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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지도자론 : 지도자로서의 교회와 신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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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지도자는 교회를 치리할 때 세상사업과는 달리 자의 만으로나 어떤 

변칙으로 일할 수 없다. 이 일이란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루

는 영에 속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일만은 반드시 예수님의 모본

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을 다루실 때 이를테면 하나님을 위한 사업의 원

칙과 사람을 위한 사랑과 이해 라는 라인 사이에 있는 대로상에서만 행사하

셨다. 모든 문제가 때로는 벽에 부딪치는 것처럼 어려울 때가 있지만 이같은

예수님이 보이신 모범적인 영역에서 해결될 수 있고 이같은 영역에서 해결

되어야만 바람직하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 두 라인을 벗어나지 아니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이 지

도자의 일을 행사할 때 예수님처럼 어떻게 두 라인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

까? 라는 생각을 음미해 보면서 그것과는 반대로 어떻게 되면 그 대로를 벗

어나게 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원칙을 무시해 버리고 사랑과 이해에만 편중한다든지 반대로 사랑과 

이해같은 것은 깡그리 무시해 버리고 오로지 원칙만 내세운다든지 하는 경우

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각해 보라. 만약 그렇게 되면 

우선 쉽게 그 대로상의 영역을 벗어나 버리게 되어 일시적으로는 문제가 해

결되어 좋을런지 모르나 필연적으로 영혼과 교회를 올바로 다루고 치리 해

야 할 정당함 에 대한 많은 문제들을 몰고 올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여기에서 말하는 원칙을 무시해버린다는 의미는 성경 말씀이나 

예언의 신의 말씀, 교회요람이나 일반적 여러가지 준칙, 교회 이상의 상부의

사업이나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상황 혹은 이론들도 모두 포함하는 내용이지

만 우선 교회의 지도에 따른 현황의 적용에 대한 어떤 원칙들을 포함하여 말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소로들이 대로로 연결되듯이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필요한 것들이다. 이것들을 무시하거나 소홀이 하게 되면

무리를 지도하는 일이란 오도된 길이 되기 마련인 것이다. 반면에 사랑과

이해에만 호소하게 되면 그것이 매우 좋은 것이로되 자칫하면 느낌에만 있

의식을 깨우치지 못하거나 분별없는 방관처럼 되어져서 나중에 그것을 바

잡으려고 할 때에는 그것은 너무 잘못 유약해졌거나 그것이 성숙해져서 이때

는 이미 늦은 기회에 직면하게 되어 이로 인해 후회와 큰 손실이 뒷 따르

마련인 경우가 되어진다.

그러므로 이 두 라인 안에서 양무리를 지도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 길은 많은 

영성과 지혜와 사랑과 연구와 기술과 경험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솔로

몬이 왕으로 즉위했을 때 그는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

은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대하 1:10 참조) 라고 말한 것이 결국 

이같은 정신을 나타내는 순결한 말이다.

교회의 지도자는 원칙(원리)과 사랑(이해)이 좌우에 날선 무기처럼 사용해

야 하듯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원칙만 고수하면 딱딱하여 고루하게 여겨져

서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며 원칙을 무시해 버린 채 사랑만 고수하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의 분별없음같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란 결코 

그런 방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은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신비한 탁월성을 지니고 있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 곧 

공의와 사랑이 입맞추었다는 말씀의 묘사는 이것의 극치를 묘사하고 있을 

뿐 우리로서는 그것의 속속들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나 

해야 할지 모른다. 앞으로 지도자가 될 사람이나 이미 지도자가 된 사람은 

교회 전체사업을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일이 올았던지 글렀

던지 간에 지혜롭게 잘 조절하는 믿음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아주 중요한 사실은 지도자가 모든 신자 치리를 

평등하게 하고 누구에게나 소속감을 갖는 사상을 실천해야만 한다. 이것은 

선천적 소양일 수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과 기술로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

다고 보아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이 주요하다.

신자들로 하여금 이 평등과 소속감 부여에 대한 일로만은 의심없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일이 미흡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게 되는 예가 

있다. 편견이나 편협은 백해무익한 것이다. 편견이나 편협 없이 나타내 보

이면서도 꼭 신중하게 더 이해할 일은 이해하면서도 더 감싸줘야 할 일은 

감싸줄 수 있지 않겠는가. 지도자가 책망을 해도 그 지도자야 말로 평등과 

소속감에 대한 의심없는 신념을 가진 분이라고 확신만 되면 신자는 그것들

을 겸손하게 감내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다.

지도자는 날마다 새롭게 마음을 가꾸어야 한다. 지도자의 마음 밭에도 미

워하고싶은 엉겅퀴가 싹트거나 자라날 수 있고 남을 해할 수도 있는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도자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행사하기가 쉬워진다. 

세계의 제일가는 네로는 처음에는 정서가 좋은 시인이었고 악명높은 히틀

러는 착하고 점잖은 사람이었다. 성경상의 사울 역시그러하였다. 그들은 불

타는 악질, 쓰기 쉬운 칼날을 억제할 능력을 잃어버린데 화근이 있었다. 사

람에게는 순간마다 회심이 요구된다. 성령의 충만이 필요하다. 행정적이면

서도 사업적인 말을 빌리면 관대함이 요구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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