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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경덕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6.27 12:21 조회수 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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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낡은 옷과 떨어진 신만 신고 다니던 한 스님이 나라가 초청한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이날도 스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허름한 옷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잔칫집에 나타났습니
다. 그때 삼엄하게 주위를 살피던 문지기들이 스님에게로 다가오더니
"거지는 이런 데 올 수 없습니다. 당장 나가세요.”
하면서 스님을 문전박대했습니다. 쫓겨났으면서도 허허 웃었지만, 스님의 얼굴에는 왠지 모
를 씁쓸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번에는 누가 보아도 번드레하게 보이도록 차려 입고 그 잔치집으로 다시 갔습니
다. 문전박대했던 문지기들이 스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굽신거리며 윗자리로 모셨습니다.
식탁에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게 생긴 산해진미(山海珍味)들이 즐비하게 차려져 있었습
니다. 잔치에 온 사람들은 즐겁게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스님은 한참동안 생각
에 골똘히 잠겨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 왜 안 드십니까? 속이 안 좋으세요?”
옆자리에 앉은 손님이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자, 듭시다.”
그런데 스님은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옷에다 붓는 것이었습니다. 처
음에는 실수로 그랬거니 생각하고 키득거리던 사람들이 한참을 지켜보다가 계속되는 이 행
동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었습니다.
“스님, 왜 음식을 옷에 부으십니까?”
그러자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이 음식들은 날 보고 준 것이 아니라 내 옷을 보고 준 것입니다. 그러니 옷에다 붓는 것
이 당연하지요.”
외모를 보고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는 속 좁은 세태를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옛날부터 옷이 날개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겉모습은 그 사람에 대한 짐작을 부릅니다. 잘
차려입은 옷차림은 그 사람의 성향 그 자체를 대변합니다. 스스로가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
든 아니든 간에 옷차림은 분명 그 사람의 품격에 점수를 매기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더러운 옷과 아름다운 옷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준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
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
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
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
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슥3:1-4
위에 성경 내용은 바로 우리들이 당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염려를 거두시실 바랍니다. 우
리는 모두가 그슬림을 당한 나무입니다. "그슬린 나무"는 보기도 좋지 않을뿐더러 닿은 곳
마다 검정으로 얼룩지게 합니다. 누가 그렇게 우리를 "그슬린 나무"로 만들었습니까? 우리
의 원수 사단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는 도리어 조소하고 고소합니다. 그러나 염려 마십시오.
아버지 앞에 서면 우리의 변호사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변해 주십니다.
"스가랴서의 아름다운 비유적 예언 속에서 여호와의 천사 곁에 선 누추한 옷을 입은 대제사
장 여호수아는 죄인을 대표합니다. 주께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슥 3:4, 5)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똑같이 하나님께서
"구원의 옷" (사 61:10)으로 그대를 입히실 것이고, 의의 겉옷으로 입히실 것입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라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
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하나님은 왜 허물이 있는 여호수아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사단을 책망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친히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허물에 대해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그를 세우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남을 무리들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일에는 후회가 없으십니다.
요한 웨슬레는 간증할 때마다
"나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입니다"
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답니다. 요한 웨슬레가 6세 때 교회 목사관에서 잠을 자고 있었
는데 그곳에 화재가 났습니다. 지붕이 화재로 말미암아 가라앉기 직전 이웃집에 살던 사람
이 뛰어들어 극적으로 어린 요한 웨슬레를 끄집어냈습니다. 이 사건을 기억하면서 웨슬레는
한 평생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때 정말 죽었어야 할 존재인데 주께서 나를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처럼 살리셨
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마침내 나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셔서 현재까
지 쓰고 계십니다”
마치 우리는 불구덩이에서 꺼낸 나무와 같습니다. 아무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단의 정죄에서 보호해주시는 참으로 선한 목자요 긍휼의 아버지가 되십
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일본이 낳은 유명한 종교가입니다. 그는 시장 아버지와 첩이었던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장인 아버지 집에서 자라기는 했으나 첩의 아들이라고 눈
칫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본처의 자식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저
주스러운 생이었겠습니까 ? 왜 나같은 것을 낳았느냐고 부모를 원망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담모퉁이에 우두커니 기대서서 자기 인생을 비관하고 있을 때에
북 치고 나팔을 불면서 지나가는 구세군 전도대를 만났습니다. 그들이 전도하면서 외쳤습니
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그들 가까이로 다가서서 물었습니다.
“기생 아들도 사랑하나요?”
“아무렴요,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글 가운데에는
‘나는 기생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 확실한 의식, 그 감격이 가
가와 도요히코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내가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나님은 먼저 사단을 책망하시고 여호수아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고 하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하나님은 천사들을 시켜서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게 하시고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며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입는 영화로운 옷을 입히시고
정한 관을 머리에 씌워 주셨습니다.
이는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할 영적 권세를 부여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에게 허물과 죄가 있었으나 심판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를 의롭
다고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권세를 위임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64장에 “우리의 의는 마치 더러운 옷 같으며”(6절)말씀처럼 우리는 주님 앞에 도
저히 설 수 없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하신 예수님 앞에 나오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요
일1:7). 더 나아가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예수님이 주시는 의의 옷, 생명의 옷, 아
름다운 옷을 입혀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아버지는 그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라고 했습니다.
지금 돼지우리에서 돌아온 탕자의 그 옷은 도저히 아버지 집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더러
운 옷을 입고는 아들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옷은 반드시 벗어야 됩니다. 그래서 아버
지는 새 옷을 내어다가 입히라고 한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2절과 14절에는
빛의 갑옷을 입으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 옷은 죄 사함을 입은 자가 입는 옷입니다. 영적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바로 그 옷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만 입혀주신 것이 아니라 더 놀라운 축복까지 약속해 주
셨습니다.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
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만 하면 하
나님의 집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뜰을 지키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주를 다스릴 수 있는 영적 통치권과 하나님의 집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는 뜻은 천사들처럼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통할 수 있
는 축복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특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뜻을 섬기며 백성들의 죄
사함을 섬길 수 있는 중보자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여호수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더 계속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
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도록 회복되었다. 만일 그들이
그분의 도를 준행하고 그분의 율례를 지키면 그분의 공로에 의하여 그들은 "예표의 사람"이
되고, 세상의 나라들 가운데서 하늘의 택한 자로 높임을 받을 것이다. 5증언 470』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의 구속자요 구원자로 계시되어 있다. 이제 남은 백성들은 그들
의 순례길의 눈물과 굴욕이 하나님과 어린양 앞에서 기쁨과 영광으로 바뀌어지기 때문에 진
정으로 "예표의 사람"이 된다. 2보감 179』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하였다. 그리스도의 공덕을 힘
입어 그들이 만일 그분의 길로 행하고 그분의 법도를 지킨다면 그들은 "예표의 사람이" 될
것이며 세상 열국 중에 하늘의 선민으로서 높임을 받을 것이다. 선지 585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그 앞에 앉아 있는 동료 제사장들이 ‘예표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
다. <예표>란 앞으로 오게 될 어떤 것의 그림자나 상징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종 '순'이 나게 될 예표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순>은 잘려진 나무 밑동에서 돋아
나는 '새싹'을 가리킵니다. 이 <순>은 처음에는 연하고 순합니다. 그러나 이 <순>이 자라면
큰 나무가 됩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이런 순과 같은 특성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
를 정결케 하여 대제사장으로 세우시면서 이런 하나님의 종 순, 그리스도가 나올 예표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의 모습이나 역사가 그리스도의 모습과 역사의 그림자가 된다는 뜻입
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예표로
쓰임받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은혜입니다.
여기서 다시 정리하면 대제사장은 예수를 대표한다. 동시에 우리 마지막 무리를 대표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예표의 사람은 예수님인 동시에 마지막 당신의 백성인 것이다. 즉 남은 무
리는 작은 예수가 된다는 것이다.
또 9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
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나타날 그리스도의 모습을 일곱 눈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새
겨진 돌로 묘사하셨습니다. 일곱 눈이 있다는 것은 온 세상을 감찰하시는 만유의 주권자라
는 의미입니다.
또 글을 새긴다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돌을 세우
셔서 그를 통해서 그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해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돌>은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마21:42, 벧전2:4).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땅의 죄악을 단번에 영원히 사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7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
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27절).
이렇게 하나님의 종인 순과 돌로 표현된 그리스도가 오실 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어떤
새 삶을 살게 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
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가난과 도적질, 미움과 시기, 분쟁과 분열,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과 고독으로 가득
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평화와 안정이 임하고 풍요와 사
랑의 교제가 넘치는 새 생활이 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나 이런 축복을 얻고 누리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은
혜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해서 살므로 이런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호수아보다도 더 더러운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부족하고 죄많은 사람입니
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의 옷을 벗겨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시듯
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새 옷을 입혀 주십니다.  사단이 아무리 쫑알거려도 하나님은 전혀
상관도 안하십니다. 우리에 대해 전혀 후회가 없으십니다. 우리를 부르심에 전혀 실수가 없
으십니다. 이 같은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 62:5
하나님 여호와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
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부친은 종들에게 명하여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
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
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고 하였다. 실
물 204』
 『하늘과 땅은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 고 하는 아버지의 기쁨의 노래에 맞추어 합창하게 될 것이다. 실물 207』
『사단에게 속임을 당한 자들은 하나님을 가혹하고 각박한 분으로 본다. 그들은 하나님을
마치 저희를 비난하고 정죄하려고 어떤 꼬투리를 잡으려는 분으로 보며 저희를 도와주실 상
당한 이유가 없는 한 죄인을 받아 주려 하지 않는 분으로 여긴다. 실물 204』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돌아 온 탕자의 과실을 결코 묻지 않으셨습니다. 과거의 허물을 탓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얼마나 좋은신 아버지십니까!!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
그것은 보수가 아니고 선물이다. 그대들은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공로 없이 주시는 그것을
탕자처럼 받기만 하면 된다. 실물 210
하나님을 뵙는 것이 하늘의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
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그분을 아버지로 아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는가? 가
건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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