어야 했다.
거짓되고 죄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적용하는 것이 주님께서 보내신 치료법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필요한 일이었다.
만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면 교회와 하나님의 사업에 어떤 일이 생겼을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 기별을 거절했기 때문에 받게 될 손실을 누가 감히 측량할 수 있겠는가?
오직 영원만이 이 문제에 관한 사실을 완전히 드러낼 것이다.
- 다음글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 제시된 기별 26.10.3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