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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미덕은 아름다운 품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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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경덕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7.27 21:20 조회수 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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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보좌를 두르고 있는 언약의 무지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한 말
씀에 대한 영원한 증거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악과 더불어 투쟁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을
우주에 증거 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가 존속하는 한 우리에게 능력과 보호를 약속해
주는 보증이 된다. 가건 301』
영국교회가 심한 박해를 받고있을 때의 일입니다. 200여명의 성직자들이 적군을 피해 도망
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캠브리지에서 온 헤라이헤이비목사가 포함돼있었습니다. 그
는 뒤에서 추적해오는 적군을 피해 벽돌공장의 가마솥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가마솥의 입구에 부지런히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
나지 않아서 군인들이 몰려왔습니다.
“반드시 이곳에 숨어 있을 거야. 저 가마솥이 아무래도 수상해”
그때 다른 군인이 말했다.
“입구에 거미줄이 엉켜있는 것을 보니 저곳에 숨지는 않은 것 같군. 자, 다른 곳으로 가보
자구”
헤이비목사는 거미 한 마리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생명이 거미 한
마리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평생 겸손한 자세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인
간은 지극히 나약한 존재입니다. 때로는 거미 한 마리에 의해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합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잠14:30
어느 90세가 넘은 정정한 노인의 건강비결을
"나는 다만 걱정을 한다거나 심하게 긴장하는 일을 삼가고있을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원한
을 품거나 미워하는 일은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넘쳐흐르는 선의를 품고 내 자신과 타인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기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주십사하고 기
도생활을 하고있습니다."
고하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품성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회할 때 더욱 그
러합니다.
이웃과 현실에 불만이 많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길을 걸으면서도 투덜거렸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정말 비열해. 남을 도울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내 직장
동료들은 또 얼마나 이기적인지 몰라"
그때 그의 곁에서 함께 걷던 천사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도 형편없나요?"
"물론이지요. 저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 좀 보세요. 저 탐욕스런 눈과 불만에 가득 찬
입과 교만스런 표정을 보세요. 내가 어떻게 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천사가 불만에 가득 찬 사람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습니다.
"당신은 지금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 거울을 향해 걸어가고 있고, 당
신이 말한 그 못된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불만과 저주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추악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평안이 그 마음에 차고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은 더욱 활기차게 되고,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은 건강하게 변화되는 것
입니다. 우리는 평강의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이고 하나님의 평안이 늘 내 마음을 주장
하게 하여, 심신에 건강을 얻고 활기찬 생활, 긍정적인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마음의 화평"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어에서 마음은 사람 자체나 그의 인격 전체를 의미하고, "화평"이라고 번역된 말(마르
페)은 '건강함'(건전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언급된 "마음의 화평"은 전인격이 건
강(건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인격은 여호와를 섬기고 그 뜻을 좆을 때에 얻을 수 있
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사심이나 정욕을 좆지 않고 하나님의 뜻, 즉 진리를 행합
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진리 안에서 행하고 평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학자는 본문에 나오는 "화평"을 "고요한", 또는 "온유한"이란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
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마음이 고요하고 온유합니다. 안정되고 고요한 마음은 몸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몸과 영혼이 안정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기는 뼈를 썩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시기"로 번역된 말(키느아)은 부정적 의미의 '열심'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시기'
나 '질투'보다는 '격렬한 흥분상태'를 가리키며, 본문에서는 이 말이 건강(건전)하지 못한
인격(마음)을 의미합니다(욥 5:2). 온전한 인격과 평안한 마음이 육체에 생명을 주는 반면,
건강(건전)하지 못한 인격과 마음은 몸과 마음을 해롭게 합니다. 이 구절은 인간의 질병의
근원이 마음의 부패에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시기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심리 상
태는 이기적인 태도에서 옵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경쟁적인 태도를 갖게 되어 여러 가지 부정적인 심리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불
안과 염려와 지나친 스트레스는 몸과 뼈를 상하게 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할 때에 그는
온갖 압박을 경험했고, 악신이 역사할 틈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평안 마음을 유지하고 이로 인해 건강하게 되지만, 시기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해치고 악
령이 역사할 틈을 제고하게 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
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4
1858년 미국의 곡예사 촬스 블론딘(Charles Blondin)은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외줄을 걸고
횡단할 것을 발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아가라 폭포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구경나온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이 장대 하나만 들고 무사히 건너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외칩니다. 그는 여유 있는 자세로 외줄을 타기 시작합니다. 외줄을
타는 동안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가 안전하게 도착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합니다. 블론딘은 반대쪽으로 건너기 전에 다시 묻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을 등에 업고 건너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건널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까?"
사람들은 믿노라며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는 용감해 보이는 청년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제 등에 업히시겠습니까?"
그러자 청년은 하얗게 질려 달아나 버립니다. 그때 블론딘은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것이 진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살난 자신의 딸을 업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 기네스북에 그의 이름을 올립
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감정이 충만하다고 믿음이 충만한 것도 아닙니다. 믿음에 대
한 지식이나 이해를 가졌다고 믿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바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입
니다.

첫째로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Leo Tolstoy)가 길을 가는데 걸인이 나타나더니 손을 내밉니다. 주
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동전이 한푼도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걸인의 손을 꼬옥 쥐며 속삭입
니다.
"형제여, 미안하오. 지금 가진 돈이 한푼도 없구려. 정말 미안하오."
그때 걸인은 미소를 지으며 톨스토이에게 말합니다.
"저는 돈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형제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
리고 선생님의 손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한 푼의 돈보다 귀한 것은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믿음도 행함으로 나타날 때 유익의 역사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무슨 구원이 있으리요
윌버 체프맨(J. Wilbur Chapman)이 청년시절에 무디(D.L Moody)의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
었습니다. 그 날 구원에 대한 말씀이 증거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체프맨이 무디를 찾아
가 말합니다.
"무디 선생님, 저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그때 무디는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네, 믿기는 하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무디는 요한복음 5장 24절을 읽으라고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체프맨에게 이 말씀을 믿느냐고 물으니 믿는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었습니까?"
"글쎄요".
무디는 한 번 더 읽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믿는 자가 영생을 얻었다면 당신에게 영생이 있습니까?"
"제가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이때 무디가 소리쳤습니다.
"당신이 무엇인데 하나님을 무시합니까?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면 있는 것입니다".
무디의 고함에 깜짝 놀란 채프맨은
"그러면 나에게 영생이 있는 것입니까?"
라며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
라는 무디의 말에 체프맨은 구원의 확신없이 아무것도 행치 못하고 살아왔음을 깨달았습니
다. 그 후 체프맨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무디가 은퇴한 후에 그 교회의 후임자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무슨 상급이 있으리요
어떤 집사가 천국에 갔습니다. 성경대로 천국문이 진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습니다. 힘껏 두드리니 문이 열리며 베드로가 나타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집사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천국에 들어오려면 증표가 있어야 합니다. 가지고 있습니까?"
아무리 찾아보아도 증표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정합니다.
"증표를 찾아도 없네요. 허지만 수십년 동안 저는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들어가게 해 주십
시오."
베드로는 단호히 말합니다.
"증표 없이는 안됩니다. 믿음의 행함도 없이 교회 마당만 밟고 다녔으니 무슨 증표가 있겠
습니까? 그만 돌아가시오"
라며 천국 문을 닫아버립니다.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이름뿐인 집사가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신실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상급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행함으로 믿음을 입증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성서학자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의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된 것은 신앙에 대한 이론에 설복이 되어서가 아니라 기독교
인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이유는 성경 내용
을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교인들의 불친절과 추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클레이의 말에서 우리는 행함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몰라서 행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알면서도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는 이유
는 믿음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따릅니다. 부디 행함
이 있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이익을 주는 믿음, 어
디서나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 어떠한 일에도 상급을 얻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롬2:28
하나님의 백성이던 유대인 가운데도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이 있습니다.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 은 무엇으로 나누며, 그 중 하나님의 참백성은 누구입니까? 
참할례는 무엇인가요? 
'주여주여'한다고 모두 다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며, 오직 주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자가 참
백성입니다.
 
 표면(겉:외식)적 유대인과 이면(속:마음)적 유대인
표면적 유대인은 유대인이로되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은 거짓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의 참백
성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은 마음에 할례를 받은 참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의 참백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 가운데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이 있듯이 그리스도인들 중
에도 표면적 그리스도인과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 중 이면적 그리스도인은 속사
람이 거듭난 참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의 참백성입니다.  그러나 표면적 그리스도인은 사람
의 계명으로 배우고 가르쳐서 입술로만 '주여주여'하는 자요(사29:10-13, 마7:21), 거짓 그리
스도인이며, 하나님의 참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을 두 부류로 나누시고,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자를 백성
으로 삼으십다.
성경에 약속하신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인은 영적 새 이스라엘입니다
(계7:, 계14:, 계21:). 이들은 육적 이스라엘(표면적 유대인)과 표면적 그리스도인들과는 관계
가 없는 이면적인 하나님의 백성(알곡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하나
님의 법인 말씀(요12:48)을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여 영적 새 이스라엘이 되어야(히
8:7-13, 계7:) 영생을 받게 됩니다.

 마음에 하는 참할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육신의 가죽에 행한 할례는 참형상이 아니며,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히10:1). 참할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하는 것입니다(렘
4:4).
내게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모두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
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 들어갈 것이다. 마7:21
무엇을 행하고 점자하고, 진리교회에 소속되었고, 전도를 많이 하였고 목사고 신학 박사고,
구제를 많이 하였다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사랑이 빠진 외식은 하나님께 가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무엇인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21절)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품성을 얻는 일이 쉽다는 보증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고상하고 모든
면으로 원만한 품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고상한 품성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통하여 개인이 노력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능과 정신력을 주시지만 품성 형성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품성은 자아로
더불어 맹렬하게 싸움으로써 형성됩니다. 타고난 성벽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거듭거듭 계속
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면밀하게 비판해야 하고 단 하나의 좋지
않은 성벽도 고쳐지지 않은 채 남아 있도록 해서는 안 됩다.
『어느 누구도 "나는 품성의 결점을 고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게 하라. 만일 그대가 그
렇게 생각한다면 그대는 분명히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대의 의지
에 달린 것이다. 그대가 하려고 하지 아니하면 할 수 없게 된다.  실물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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