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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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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경덕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7.25 19:24 조회수 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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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10:19
우리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여러
분! 성소가 아디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눈에 성소가 보이십니까? 성소에는 아무나 들어 갈
수 있는 곳입니까? 아닙니다. 성소에는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나 히
브리서에는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의 피가 없었을 때는 성소에 들어 갈 수 없었으나 예수님의 피로 능히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아시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성소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알 필요가 있다할 것입니다. 성소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첫째 칸에는 보통 제사장들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위하여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지성소에
는 속죄일에 즉 1년에 단 한번만 보통제사장은 못 들어가고, 대제사장에 한해서 백성들의 1
년간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보통 사람들 즉 죄인들은 들어
갈 염두를 먹을 수 없는 거룩한 성별된 곳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지성소나 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들여다 볼 수도 없었고 만일 들여다본다면 즉결 심판 즉 죽음이 있을 뿐이었
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 기록은"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현대 기별인 것입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 3:23
현대인의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믿음의 때가 오기 전에는 우리가 죄의 포로가 되어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
다. "
위의 말씀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예수님을 바로 몰랐을 때는 우리 모두가 율법주의자가
되어 죄인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로 알 때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
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4-5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
다. 여러분이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나의 아버지'라
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을 진정으로 안 그리스도인은 결코 율법에 매이지 아니하고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후부터는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아버지로 보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습니
다. 예수님을 통해서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죄인은 하늘에 못 갑니다. 우
리 인간은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서 죄가 용서받고
죄가 용서되었으니 죄인이 아닌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행함이 아니고 그분
즉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고 도리어 하나
님께 감사할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1-7
예수님만이 하늘 아버지께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예수님만이 하늘 아버지와 대면할
수 있는 매개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는 나갈 수 있어도 빛 가
운데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는 감히 접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영광에 살자가 없다
고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물론 죄인은 그 앞에 나갈 수 없는 것은 사
실입니다.
2003년도 제3기 안식일 학교과정 9페이지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음"
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록은 안식일 교회만 주장할 수 있는 전매특권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
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즉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말과 같은 내용인 것입니
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사다리를 기억합니다. 야곱의 사다리는 야곱이 꿈에
본것입니다. 이 야곱의 사다리가 무엇을 뜻합니까? 야곱의 사다리란 곧 예수님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 갈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 정도는
모든 기독교신도들이 아는 상식일 것입니다.
셋째 천사는 그들을 지성소로 향하게 하였으며 과거의 기별들을 경험한 자들은 그들에게 하
늘 성소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진리의 완
전한 사슬을 보고 그 순서대로 즐거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 성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닻이라고 내게 제시되었다. 이 기별들을 이해하
고 받아들인 자들은 사단의 수많은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사건, 68)
세째 천사의 기별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1-7
우리 인류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모두가 잊었습니다. 즉 사단에게 유괴된 미아들이 였습니다.
미아들에게는 행복이 없습니다. 이렇게 미아된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하늘 아버
지께 갈 수 있는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세째 천사의 기별의 핵
심인 것입니다, 화잇부인이 계시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나(화잍선지자)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 문을 통과하여 첫번째 휘장이 있는 곳에 이르렀
다. 휘장이 걷어 올려지자 나는 성소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향단과 일곱 촛대와, 진설병이
놓여 있는 떡상이 있었다. 성소의 영광을 본 후에 예수님께서 두번째 휘장을 걷어 주셨으며,
나는 지성소로 들어갔다. 자서, 100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요 16:27)
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고정된다면, 그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
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 들어 가셨"(히 6:19, 20)
음을 입증할 것이다. (5증언, 742)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으므로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
가는 모든 사람의 진정한 소망도 그분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다.(쟁투,
489)2003.
"지성소로 가는 길은 열렸다. (소망, 757)" 제3기 히브리서연구 15 
휘장안에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우리가
아버지께로 직접 나아가는 길이 열렸음을 뜻합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보좌로부터 일어나 불병거를 타시고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로 들어가 좌정
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예수께서도 보좌로부터 일어나셨고 그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던 무리들도 그분과 함께 모두 일어섰다. 나는 예수께서 일어나신 이후에는 단 한 줄기의
빛도 그분으로부터 부주의하는 무리들에게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칠흙 같은 어
두움 속에 버려졌다. 예수님과 함께 일어선 무리는 그분이 보좌를 떠나 그들을 좁은 길로
인도하실 때 그들의 눈을 그분께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 후에 그분은 오른팔을 들고 사랑스
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여기서 기다려라. 내가 나라를 받으러 아버지께로 가노라. 너희
예복을 흠없이 보존하고 있어라. 잠시 후면 내가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
접하리라." 그 때 불꽃같이 번쩍이는 수레 바퀴가 달린 구름 병거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왔다. 그분은 병거를 타시고 아버지께서 앉아 계시는 지성소로 가셨
다. 거기서 나는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 앞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분이 입은
제사장의 예복의 가장자리에는 방울과 석류 무늬가 장식되어 있었다. 예수님과 함께 일어선
자들은 지성소에 계신 그분에게 자기들의 믿음을 상달시키면서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 안에는 빛과 능력과 풍성한 사랑과 기쁨과 평안이 있었다. 나는 보좌 앞에서 아
직도 머리를 숙이고 있는 무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난 것도 몰
랐다. 사단이 보좌곁에 나타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려고 했다. 그들은 보좌를 쳐다보
며? 아버지여,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사단이 그들에게 거
룩하지 못한 영력을 불어넣어 주었는데 그 안에는 빛과 큰 능력은 있었지만 자비로운 사랑
과 기쁨과 평안이 없었다. 사단의 목적은 그들을 속이고 꾀어서 그들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케 하려는 것이었다.(초기, 55-56)
지성소 기별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성소는 하늘 아버지의 보좌를 의미합니다. 지성소에는 하
늘 아버지께서 좌정하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함께 계십니다. 예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서 지성소의 체험을 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개인의 친아버지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하나님 예수 예수 해
보았자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이 아니고 마귀의 영이 임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는 영적인 진정한 기쁨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개인의 아버지로 모신자들만이 "빛과 능력과 풍성한 사랑과 기쁨과 평안이 있."
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단을 하나님으로 알고 따름다면 "빛과 큰 능력은 있었지만 자비로
운 사랑과 기쁨과 평안이 없었다."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사단은 매우 큰 발악
을 하면서 크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라. 십자가는 하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측량할 길이 없는 자비의 영
구적인 보증이다.(1기별, 385)

탕자의 비유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천해질 대로 비천해진 후에, 그는 아버지의 친절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 때에,
그는 아버지의 필요를 느꼈다. (1보감, 307)
아들이 아직 그의 집에서 먼 거리에 있었으나, 아버지는 그 방랑자를 알아보았다. 그의 첫
번 째 생각은 수 년 전에 방종의 죄된 길을 가기 위해 자신을 떠난 그 반역적인 아들에 대
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은 끓어올랐다. 1보감, 308
예녹이 하나님에 사랑에 대해서 어떠했는가 살펴봅시다.
에녹은 --- 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 안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신뢰의 귀중한 공과를 배웠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무한하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 밤낮 그의 명상의 주제가 되었다. 부조 84
화잇부인은 하나님을 어려서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의식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운 분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는 새로운 사실을 발
견케 됩니다.
천부의 사랑에 대한 새로운 견해- 하늘 아버지의 선하심, 사랑, 부드러운 애정을 제시할 때
에 주님의 영이 나에게만 아니라 백성에게도 임하는 것을 느꼈다. 자서전 39
그녀는 일찍이 부모님을 따라 신앙을 하였지만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시 가운데서 그 두려움의 하나님은 사랑 많은 아버지로 깨닫게 됩니다. 그는 그 아
버지의 사랑에 감동되어서 그의 가슴을 마구 뛰는 그런 조용히 있을 수 없는 그였기에 사람
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새로 깨달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간증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의
간증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의 생애는 전혀 다른 생
애, 즉 기쁨 충만의 생애 감사와 찬송의 생애였습니다. 다음의 선지자의 글을 살펴봅시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

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

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

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

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

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
는 곁에 섰더라 슥3:1-5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매우 결함이 많았다. 사단은 그들을 유혹하여 범하게
한 죄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므로 그 죄들을 가장 크게 과장하여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와 나의 사자들을 그분 앞에서 쫓아내면서 동일한 죄를 범한 그들에
게는 상급을 주실 것인가? 오, 주님, 공의로운 입장에서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당신의
보좌는 의와 공의로 세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공의는 그들에게 내린 것과는 반대의 선고를
요구합니다. 여호수아와 사자에 대한 스가랴의 이상은 대속죄일의 마지막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히 적용된다. 남은 교회는 큰 시련과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될 것이다. - 그
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비록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을 악의 지배에 맡
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버리고,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다. 그
러므로, 거룩하신 중보자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변호하고 계신다. 그들의 배은망덕으로 가장
크게 모욕을 받으신 분, 그들의 죄와 그들의 회개까지도 아시는 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다.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나는 이 영혼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바쳤노라.
그들을 나의 손바닥에 새겼노라." 사단의 공격은 맹렬하고, 그의 기만은 무섭다. 그러나, 여
호와의 눈은 그분의 백성을 주시하고 있다. 그들의 고통은 크고, 풀무의 불꽃은 그들을 태워
버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로 연단한 금처럼 나타나게 하실 것이
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히 반사하기 위하여 그들의 세속적 마음은 제거되어야 한다. 불
신은 극복되고, 믿음과 소망과 인내가 계발되어야 한다. 2보감 177

"남은 백성들은 용서를 받고 가납될 뿐만 아니라 높임을 받는다. 정한 관"이 그들의 머리에
씌워진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왕이요 제사장처럼 될 것이다. 사단이 이 무리들을 고발하
고 죽이고자 노력하고 있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천사들은 이리저리 왕래하면서
그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쳤다. 이 사람들은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 있는 자
들이며, 그들의 이마에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보좌 앞에서 새 노
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십 사만 사천 인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래이다. "이 사람들은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
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 5). 지금은 사자의 말씀, 곧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
게 하리라"는 말씀이 완전히 성취된 때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의 구속자요 구원자
로 계시되어 있다. 이제 남은 백성들은 그들의 순례길의 눈물과 굴욕이 하나님과 어린 양
앞에서 기쁨과 영광으로 바뀌어지기 때문에 진정으로 "예표의 사람"이 된다. "그 날에 여호
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
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
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라(사 4:2, 3). 2보감
179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
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
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슥 3:1-3). 이것은 사단의 모
습이다. 그는 자신의 기만과 술수로 이들 영혼을 속여 왔다. (목사, 275)
그슬린 나무의 본 모습이 사단의 참 모습이다. 그 진상이 만 천하에 들어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것은 예수
님을 만나서 하나님을 개인의 아버지로 받아들여 하늘의 행복을 맛보는 경험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분을 개인의 아버지로 진정으로 영접하였다고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법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싯딤목 즉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셨습니다. 이것은 비유적인 상징입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가시가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가시나무 같은 성질을 같고 있습니다.
남을 헌담하는 것 남의 단점만 골라가면서 콕콕 찌르는 버릇이 있습니다. 죄의 습성은 모두
가 다 가시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카시아 나무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꿀을 내 줍니
다. 아카시아 꿀은 다른 꿀 보다도 맛이 있고 좋은 향을 같고 있습니다. 먹기에 자장 무난하
고 좋습니다. 이와 마찬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늘 명상할때 성령께서는 이런 방법 저런 방
법으로 우리의 가시같은 품성을 제거해 주십니다. 벅궤는 안암팍으로 금을 칠하였는데 금은
사랑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성의 변화함을 입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많은
나라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잘 사는 미국을 동경하고 가고자 합니다. 또 계속 이민을 가고
있습니다.
미국에 갈려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미국을 가는데 기상학을 배워야 합니까? 미국을 가
는데 날씨가 어떨까? 기류는 어떨까? 고공 몇 킬로에서 비행기가 날라 갈까? 혹은 가는 도
중에 바다의 깊이와 넓이 또는 무슨 생물들이 바다에 살까? 하는 등을 연구해보았자 미국에
가는데는 도움이 안됩니다. 다만 비자와 여권이 필요할 뿐입니다.
천국을 가는데도 역시 똑 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역사와 고고학적으로는 어떻고, 시
편이나 잠언 등이 문학적 가치는 어떻고, 하는 식의 연구재료는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그러
나 그것은 구원의 보탬이 결코 되니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우리는 성경이나 증언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어떠한 사랑을
퍼 부으셨는가? 총력을 가할 것입니다. 그럴 때 그분의 사랑이 나의 가시같은 품성을 제거
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것만이 구원의 원동력이며 품성 개발의 근원이 됩니다. 법궤 안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십계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 감전된다면 이 십계명은 율
법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고 사랑으로 보일 것입니다. 율법주의자가 아닌 묵묵히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법궤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만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만나 먹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 영육간의 최고의 만나가 무엇인지 알고 먹게 될 것
입니다. 만나를 먹는 백성들은 영육간에 병들지 않을 것입니다. 영육간에 건강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영육간의 병이 드는 것은 죄의 결과 즉 불신으로 인한 사단이 우리 모르게 심
어 놓은 죄의 결과입니다.
이렇게 지성소의 체험을 하면 어떤 변화가 옵니까?
거기에는 아론의 싻는니팡이가 있었습니다. 살구꽃이 피고 열매다 있었습니다. 매마른 막대
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매마른 심령이 참사람을 접한다면 중생성화의 꽃이 피고 성령의 열
매가 맺는 체험을 할 것입니다.
그 다음 어떤 체험을 합니까?
일곱 촛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품성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품성이란 말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생애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소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입으로 전하는 떡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먹여주는 떡입니다. 진리의 떡이 되는 것입니다. 행함의 떡이 되는 것입니다.
성소 입구에는 물두멍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봉사업을 하기 위해서 손발을 씻었습니다. 즉
겸손의 장징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겸손하여야 합니다.
마당에는 양잡아 제사지내는 제단이 있습니다. 제단은 바로 그리스도인 자체가 되어야 합니
다. 희생양도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희생양! 이것은 아무
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함께 지
성소에 들어간 하나님의 백성들의 체험인 지성소 진리 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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