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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안에서의 얻는 평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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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경덕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8.18 22:53 조회수 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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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
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
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마8:23-8:27


『그날은 예수의 생애 중에서 다사(多事)한 날이었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잘 아는
예증으로 당신의 나라의 성질과 그 나라가 건설되는 방법에 대해서 백성들에게 다시 설명하
시면서 최초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업을 씨 뿌리는 자의 일에 비유하
셨고 당신의 나라의 성장을 겨자씨의 생장과 가루 서말 속에 넣은 누룩의 영향에 비유하셨
다. 의인과 악인의 최후의 대 분리는 곡식과 가라지 그리고 고기잡이 그물의 비유로 설명하
셨다. 예수께서는 그가 가르치신 진리의 탁월한 귀중성을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의
비유로써 예증하시는 동시에 집 주인의 비유로 제자들이 당신의 대리자로서 어떻게 일하여
야 할지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종일 가르치시고 또 치료하셨다. 저녁이 되었으나 군중은 여전히 예수에게 밀려
왔다. 예수께서는 잡수시거나 쉬실 여가도 거의 얻지 못하시고 날마다 그들을 위하여 봉사
하셨다. 바리새인들은 항상 악의에 찬 비평과 오전(誤傳)을 하며 예수를 따라다녔는데 이로
말미암아 그의 수고를 한층 더 힘들고 괴롭게 만들었다. 이제 날이 저물어 그는 매우 피곤
함을 느끼시고 호수 건너의 한적한 곳에서 쉬기로 결심하셨다.
게네사렛의 동부 해변은 호숫가 여기 저기에 동네들이 있었으므로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쪽과 비교하면 적막한 지방이었다.
그 곳에는 유대 사람들보다 이방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갈릴리와는 별로 왕래
가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가 원하시는 한적함을 그곳에서 얻으실 수 있었다. 예수
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따라 그 곳으로 가자고 명하셨다.
예수께서는 군중을 떠나시자마자 제자들은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황급히 출발
하였다. 그러나 그들만 떠난 것은 아니였다. 해변 가까이에는 다른 고기잡는 배들이 있었는
데 이 배들은 예수를 따라 여전히 그를 보고 싶어하며 그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는 사람들
로 삽시간에 가득 찼다.
구주께서는 마침내 군중들의 압박에서 놓여 나셨다. 피곤과 시장기를 이기지 못하신 예수께
서는 고물에 누우셔서 이내 잠이 드셨다. 잔잔하고 상쾌한 저녁이었다. 호면은 한결같이 고
요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둠이 하늘을 덮더니 바람이 게네사렛 동쪽 연안 일대의 산골짜
기들을 맹렬히 엄습하고 뒤이어 호수에는 갑자기 폭풍이 일어났다.
노한 바다에 해는 져서 칠흙같은 어둠이 깔렸다. 포효(咆哮)하는 바람에 격동하는 파도는 제
자들이 탄 배를 사납게 때리면서 삼켜버릴듯이 위협하였다. 저희 생애를 그 호수에서 보낸
그 강인한 어부들은 많은 폭풍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그들의 배를 안전하게 이끌어 올 수
있었으나 그러나 이번만은 그들의 능력과 기술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태풍에 붙
들려서 꼼짝할 수가 없었고 배가 물에 차는 것을 보자 그들은 희망을 잃고 말았다.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예수께서는 잠이 깨셨다. 눈부신 번갯불이 예수를 비췄을 때 그들
은 하늘의 평화가 그의 얼굴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분의 시선에서 자기를 돌아보
지 아니하는 온유한 사랑을 느끼자 그들의 마음을 예수께 집중시키면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고 부르짖었다.
그렇게 외친 사람들 가운데 무시당한 사람은 없었다. 제자들이 최후의 노력을 다하기 위하
여 그들의 노를 붙잡았을 때 예수께서 일어나셨다. 태풍은 격노하고 파도는 그들을 덮쳤으
며 번갯불은 그의 얼굴을 환히 비췄다. 예수께서는 자비의 봉사에 그토록 자주 쓰셨던 손을
드시고 성난 바다를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고 말씀하셨다.
폭풍은 그치고 큰 파도는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구름이 걷히고 별들은 반짝거렸다. 배는 고
요한 바다 위에 떴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슬프신 듯 이렇게 물으셨
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제자들 중에는 침묵이 흘렀다. 베드로까지도 자기의 마음에 가득 찬 경외심을 감히 표현하
려들지 않았다.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뒤쫓아오던 배들도 제자들과 같은 위기를 겪었다. 공
포와 절망이 그 배에 탄 자들을 사로잡았으나 예수의 명령으로 소란한 광경은 고요하게 되
었다. 노한 폭풍은 배들을 매우 가까이에 몰아서 배에 탄자들이 다 이적을 보았다. 폭풍에
뒤따른 고요 속에서 두려움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저희끼리

"저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고 수근거렸다.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데 열중한 그들은 예수께서 선상(船上)에 계신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저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죽음만이 저들 앞에 놓인 것을 깨닫자 저들은 누구의
명령으로 바다를 횡단하기 위하여 출발하였던가를 기억하였다. 그들의 유일의 소망은 예수
에게 있었다. 무기력과 절망 속에서 그들은

"선생님이여, 선생님이여!"

하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짙은 암흑은 그들의 시야에서 예수를 숨기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태풍의 노성에 삼키웠으며 아무 대답도 없었다. 의혹과 공포가 그들을 엄습하였다. 예수께

서 그들을 버리셨는가? 질병과 사귀와 사망까지도 정복하셨던 예수께서 이제 당신의 제자

들을 구하실 힘이 없으시단 말인가? 비탄 가운데 있는 그들을 왜 돌보지 아니하시는가?
그들은 다시 불렀으나 성난 강풍의 비명 소리밖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들의 배는 벌
써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잠깐 후에는 분명히 주린 바닷물이 저들을 삼켜버릴 것이었다.
갑자기 번갯불이 암흑을 꿰뚫자 그들은 예수께서 그 소동에 방해 받으심이 없이 누워 잠드
신 것을 보았다. 그들은 놀람과 절망으로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고 외쳤다. 제자들이 위기 가운데서 죽음과 싸우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평안히 쉬실 수 있으셨을까?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폭풍을 대하셨을 때 그는 극히 평온하셨다. 예수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었으므로 말이나 표정에 두려워하시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가지신 전능하신 능력에 의뢰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조용히 쉬
신 것은 "땅과 바다와 하늘의 주"의 입장에서 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 능력을 그는 버리셨
던 바"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5:30)고 그는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능력에 의뢰하셨다.
예수께서 쉬신 것은 믿음 곧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였으며 폭풍을 잔
잔하게 한 그 말씀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예수께서 믿음으로 아버지의 보호 안에서 쉬신 것처럼 우리도 구주의 보호 안에서 쉬어야
한다.
제자들이 예수를 의뢰하였다면 저들은 평강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위기를 당했을때 저희의
두려움은 그들의 불신을 드러내 주었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예수를
잊고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은 저희가 자기 의뢰의 절
망에서 예수께로 돌아갔을 때 뿐이었다.
태풍을 잔잔하게 하신 이 이적 가운데는 또 하나의 영적 교훈이 있다. 각 사람의 경험은"오
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사 57:20, 21)
는 성경 말씀의 진리를 증거한다.
우리의 평화를 파괴한 것은 죄다.
자아가 정복되지 않을 때 우리는 승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의 힘으로는 마음을 지배하는 격정을 다스릴 수 없다.
제자들이 성난 폭풍을 잔잔하게 하는 데 무력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이점에는 무력하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의 큰 물결을 향하여 잔잔하라고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각 사람에게 평안하라고 말씀하신다. 태풍이 아무리 격렬할지라도 주여 구원하
소서 하고 부르짖으면서 예수께 돌아오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사람을 하나님과 화
목시키는 그의 은혜가 인간의 격정의 분란을 잔잔하게 하는 바 그의 사랑 안에서 마음은 평
안함을 얻는다. 2소망 333-336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시
4:8 
세계 제1차 대전중 어느 날 밤,
한 불란서의 공군 조종사는 4,200미터의 상공에 올라가 엔진을 끄고 조용히 적진을 비행하
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가 달이 밝은 보름 밤, 3천미터 상공을 왔을 때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반응도 보이지 않는 새의 무리에 싸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의 조종사는 윗 덮개를 열고 비행했으므로 밑에 있는 흰구름의 반사를 이용해 검은
색의 새를 관찰할수 있었다.
비행기는 두마리의 새와 부딪쳤으며 그중 한 마리는 기체 내에서 발견되었다.
그것은 비둘기 일종의 칼새였다.
바이트나우어라는 조류학자가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1951년 여름 밤 비행사와 함께 비행하며 새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어떤 새는 780메터에서 어떤 새는 1500메터에서 각각 발견되었다.
발견된 새는 모두 100마리 였으며
밤하늘에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 미끄러지며 조용히 원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곳에 온도는 화씨 73도(섭씨23도) 되는 상승기류에 서였다.
사람들이 마치 글라이더를 타고 나는 것처럼
칼새들은 따뜻한 상승계류를 의지하는 것이였다.
밤을 이렇게 안전하게 새들은 편이 하늘에서 잠자며 쉬는 것이였다.
다음날 아핌 일찍이 새들의 잠이 깨기 전 4시 37분에 두 사람은 다시 비행하며 하늘에 서
밤새 쉬고 내려오는 새들을 확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나 혹은 둥지에서 자는 새, 혹은 다른 곳에서 자는 짐승들을 다 보호하
고 계신다.
우리들도 하나님 안에서 신뢰할 때 "평안히 눕고, 자기도"할 것이다.
『한결같은 평안, 진정한 마음의 안식은 오직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
과 같이 바로 그 근원에 속한 것을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
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이 평안
은 그분께서 당신 자신과 상관없이 주시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그 평안를 받을 수 있다 치료 247』

 

엔돌핀이 나오는 것은 기분이 좋을 때가 아니라, 괴롭거나 힘들 때 고통을 잊기 위해서랍니
다. 마라톤을 즐기시는 분들 중에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하여 너무 달려서 무
릎이 망가지고 발목이 상해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달리
는 것은 사실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나 먹이를 구하
기 위해서는 숨이 턱에 닿더라도 달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신체가 고
통을 잊고 오랫동안 달리게 하기 위해서 엔돌핀을 분비하게 된다.
엔돌핀이란 기분이 좋아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엔돌핀이 나오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집중될 때 엔돌핀이 나온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감사할 때, 단백질은 부신피질 호르몬과 베타 엔돌핀으로 분해됩니
다.
베타 엔돌핀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작용을 합니다. 특히 베타 엔돌핀은 기분을 좋
게하는데 그치지않고, 인체 각부 기관의 노화를 막고 암세포를 파괴시키기도 하고, 기억력을
강화하기도 하고, 인내력을 강화해주는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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