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언약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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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언약의 차이
차이점은 바로 자유한 여자와 계집종의 차이이다. 하갈의 자녀들은 그 수가 얼마간 많다고 하더라도 종에 불과했던 반면 사라의 자녀들은 항상 자유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시내산의 언약은 그 언약을 신봉하는 모든 사람들을 “율법 아래서” 종 노릇하도록 만드는 반면에 위로부터 온 언약은 자유를 주는데 율법을 순종함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자유가 아니고 율법을 불순종하는데서 떠나게 하는 자유이다. 자유는 율법을 떠나서 찾을 수 없고 오직 율법 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저주 곧 범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신다.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도록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시며 축복은 바로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다.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시 119:1) 이 축복이 자유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시 119:45).
두 언약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시내산의 언약에서는 우리 자신이 율법을 이행하여야 되지만 반면에 위로부터 온 언약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을 가지게 된다. 첫 언약에서는 율법이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망이 되며 그러므로 치명적인 결과를 받지 않고는 율법을 다룰 수가 없다. 그러나 둘째 언약에서는 “중보의 손을 빌어서” 우리가 율법을 가지게 된다. 첫 언약에서는 율법을 우리가 행하여야 하나 둘째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행하여 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또는 그렇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묻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직 묻는 것은 어떻게 율법을 행할 것인가? 상이 은혜에 속하지 않고 빚에 속하도록 우리 자신의 행위로 행할 것인가 혹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그의 기쁘신 뜻을 원하여 행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시내산과 시온산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데니 저가 그 여자들로 더불어 종 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두 언약이 있는 것과 같이 그 언약들과 같은 두 도시가 있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은 옛 언약―시내산과 같다. 그것은 자유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오는”(계 21:1-5; 3:12) 하나님의 도성, 하늘 예루살렘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바랐었던 도성이며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히 11:10; 계 21:14)이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에 큰 소망―그들의 모든 소망―을 두는 사람들이 많다. 이와같은 수건이 “구약을 읽을 때에… 벗어지지 아니하고”(고후 3:14) 남아 있다. 그들은 실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시내산과 옛 언약을 바라보고 있으나 거기서는 구원을 찾을 수 없다.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18-24).
축복을 받기 위하여 지금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자들은 종 노릇을 하기 위하여 옛 언약, 시내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으로 얼굴을 향하고 예배드리고 오직 그곳으로부터 축복을 기대하는 자들은 누구나 자유자가 되기 위하여 새 언약, 시온산을 바라보고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이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가? 죄로부터 자유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우리를 다시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죄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가? 물론 그렇다. 왜냐하면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정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시내산에서 그와같은 두렵고 떨리는 위엄 가운데서 선포하신 율법, 곧 하나님의 율법을 지금 발로 짓밟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헛된 말에 속임을 받지 않도록 하라. 시온산에―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그의 뿌린 피에 나아올 때에 우리는 죄로부터―범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시온산에서의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는 그의 율법이다. 시내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보좌로부터 똑같은 “번개와 음성과 뇌성”(계 4:5; 11:19)이 나온다. 왜냐하면 똑같은 율법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의 보좌”이므로 뇌성벽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담대하게 그 보좌에 나아가 속죄소에 앉아 계시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받을 것을 확신한다. 아니다. 더욱 더 필요한 때에 돕는 은혜―죄의 유혹의 시간에 우리를 돕는 은혜를 받을 것이다. 보좌 가운데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 양”(계 5:6)으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 “생명의 성령의 법”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우리는 그것을 마시고 그 가운데 잠기므로 모든 죄로부터 씻음을 받는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는 율법을 생명으로 받을 수 있었던 시온산으로 직접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시지 않고 오직 죽음만이 있었던 시내산으로 데리고 가셨는가?”
이 질문은 매우 당연한 질문이며 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을 때에 그들을 가능한 한 시온산으로 직접 데리고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였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을 때에 영감받은 노래를 불렀는데 그 일부를 보면 이렇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출 15:13, 17). 만일 그들이 계속하여 노래를 불렀더라면 곧 시온산에 이르렀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주의 구속받은 자들은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사 35:10; 51:11)며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기 때문이다. 홍해가 갈라진 것이 이것을 증거한다. 그러나 그들은 곧 주님을 잊어버리고 불신 가운데서 불평하였다. 그러므로 율법이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 되었다. 그들이 시온산 대신에 시내산에 온 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그들의 죄와 불신 때문이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신실하심을 증거하시거나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시내산에서도 우리가 시온산에 왔을 때에 만난 같은 중보자, 예수의 손에 율법이 있었다. 시내산인 호렙산의 반석으로부터 물이 흘러 나왔으며 그 물은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생명수였었다(출 17:6; 고전 10:4 참조). 거기에서 그들은 시온산의 그림자뿐만 아니라 실체를 가졌었다. 거기에서 마음이 주님에게로 향했던 사람들은 모두 모세와같은 그의 가리워지지 않은 영광을 보았을 것이며 그 영광으로 변화를 받고 정죄의 역사 대신에 의의 역사를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의 의가 영원히 있도다.” 그러므로 율법의 뇌성과 번개가 나오는 진노의 구름 위에라도 의의 태양의 영광스러운 얼굴이 빛나며 약속의 무지개가 생긴다.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 8:35) 여기에 모든 사람을 위한 위로가 있다. 우리들은 죄인들이거나 또는 기껏해 봐야 그리스도인이 될려고 애쓰는 죄인들이므로 우리가 종 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다시 말하면 죄가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는 악한 습관의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이 말씀을 보면 두려워하여 떤다. 아!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뇌성의 음성이라고 할지라도 평화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 음성이 위엄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가 주시는 평화는 더욱 더 크기 때문이다. 담대하라. 계집 종의 아들은 육신이며 그 육신의 행위이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그러나 하나님은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시므로 만일 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즐겨한다면 육신과 그 행위가 우리로부터 내어 쫓김을 받고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롬 8:21)게 되는 것을 볼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도 무서워했던 그 명령은 단순히 악령이 떠나고 더 이상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는 음성인 것이다. 그 명령은 우리에게 모든 죄에 대한 승리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아들, 곧 변동이 있을 수 없고 모든 천국의 백성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하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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