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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족보차이에 관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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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문제 제기


 성경에서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족보가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근원부터 의심스러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 글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고

성경이 오류가 없는 진리임이 다시한번 명백하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다음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족보에서 차이가 나고 있는 부분들이다.


(1) 마태복음은 요셉의 아버지를 '야곱'(마1:16)으로, 누가복음은 '헬리'(눅3:23)로 제시하고 있다.


(2) 마태복음에도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다윗 이후의 왕들의 족보가운데서 아하시아,

요아스, 아마샤 등과 뒤의 여호야김등 4인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즉, 대상 3장 112절에서는 요람의 "아들은 아하시야요 그 아들은 요아스요

그 아들은 아마샤요 그 아들은 아사랴(웃시야)"를 낳았다고 했으나

마태는 요람과 아사랴사이의 3인을 빼고

"요람이 웃시야를 낳" (마1:8)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역대상 3장 15절에서 "요시야의 아들들은… 엘리야김과…"라고 기록하면서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 아들 여고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마태는 엘리야김을 빼고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 (마1:11)았다고 말하고 있다.


(3) 마태와 누가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차이점이 없이 족보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런데 다윗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족보를 쓰고있다.

마태는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으로부터 남방 유다 왕들의 족보 13명(다윗부터

여고냐전까지 14대)을 쓰고 있는 반면 누가는 다윗의 셋째 아들인 나단으로부터

넬리까지 유다왕의 족보가 아닌 나단의 후손 19명의 전혀 다른 족보를 쓰고 있다.


(4) 이렇게 마태는 솔로몬, 누가는 나단을 선택하여 서로 다른 족보를 쓰다가 갑자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육신적 아버지 요셉으로부터 위로 거슬러 11대,

누가복음에서는 요셉으로부터 위로 거슬러 20대에서 같은 인물들인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쓰고 있다. 누가는 무엇 때문에 마태복음의 왕들의 후손인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나단의 족보에 넣었을까?


(5)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이후 마태와 누가의 족보는 또다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마태는 스룹바벨의 아들인 아비훗으로부터 엘르아살까지 8명을 기록하고,

누가는 레사부터 레위까지 16명을 적고 있다.


2. 문제 해결의 실마리


(1) 도덕적 문제


- 족보에 등장한 네 여인 -

당시의 족보에는 여인들이 들어갈수 없었는데 마태의 기록에는 여자들이 4명이 기록되고 있다.

라합과 룻과 같은 이방의 여자들이 기록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의 차별이 없으며 나그네나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서 더욱 생각하게 하는 것은 부도덕한 기록을 가진 다말의 기록이며

그가 예수님의 족보를 잇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천국은 침노하는 믿음 가진 자들이 얻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즉, 예수님의 족보에는 사실 전개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마태와 누가의 족보 차이를 족보를 맞추어서 풀려고 한다면 불가능할 뿐이다.

그것이 말하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2) 의도된 족보 차이


누가 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당시 의사로서 박식하였으며

구약-역대상 3장-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즉, 저자 누가는 족보를 몰라서가 어떤 영적 섭리 가운데서

의도적인 동기를 가지고 기록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도된 족보 차이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심오한 하나님의 계획하신 영적 기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3. 족보 차이에 관한 고찰


(1) 요셉의 아버지 야곱과 헬리


이 문제는 이미 각 교회들에서 신명기 25장 5,6절에 나오는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를 살펴 봄으로써 간단히 해결되었다.

형사취수법이란 한 사람이 후사가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죽은 형의 아내를 취하여 후사를 이어주는 이스라엘의 제도를 말한다.

이때 대신 낳은 바된 그 아이는 죽은 사람의 자녀로 법적으로 인정되게 된다.

요셉의 출생도 이와같은 과정속에서 이루어졌다.

마태는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하고 있으므로 혈통적인 것보다는 법적인 것을 더욱 중요시하는데

비하여 누가는 예수님을 인자로 묘사함으로 혈통적인 족보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래서 마태는 혈통적인 아버지가 아닌 법적인 아버지인

후사 없이 죽은 '야곱'의 이름을 족보에 기록하였으며

누가는 요셉의 혈통적 아버지인 실제로 요셉을 낳은 '헬리'를 쓰고 있는 것이다.


(2) 의도적으로 빠진 마태복음 족보의 왕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마1:1)로 시작된 이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42대의 족보를 열거하면서 14대씩 세번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14대, 포로다음부터

예수님까지 14대(마1:17)로 나누어서 저자 나름대로의 의도적인 계산을 넣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14대를 맞추기 위해 역대상 3장에 나타나 있는

왕의 족보의 세왕, 즉 아하시아, 요아스, 아마샤등을 빼버렸다.

또한 마태복음 1장 11절에서도 여호야김을 빼놓고도 마태는 모든 대수가 14대씩

세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족보를 세어보면 모두 41대 밖에 안되는데

마태는 42대로 계산하여 말하고 있다.


계산의 밝은 세리 출신인 마태가 산수 계산을 못해서였을까?

그러나 족보를 자세히 보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14대요"(마1:17)라고 설명하여

다윗의 이름을 두번씩 계산하여 42대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매우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마태는 다윗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놀랍게도 다윗이라는 히브리어 자모의 수치를 세어보면

14가 되어 다윗의 자손으로 14대를 맞추기 위하여

왕들의 이름을 뺀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마태가 강조한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영원한 왕인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시89:3,4)고 하였다.



(3) 마태와 누가 족보의 제반적 이해


여기에서는 앞에서 제기한 (3)-(5)의 문제를 한 내용으로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누가는 무엇 때문에 다윗의 아들이 솔로몬임에도 불구하고 나단을 언급하고 있는가?

사무엘하 5장 14절에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여 얻은 소생들은… 나단, 솔로몬,… 엘리벨렛"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역대상 3장 5절에도 밧수아(밧세바)의 소생을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예언되고 표상된 메시아임을 확인한 누가가 구약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솔로몬의 대를 언급하지 않고

나단의 족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태와 누가의 족보에는 계시적 의미가 있다.

마태는 예수님을 왕의 혈통을 기록하고 있으며

누가는 예수님을 인자(사람)로 나타내기 때문에 다윗 다음에 왕통을 이어받은

솔로몬이 아닌 평범한 사람인 다윗의 아들 나단의 혈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왕으로 오셨다.

빌라도가 "네가 왕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요18:3)고 답변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 (빌2:8)다.

즉,  예수님은 [사람]이신 [왕]으로 오신 것이다.

사실 예수님은 남녀의 결합으로 탄생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탄생하셨다.

즉 마리아와 요셉 중 어느 누구의 혈통과도 관계가 없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은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롬1:3)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인간의 혈통과도 무관하게 태어나셨지만 성경에 예언된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흉내내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구약의 메시아의 왕통 족보와 혈통의 족보를 상세하게 예언하셨고

밝혀놓으신 것이다. 요컨대 마태가 솔로몬의 왕통을 적은데 비하여

누가가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제외하고 나단의 족보를 적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의도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족보에 나타난 하늘의 섭리 - 스알디엘과 스룹바벨 -


역대상 3장 10절부터의 다윗 왕조 족보를 살펴보면 스알디엘의 아버지는 여고냐이다.

… 여고냐-스알디엘-스룹바벨… 이것이 우리가 언듯 알고 있는 족보이나

역대상의 족보를 자세히 보면 여고냐는 일곱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스알디엘, 말기람, 브다야, 세낫살, 여가먀, 호사륵, 느다뱌이다.

여기서 장남은 스알디엘인데 놀라게도 스룹바벨은 장남의 아들이 아니라

셋째인 브다야의 아들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상3:19).

스룹바벨은 브다야의 아들인데 마태의 족보에는

스알디엘이 스룹바벨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비밀이 있는 것이다.

분명히 스룹바벨은 브다야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을 비롯한 성경의 곳곳에서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스3:2),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학1:12,14)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해 메시야의 혈통을 잇지 못할 여고냐의 장남 스알디엘이

어떻게 메시야의 족보 명부에 올라가 있는가를 아는 것이 족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형사취수법[형사취수혼(兄死娶嫂婚)이라고도 한다]를 통해 이 비밀을 이해할 수 있다.

스알디엘은 아들이 없었는데 장남이기 때문에 법을 따라 그 장남의 법통을 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 동생 브다야가 아들이 없이 죽은 스알디엘의 아내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스룹바벨이며 마태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법적인 관계를 중시하여 호적상의 법적 아버지인 스알디엘을

스룹바벨의 아버지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법적 족보 보다는 혈통적인 족보를 중요시한 누가도 이 부분에서는

역시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의 법적 족보를 쓰고 있다.

더욱이 나단의 족보와는 관계도 없는 유다 왕족의 족보에 있는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탄생 양태에 대한 비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4:6)는 말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사실상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없었던 스룹바벨은 힘으로나 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의 도우심으로 그 혈통을 법적으로 잇게 된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한 계시적 표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 (마1:18)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성령(하나님의 신)에 의한 탄생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신 새생명으로

이 땅에 오신 것과 자격이 없었던 스룹바벨이 형사취수법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혈통을 잇는 조상이 된 것은 영적 유사성이 있는 것이다.


(5) '의미있는 표현 그 이상'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마태복음은 왕족의 족보들을 언급하여

예수님이 다윗의 가계를 통하여 오실 것을 말하고 있고

누가의 족보는 왕의 족보가 아닌 사람의 족보를 취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누가의 족보 가운데 왕의 족보에 속한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의

족보가 끼어들고 있음을 앞에서 보았다.

물론 마태복음에서 보았다.

물론 바태복음에서 언급한 스알디엘의 아버지인 「여고냐」,

스룹바벨의 아들인 「아비훗」과 누가복음에서 언급한 스알디엘의 아버지인 「네리」,

스룹바벨의 아들인 「레사」와는 어떤 족보상의 연계성도 혈통적인 관계도 없다.


그런데도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이 들어간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영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곧 그리스도의 나심은 인간의 혈통을 통한 것이 아니요

인간적인 방법을 통한 것도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었음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의 직계 족보가 아닌 맞추어진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곧 의미의 전달 목적으로 계산되어진 것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낳고'의 표현을 쓰고 있으나 누가는 '그 이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곧 스알디엘의 아버지는 「네리」가 아니라 족보상의 상위일 뿐이라는 것이며

스알디엘은 네리와 어떤 연관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누가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스알디엘과 그 이상인 네리, 레사와 그 이상인 스룹바벨,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의

2대위인 맛닷과 그 이상인 얀나등의 관계도 족보상 전혀 관련이 없는 사이인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의 출생, 특별히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성령의 잉태하심으로 나타났음을 강조한 것이다.



4. 이글의 결론


마태는 이 땅에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족복를

다윗왕의 법적 혈통을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누가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평범한 사람이었던

다윗의 아들 나단의 족보를 통해 예수님의 인간적 혈통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 누가가 그러한 혈통 중간에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언급한 것은

결국 왕으로 오신 예수,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심을 나타내며

동시에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이 메시야의 조상이 된 방법을 밝히면서

오늘날 죄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메시야의 영적 혈통을 잇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음을 교훈해 주고 있는

놀라운 복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 누가의 족보 차이는 성경이 오류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놀랍게 조화시키면서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는 사람에게만 하늘의 아름다운 빛이 비추일 수 있음을

보여준 계획된 하나님의 섭리의 기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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