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왜 인성을 쓰셔야 하셔나? > 신학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신학

예수님은 왜 인성을 쓰셔야 하셔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경덕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6.06 09:40 조회수 5,744
글씨크기

본문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 19:16
사람은 누구나 오래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늙은이들이 가끔 이제 그만 살고 어서 죽어야 할 텐데 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실상 죽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늙고 병들었으니 어쩔 수 없이 죽을 몸, 다만 체념적 넋두리
일 뿐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지구상에 있는 위에 들어가서 소화될 수 있는 것
이면 모조리 먹어치우는 것이 사람입니다. 굼벵이, 지렁이, 지네, 구더기, 모기 ,풍뎅이, 뱀,
개구리 등등 안 먹는 것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슨 선한 일을 하면 그 공덕으로 영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살아
생전에 공덕을 많이 쌓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어떤 선행도 영생을 주지는 못합니다. 인간적인 선행이 자신에게 영생을
줄 수 있었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격지 않으셔도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선행
은 다 떨어진 넝마와 같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이전에 에덴 동산에서 살 때 인공적인 옷이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지어
주신 빛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범죄 하므로 빛의 옷은 사라지고 알몸으로 드러났습니다.
두 부부는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부끄럽게 여겨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습니
다. 빛의 옷보다는 못했으나 그런 대로 쓸만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걸치고

있었겠죠?
그러나 몇 시간 되지 않아 추한 모습을 발견케 됩니다. 정오의 햇빛이 쨍쨍히 비취자 무화
과 잎은 쭈글쭈글 시들어 버려 더욱 추할 뿐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마16:19
상당히 지위가 있는 분의 설교를 경청하였습니다. 그분의 설교 제목인즉
"천국 열쇠"였습니다. 천국의 열쇠라는 거창한 제목에 나는 상당한 흥미를 느끼면서 듣게
되었는데 실질적인 천국 열쇠가 무엇인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베드로가 예수
님을 주로 시인을 하니 그제야 예수께서 천국 열쇠를 주었다는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여 천국 열쇠를 받도록 하자고 매듭을 짖는 것이 였습니다.
알맹이가 빼진 내용입니다. 핵심이 없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함께 저는 동료신도들에게
"그분의 설교에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여 천국 열쇠를 얻도록 하자고 하였는데 도대체 천국
열쇠가 무어요?"
하고 질문하였습니다. 나는 또 어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면 천국 열쇠를 준다는데, 천국 열쇠를 받지를 못했다면 아직도 예수
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지 못한 것인 가요?"
하고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구원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인류의 원칙과 목적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잃어버린 바 될 것을 아셨
다. 그것이 그분의 심령을 누르는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 위에 지워져 있는 무
거운 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분께서는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장년 시절을 홀로 고독하게
걸어가셨다. 그러나 그분 앞에는 언제나 하늘이 열려 있었다. 날마다 그분께서는 시련과 유
혹을 당하셨다. 날마다 그분께서는 죄악을 목격하셨고, 그분께서 축복하시고, 구원하기 위하
여 온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죄악의 세력을 보셨다. 그럴지라도 그분께서는 실망하거나 낙담
하지 않으셨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께서는 그의 마음을 그의 사명 완수에 엄격히 맞추셨
다. 그분께서는 그의 아버지의 뜻에 모든 일을 굴복시킴으로 그의 생애를 영화롭게 하셨다.
가건 238
왜 예수께서는 인류의 구원에 대한 놀랍게도 무서운 책임감을 지고 계셨을 까요?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자녀들에게 가 있고 그들의 안녕(安寧)을 언제나 신경을 쓰게 마련입
니다. 자녀들이 죄로 인해 멸망당하는 것은 결코 참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에 대한 놀랍게도 무서운 책임감을 지고 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모습으로 오실 수밖에 없으셨다. 왜 주님
께서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오셔야 했을까요? 여러분들의 이해를 위해서 한 예를 들겠습니
다.
옛날에 신앙심이 두터운 신부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따미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사람입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인 문둥이들을
위해 하늘의 복음을 전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 보다도 더 문둥이들을 엄
격하게 격리 수용을 하였습니다. 그 신부님은 문둥이들이 격리되어 있는 섬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너 같은 멀쩡한 사람들은 예수가 필요할지 모르나 우리는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이

버린 사람이다."
저들은 완전히 타락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절대로 신부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사람
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신부는 안타까웠습니다. 이러한 건강한 모습으로는 결코 하늘의
복음이 저들에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고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

도하기를
"나도 문둥이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결국 신부는 기도 응답을 받고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신부의 말
이 먹여들기 시작하여 불행한 문둥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신성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아무도 예수님을 영접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모습을 쓰고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인자"라고 지칭하셨습니다. 인자라는 의미를 별로 생각하는 이들이 없는
듯 합니다. 
한문성경에는 인자(人子) 곧 사람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기록되었습니다.
영문성경을 보니 "the Son of man" 역시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
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히2:14, 15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히2:17
이 말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 봐라. 너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다. 뿐이냐 너와 나는 형제다. 그러니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자. 내말을 좀 듣고 나를 믿어달라."
는 사랑의 애절한 표현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
셨으며 히2:12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예수님과 우리는 같은 족속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인식시키시려고 "인자"(the Son of
man)라고 계속 주장을 하셨던 것입니다. 정말로 그분의 사랑과 겸손은 이 인자라는 그 단
어에서도 뭉클 뭉클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천국열쇠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열쇠가 있어야 모든 문을 열 수 있겠죠?
최고 좋은 집의 열쇠가 나에게 있다면 그 집은 곧 나의 집입니다.
최고 좋은 자동차 열쇠가 나에게 있다면 그 좋은 차는 곧 나의 것입니다.
아마 이세상에서는 많은 열쇠를 가진 사람들이 부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국열쇠를 갖었다면 우리는 우주의 제1가는 부자일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이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우리 것이라 이 말입니다.
그러면 천국열쇠가 무엇인지 알아야 겠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이게 무슨 소리인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그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참 교육이다. 이 교육은 힘을 준다. 하나님과 그의 보내
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적 지식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킨다. 실물
114 우리의 품성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땅과 하늘에서 평가
되는 어떤 것보다 더욱 고상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최고의 교육이다. 그것이 하늘 도성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가건 34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