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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믿음에서 나지 않음--- 1888 세계대총회 대표자들에게 배부된 E. J. 와그너의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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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믿음에서 나지 않음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물론 이것은 책에 쓰여져 있건 돌비에 새겨져 있건 간에 글자로 쓰여진 율법이며 이것을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율법은 단순히 “이것을 행하라” 또는 “행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이 말씀은 글자로 쓰여진 율법이 생명을 제시하는 조건이다. 율법은 행위, 오직 행위만을 권한다. 이러한 행위를 어떻게 얻느냐 하는 것은 율법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율법의 요구를 이룬 사람은 전혀 없으며 그러므로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그들 자신의 생애에 완전한 순종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는 것이다.

생명은 움직이는 행위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그러나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살아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은 의를 행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그 안에 생명을 지닌 유일한 분이며 그분만이 의를 행하였고 행하실 수 있다. 그분을 부인하고 거절하지 않고 시인하고 영접할 때에 그의 모든 충만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산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는 것이며 우리 안에 있는 그의 순종이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의로 간주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바치며 살아 계신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게 되면 그 마음은 하나님의 보좌가 되고 그러므로 살아있는 율법이 우리의 생명이 된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당면한 실제 문제
이 갈라디아서에서는 율법을 순종해야 하나 혹은 하지 않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논난이 없었다는 사실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자. 어느 누구도 율법이 폐지되었느니 혹은 변경되었느니 혹은 그 효력을 상실하였느니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 서신에서는 이런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어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율법을 지켜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율법을 지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칭의―의롭게 되는 것―을 중요 문제로 삼고 있다. 의롭게 되는 것이 믿음으로 되느냐 혹은 행위로 되느냐 하는 것이다. 거짓 형제들은 갈라디아 형제들에게 그들 자신의 노력으로 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었지만 바울은 성령을 통해서 이러한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죄인에게 더욱 저주를 가져다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각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유일의 참된 의로 제시되고 있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을 자랑하였지만 그 율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자랑으로 삼았으며 그러므로 그가 이와같이 가르친 율법의 의로 하나님의 이름이 바울을 통해서 영광을 받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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