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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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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경덕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7.21 08:50 조회수 4,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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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모여 있는 광경을 꿈에 보았다. 성전 안으로 피한 사람들만이 마지막 때에 구원함을 받을 것이며 밖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밖에 머물고 있는 무리들은 각각 자기들의 길을 가면서 성전으로 들
어가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 안에 들어가야 안전하다는 것은 교묘한 속임수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피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심지어 성전으로 급히 들어가는 사람들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붙잡기까지 하였다.
나는 조롱과 조소가 두려워서 무리가 해산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그
들의 눈에 띄지 않게 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파는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늘어났다. 그래서 나는 너무 늦을까 염려되어 급히 집을 나와 무리를 뚫고 들어갔다.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열망 때문에 나는 주위에 있는 군중들을 살펴볼 겨룰이 없었다. 성전 안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그 거대한 건물이 한 개의 큰 기둥으로 받쳐져 있는 것을 알았고 그 기둥에는 온 몸이 상하여 피투성이가 된 어린양 한 마리가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 들어온 무리들은 이 어린양이 우리 때문에 찢기고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보였다. 성전 안에 들어온 이들은 모두 그 어린양 앞에 나아와 그들의 죄를 고백해야만 하였다. 그 어린양 바로 앞에는 높다랗게 좌석들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매우 행복해 보이는 한 무리가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늘의 빛이 비치는 것 같았으며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고 천사들의 노래인 듯한 즐거운 감사의 노래를 부를고 있었다. 그들은 어린양 앞에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았으며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떤 유쾌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전에 들어온 후에도 두려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 굴
욕을 당해야 한다는 창피함이 나를 엄습해 왔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이끌리는 것 같더니 어린양을 만나기 위하여 천천히 기둥 주위를 돌고 있었다. 그 때 나팔 소리가 울리더니 성전이 흔들리고 모인 성도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으며 그러고 나서 무서울 정도로 발고 환한 빛이 그 건물을 비취었다. 잠시 후 행복하게 보이던 밝은 빛과 모두 사라져 버리고 나만이 두렵고 적막한 밤에 홀로 남게 되었다."(초기 78)참으로 의미 심장한 꿈의 계시다. 내용을 가추려 보자!1. 한 선정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나2. ??에 있는 한 무리들이 그 성전으로 들어가는 무리들을 조롱하고있었다.3. 조롱의 이유는 그 안에 들어가야 안전하다고 하는 것이 오류라는 것이다.4. 화잇은 조롱과 비난을 무릅쓰고 성전안으로 들어갔다.5. 성전 안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셨다. 6. 중앙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기둥에묶여 있는 어린양 예수님이 있었다.6.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죄의 용서를 받았고, 모두가 행복해 하였다.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기록은"성전안으로 피한 사람들만이 마지막 때에 구원함을 받을 것이며 밖에 남아 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라고 한 성전이 과연 어떤 성전일까? 다음의 성경구를 살펴 보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10:19

"나는 셋째 천사가 위를 가리키면서 실망한 자들에게 하늘 지성소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났다.

희망과 기쁨이 그들 가운데 새로이 솟아 올랐다." (초기,255)
"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완전한 진리의 연결을 보고
그 순서대로 즐거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 성소로 들어갔다." (초기 256)
화잇선지자가 꿈에 보고 경험적으로 들어갔던 성전은 지성소였다.

이 지성소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지성소로 들어가게하는

것이 세천사의 사명임을 명시한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도 하나님의 백성들로 믿으

로 지성서에 들가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단은 이 기별을 가로막고 조롱한다.

법궤는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를 상징한다.

아버지 보좌 앞에는 우리 주님도 함께 계신다.

그는 중보자시다.

그의 중보는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은 것이였다.

믿음으로 지성소의 체험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체험한 이들에대해 조롱한다.

 

자서전 39페이지에

"천부(天父)의 사랑에 대한 새로운 견해"라는 제목으로 그 다음과 같은 글을 기하였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천부)의 사랑을 느꼈고 나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령의 증

거를 갖게 되었습니다. 천부께 대한 나의 견해는 변하였습니다. 나는 분을 더이상 인

에게 맹종을 강요하는 가혹한 폭군으로 보지 않고 친절하자애로운 아버지로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마음은 열렬하고 깊은 애정으로 그분께 이끌렸다. 그분의 뜻에 순종하

는 것은 기쁨이었으며, 그분을 섬기는 일은 즐거움이었습니다. ---
나의 평안과 행복감은 전에 나를 괴롭히던 우울증과 고뇌와
너무도 반대되는
것이어서

내가 마치 지옥에서 구출되어 천국으로 옮겨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내 생애의 시련이

었던 그 불행에 대하여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있었으니, ---

내 마음에는 구름 한 점도 없었고, 내가 알고 있는 의무 중 어느 하나라도 등한히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내 마음에 예수님과 천국을 간직하는 일에 나

의 온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
이런 축복을 받은 후 간증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가만
히 있을 수 없어
서 일어나 나

의 경험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가 내 입술에서 줄줄 흘러 나왔으며 나의 마음은 절

망의 속박에서 해방된 행복감에 너무 도취되어 내 주위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과

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의 눈물로 목이 메는 것 외에는 나의 평안과 행복을 발

표하는 데에 아무런 곤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와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 주신데 대한 기쁨을 말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차분한 마음으

로 눈물을 흘리며 말할 때에 나의 영혼은 감사의 마음으로 하늘에 이끌리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이 울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마치

아버지께 나가는 듯하였습니다."
위에 초기문집 78페이지의 사건 즉 성전 기둥에 묶인 어린양
의 사건과 화잇
부인이 하나님

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바로 우리 모두가 경험하여야할 사건이다.

1844년 이후 우리 재림신도는 믿음으로 지성소로 들어가는 경험을 했어야 한다. 거기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어야 한다.

야곱의 환난 하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하고 염려를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었던 환난의 때가 미구에 우리 앞
에 전개되려고 한다
.-- 흔히 예

상보다는 실지로 당하는 환난이 가벼운 것이지만 우리의 앞에 놓인 위기에 있어서는 그렇

않다. 그것을 아무리 크게 상상하여도 그 큰 시련을 여실히 표현할 수 없다. 그 환난 때에는

누구나 각각 자기의 행한 것은 가지고 하나님의 앞에서야 할 것이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서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義

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9겔14:20)" (합본685,586)
이러한 기록으로 인해서 야곱의 환난은 통과하기 힘든 전에도
후에도 없는 시
련의 사건으

로 간주된다. 과거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사건이라면? 어떤 것일까?

과거에 예수를 믿는다고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순교를 당했다. 어떤 방법이였나?

굼주림과 사자의 밥이되기도 하고, 톱으로 켜 죽임당하는 정말로 상상을 초월한 온갖 방

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해다. 그런데 이보다 더하다면 도대체 어떤 방법의 환난이란 말인가?

통 상상을 불허한다. 그러나 위에 기록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물론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야곱의 환난을 당이유도 없지만 가상적으로 그들이 당한다면

견딜 수 없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그 근거는?
"야곱이 자기의 죄 때문에 오랫동안 곤란과 자책감과 고통을 참
아 왔다. 이제는
용서받았다

는 확증을 받아야 한다. 야곱이 그에게 매달려 축복해 달라고 탄원한다. 사단은 천사들 앞

에서 야곱을 비난하고 그가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 받음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족장이 기

도로 밤을 새울 때,  사단은 그에게 범죄한 것을 깨닫게 하고 그를 낙심캐 하고 하나님을 붙

든 손을 놓여 버리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야곱은 거의 절망할 지경에 떨어졌다."(쟁하.487)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을 죽이고자 열망하는 원수들에게 에워
싸일지라도 그
들이 겪는 고

민은 진리를 위하여 당하는 핍박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그들은 아직 모든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용서를 받았다는 보증을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은 고민이

나 죽음 앞에서도 위축당하지 않을 것이다." (쟁하.486)
위의 기록을 봐서는 갈대 없이 야곱의 환난이란 죄와 씨름하는
환난이다. 평소에
지은 죄

를 사단은 고발을 하고 이 죄악의 짐이 그리스인들 짖 누르기 때문에 죽을 맛이다. 사단은

낙심케 하려고 너 아무 때 무슨 죄 무슨 죄 지었지 한다는 것다. 그러나 속지 말라. 이

것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안는다.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만일 야곱의 환난이라는 그 환난에 참여한다면 죄 짐으로 그 영혼은

박살난다 그러니 지금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되라. 진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얻는 특권을 누리라는 경고일뿐이다.

하나님의 친자녀들에게는 결코 야곱의 환난이란 없다.

악인들에게는 7재앙이 있고 마실 물도 먹을 음식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때다.

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물과 양식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아무런 준비 없이 최후의 쟁투를 맞이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
은 절망 끝에 무서
운 고

민의 말로 그들의 죄를 자복할 것이다. 그 고백들은 마치 에서나 유다의 고백과 같은

성질의 것들이다. 그런 고백을 하는 자들은 죄 자체를 뉘우친 것이 아니고 죄의 결과 때

문에 슬퍼한다." (쟁하,488)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야곱의 환난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경고
다.

누구를 막론하고 앞으로 야곱의 환난을 통과하던지, 7재앙을 통과하던지 불가불 어느

하나는 통과할 수밖에 없다. 야곱의 환난은 외적으로 보기에 고통은 있으나(생각을 바

로 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고통이 없다) 승리의 대열이요, 영생의 대열이나 7재앙을 통

과하는 자들에겐 영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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