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완전론(3)-내가 만난 완전론 주의자들과 그들의 생애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그리스도인 완전론(3)-“내가 만난 완전론주의자들과 그들의 생애" |
---|
하늘에는 오직 의인만이 들어간다. [의인]은 완전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은 누구인가? 성경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을 의인이라 정의했다(잠24:16). 또한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 7:20)고 단언하고 있다. 성경에서 단언하여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했는데도 완전론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실상은 자신들도 그 죄악에서 허덕이고 그 죄들로 말미암아 심적 고통속에 날마다 신음하면서도 일반 사람들이 동경하고 사모하는 그리스도와 같은 죄없고 죄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여 자신들은 마치 그러한 경지에 올라서있고 그러한 경험속에 있는 것처럼 위선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나도 처음 그들을 만나 ‘죄없는 완전’과 ‘죄짓지 않는 완전’을 부르짖는 그들을 보고 매력을 느꼈다. 정말 거듭난지 오래이고 신학 공부까지 한 나였고 많은 이들을 개종케 하여 침례 받게 하면서도 정작 내 자신이 마음에 원치 않는 지체속의 죄의 법으로 인해 신음하고 일곱 번씩 일흔번을 넘어지고 자빠지고 조상으로 물려 받은 유전한 망령된 행실로 날밤을 세우고 자주 금식을 하면서 괴로워 하던 나에게 ‘죄짓지 않는 완전’에 대한 기별은 강하게 내 심장을 후벼 파면서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런 기별을 전하는 그분들은 정말 대단한 영적 경지에 올라선 분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만난 어떤 완전론자는 자신만만하게 자신이 1년 넘게 단 한번도 죄를 짓지 않았노라고 자랑까지 하였다. 그의 말이 얼마나 나에겐 충격적으로 들려졌는지.... 어떻게 해야 나도 그 사람들처럼 그런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에 나의 모든 정신이 집중되고 그 비법을 배우고 알기를 참으로 원하였다 정말 그들이 단상에만 서면 외쳐대는 거의 모든 설교의 중심인 “예수 닮기”와 “예수님과 같은 품성”이 나의 전 소망이요 과제였다. 그런데, 소위 완전주의자들 몇 부류들을 만나 함께 생활해보고 다녀보고 가까이에서 그들의 생활을 목격하고서는 실망과 함께 한편으론 배신감마져 느껴졌다. 1987년 희년 운동을 이끈 전직 S목사의 경우 그도 단상에만 서면 거의 모든 설교가 예언의 신이 주류를 이루면서 품성 변화와 일요일 휴업령 그리고 말세를 위한 준비 등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본 그의 품성의 냉혹성과 무서움은 정말이지 넌더리가 날 정도였다 한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그분의 누님이 독립목회하는 동생을 돕기 위해 매 예배마다 그 교회에 출석을 하였고 십일조와 모든 헌금을 열심히 자신의 동생 교회에 드렸다. 금요일에 예배 드리기 위해 그 교회에 오면 집이 먼 이유로 그 교회 한켠의 작은 사무실 방에서 잠을 자곤 하였다. 그런데 그분이 교회에서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가져다 놓았는데 그분이 어느날 교회에 있는 동안 자신의 막내 동생이 와서 전에 형 교회에 기증식으로 사놓았던 앰프등을 목사인 형한테 말하지 않고 누님이 보는데서 가져간 사건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S목사는 노발대발하면서 자신의 누님이 교회에 있으면서도 그것 하나 지키지 못했다면서 누님이 덮고 자는 이불 모두를 가지고 나가 즉시로 불에 태워버리고 자신의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 그때 그 누님의 겁먹은채로 황당해했던 얼굴 표정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도 내 뇌리에 오버랩되어지고 있다. 안성에는 유명한 한 원로 장로가 한분 계시다 과거 안성교회에서 목사들과 싸워서 나와 계시다가 내가 교회를 개척할 무렾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몇 년간 계셨던 분이시다 이분은 그야말로 유명한(?) 분이시다. 안성교회를 담임했던 목사들과 한두번 사경회등에 들렀던 목회자들은 거의 이분을 기억하게 된다. 아니 기억할 수 밖에 없다. 우리 교회에서 몇 년 계신 것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그분은 부임하는 목사들과 안 싸운 경우가 거의 없었고 어떤 교회를 가시든 언제나 ‘홀로’이셨다. 년전에 그분의 아내 할머님의 장례식을 내가 집례하여 치루어 드렸었다 과거 재림교회를 다니시고 침례까지 받으셨는데 전혀 신앙 생활을 하지 않으시는 그 할머니를 전도하여 재림 신앙을 회복시켜 드리고자 그 집을 수십차례 드나들면서 많은 공을 들였었지만 허당이었고 돌아 가실 때까지 결코 예수님께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셨다. 내가 그 집을 방문하면 그 할머니는 반드시 자신의 남편인 그 장로님이 앉은 방향에서 정반대로 몸을 돌려 앉으셨다 그리고 잦은 방문에 어느 정도 내게 호감을 가지시고 나를 좋아하셨던 그 할머니가 나에게 남긴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나는 저 영감택이(장로)가 믿는 예수는 죽어도 다시는 안 믿습니다“ 그 장로님의 특기는 언제나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비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성전에서의 신발을 벗는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어느 교회를 가든지 반드시 썩먹는 단골 메뉴이시다. 이분의 논리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발을 벗으라’고 했기 때문에 ‘반드시’ ‘절대로’ 교회 안에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교회가 개척 초기에 지하실 교회였는데 그 지하실에 물기가 스며 들어와서 우기에는 물이 흥근히 괴일 정도의 부분들이 있었다. 우리는 실내화를 신고도 조심스러이 다녀야 양말이 젖지 않을 정도인데 그분은 그래도 반드시 언제나 맨발이시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역시 맨발이시고 결단코 실내화를 신지 않으신다. 자신만 안 신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과정공부 시간이라든지 사회를 맡는다든지 사업장려 시간을 맡으시면 어김없이 반드시 그 이야기를 강조하시고 청중들에게 강요하신다. 그분은 우리와 식사를 하시면 반드시 물을 한 사발 옆에 가져다 놓으시고 고춧가루가 묻혀있는 김치를 반드시 씻어서 헹구어 드신다. 자신만 그러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틈만 나면 자극적인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복사해 놓은 예언의 신 구절을 읽어주고 보여준다. 그리고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이분은 예배 시간에는 거의 목사의 설교는 듣지 않으신다.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다른 메모를 하신다. 그러한 그분의 극단주의적이고 바리새인적 생활을 나는 직접 호되게 나무라고 충고해 드리고 권면해 드렸다 나의 직설적인 몇 번의 책망을 견뎌지 못하시고 슬며시 우리 교회를 떠나신 것이 벌써 10여년이 넘었고 이분의 연세가 올해 87세쯤 되신다 그런데 지금도 안성 시내에 가끔 자전거를 타고 다니실 정도로 건강하신편이시며 가끔씩 안식일에 불시에 우리 교회를 방문하시기도 하시고 우리 요양원에도 가끔식 오신다. 길거리에서 마주치거나 교회에 오셔서 말할 기회만 주어지면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고 다니시는 예언의 신 구절들을 보여 주시면서 이 교단이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시고 성전에서의 신발 벗는 문제와 성전에서의 정숙한 예배 그리고 안성 교회에 그동안 부임한 목사들의 수십년 전부터의 과오와 실책 등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신다. 그 연세에 기억력 하나 정말 대단하시다. 그 때 연도와 날짜, 심지어 시간까지 증거로 대신다. 그리고 이분은 우리 교회를 나가신후 안성교회에 복귀하셨다가 또 다시 부임한 목사와 싸우시고 그 후부터 이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시는데 서울 Y교회와 개혁교회 등 특별 집회에 참석을 하신단다. 나는 이분께 몇 번이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연세도 있으시고 하시니 가까운 안성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이전의 교우들과의 인간관계를 회복하시고 이제 얼마남지 않은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하시라고.... 그러나 이분은 전혀 내 권고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일반 안식일교회는 수준이 낮아서 설교를 들을 수 없고 그마나 자신이 찾아 다니는 그 특별 집회에 가야 일요일 휴업령에 대한 정보도 듣고 품성변화와 교회의 타락성에 대해 안다는 것이었다. 이분이 늘 상 결론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자신을 아신다는 것.....?? 나는 과거에 k선교센터의 중직을 맡은 한 장로님을 가까이에서 몇 번 만나면서 어느날 어느 일로 인해 엄청나게 씩씩 거리면서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는 단상에서 완전과 그리스도와 같은 변화된 품성을 강조하는 그들도 역시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임을 알게 되었다. 대개 그런 부류의 책임자들은 단상에서는 무척이나 의롭고 겸손하고 전혀 죄짓지 않는 분들처럼 보여지지만, 단상에서 내려와서의 일상 생활을 들추어보면 그들도 역시 평범한 우리와 성정이 같고 실수가 많은 사람들임을 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헌금하고 협력할 때는 굉장히 친절하고 관심을 갖는 듯 하지만 일단 자신들의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거나 자신들과의 결별이 결정되면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냉혹함과 무정함이 나탄난다. 그리고 그후엔 전혀 모르는 관계로 설정되어 버린다. 그동안 우리가 재림교회안에서 경험했던 무수한 경우처럼 시골생활을 수십년, 아니 평생하고도 목사가 혹은 사모가 암에 걸리고 일평생 채식을 하면서 품성 변화를 줄기차게 외치고 주장한 것과는 전혀 달리 왜, 까탈스럽고 고집스럽고 안하무인이고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용서성없고 냉혹한 성격들이 형성되는 지를 우리는 이쯤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열명의 정탐군들처럼 ‘우리’ ‘내가’가 중요시되어서 그렇다 대개 시골생활하고 채식하는 분들은 자신들은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특별한 순종의 삶을 산다고 하는 영적 우월감의 잘못된 사고에 깊이 빠져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자신들의 스스로 이루어 놓은 ‘행위’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난다. ‘내가 지금껏 몇십년 동안 시골생활했다’ ‘나는 벌써 채식한지 몇 년 되었다’ ‘나는 생각으로까지 죄 짓지 않는다’ '나는 우리 자녀 모두를 세상 학교에 안보내고 선지자 기별대로 가르친다‘ ‘나는 단순한 채식 정도가 아니라 하루 2식을 하고 있다’ ‘나는 고춧가루는 물론 조미료등을 끊은지 몇 년 되었다’ '나는 TV를 안본지 몇 년 되었다‘ ‘나는 벌써 예언의 신을 몇 번 통독했다’ ‘나는 내일 환난이 와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는 등등... 모두가 가나안 정복이 자신들의 노력과 힘과 능력에 달려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면서도 정작 정직히 예수 앞에서의 자신들의 생각과 양심을 더듬어보니 ‘그렇지 못한 모습’ 때문에 고민하면서 정직하지 못한 자신들의 이중적인 생애로 인해 심적 고통은 더해지면서 그들의 성격은 예민해지고 까탈스러워진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선택한 특별한 삶과 생활 방식에 대한 방어본능으로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사는 성도들에 대해 비판적인 정죄의식속에 갇혀 버린다. 죄짓지 않는 완전주의를 부르짖는 미국 K토대 한국지부 모임에 가보라! 그리고 소위 교단이 썩고 부패되어 개혁을 해야 한다면서 모이는 개혁파의 모임들을 가보라! 그리고 대개 그곳에 모이는 분들의 성향을 분석해 보라! 내가 한국에서 시골생활 한다고 하는데는 거의 다 가 보았고 과거 개혁파와 시기파, 절기파, 대화의 아치내분들, 또 미국의 k토대 분들, 서울 Y교회 분들, 제주도에 가계신 O아무개 가족들등 그들 모두와 함께 지내보고 함께 잠도 자보고 생활도 해 보았고 나도 그들과 같이 한때 그런 사고 의식속에 젖어 가식적인 생활도 해 보았으나 그들 중 그들이 그토록 추구하고 소망하는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 죄 짓지 않는 생애, 죄없는 무흠한 생애를 사는 분들은 한 사람도 만나 볼 수 없었다면 이것이 너무 나의 주관적인 판단일까??? 대개 교단 밖에서 하는 특별집회에 모이는 분들을 보면, 그들 중 다수가 기존 교회에서 정상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분들이 아니다 십일조를 정직하게 내지 않는 분들,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자기들 스스로 집에서 가정예배 보는 분들, 목회자와 다투고 교회에서 나온 분들, 그러면서 시골생활하는 분들, 철저히 채식하는 분들, 자녀들 학교 안보내는 분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들이 1년에 한두번 모여서 그렇지 그들을 한 집단으로 해서 함께 살라고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자명하다 모두가 ‘자기’가 너무 강하고 ‘나’를 중심으로 하는 분들이다. 자신들이 그동안 이루어 놓은 업적(?)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누구 말도 안듣는 분들이다. 누가 뭐라해도 스스로는 의롭고 하늘 가까이에 이르러 에녹처럼 산다고 자부하는 분들이다. 내가 신학교 2학년 시절, 강원도 횡성에 시골생활하는 분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었다. 그곳에는 몇 년전에 위암을 돌아가신 J장로님 가정과 서울 중앙교회에서 일요일 휴업령 내린다면서 처녀들과 몇 명과 청년 한명을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간 C형제(과거 내가 고교 시절 출석하던 흑석동 교회 처녀와 결혼한 분) 그리고 내가 학생 전도사로 있던 인천중앙교회의 Y장로님 가정, H집사님 가정, K집사님, 그리고 필수 엄마 가정등이 살고 있었다. 내가 소개하여 인도한 네가정 외의 J장로님 가정은 오래 전부터 이곳을 터전 삼아 철저한 채식에 하루 2식하면서 시골 생활을 해 오신 가정이고 C형제는 유부남이면서 아내를 도시에 놔두고 자신의 가르침에 동조하는 총각, 처녀들을 데리고 와서 2년 가까이 살면서 역시 그들도 철저한 채식과 하루 2식, 그리고 정규적인 노작 프로그램 등의 일과표를 만들어 살고 있는 분들이었다. 이들은 아침 밥을 먹고 나면 밭에 나가 먼저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한 후 호미를 잡고 괭이를 잡고 일을 하는 분들이었다. 새벽기도회도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드려졌고 그 예배들은 모두 철저하게 예언의 신을 낭독하고 설명하는 식으로 드려졌다. C형제 같은 경우에는 나를 비롯하여 외부 사람들이 올 경우 밭에서 일하다가도 본채도 하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였고 그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세상 사람들은 아예 상대를 하지 않고 오직 노작 교육과 성경 공부에만 몰두하여 훗날 늦은비를 받아 세상을 복음화 시키는 주자들이 된다는 것이었다. 전도도 하지 않는 것은 늦은비를 받아야 하는 것이지 준비되지 않은채로 나가 전도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극단적인 태도 때문에 그들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간첩으로 신고되어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되기도 하였다. 그들의 새벽 예배에도 참석을 해 보았는데(오라고도 하지 않았지만) 찬미를 부르는 것도 무릎을 꿇은채 눈을 감고 온 힘을 다하여 열정적으로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내가 자주 그곳을 방문해 보면, 교인이라고해야 열대여섯명하는 그 작은 시골 예배소에서 J장로와 Y장로가 해마다 ‘수석’ 장로직을 놓고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두 장로님 가정을 가며 들어설 때부터 나올 때까지 두분다 모두 나에게 상대방을 비방하고 헐뜯고 욕하고 흠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급기야 예배 시간에 멱살을 잡고 단상에서 끌어내리는 추태까지 벌어졌다. J장로는 또 서울의 C형제측과도 원수가 되어 있었다. 이런 시골에 와서도 함께 모여 예배하지 않고 따로 예배하는 그들을 J장로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였고 C형제측 역시 왜 강요하느냐며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을 계속하였고 결국 감정들이 너무 상하여 안식일 예배 시간에 양쪽이 모여 서로 욕하고 싸우는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결국 유부남이었던 C형제는 함께 간 처녀와의 음란 문제로 산을 내려와야 했고 J장로님은 후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여 사시다가 위암에 걸려 돌아 가셨고 Y장로 역시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말았다.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하고 겪어본 바로 정말 선지자로 말씀하신 건전하고 올바른 종말 의식을 갖고 정상적인 생활 환경과 식생활을 하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개의 분들이 감정적이고 즉흥적으로 기별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여 지극히 잘못된 삶을 살고 계셨고 그들이 바라는대로의 온유하고 변화된 품성은커녕 오히려 도시에 살고 고기를 먹는 분들보다도 못한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폐혜는 올바른 시골생활을 하고 선지자의 말씀을 기쁨으로 순종하여 사는 분들과 성령의 전인 몸의 성결을 위해 감사함으로 식생활을 구별하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닮기 소망하는 진실하고 신실한 분들까지도 악영향을 받게하고 오해를 받게 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어떤 분들은 왜 긍정적인 면을 보지 않고 부정적이 면들만 드러내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실상을 말하는 것이고 ‘일부’가 아닌 ‘대개’가 그렇게 사는 것을 본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극소수의 분들만이 정말 놀라운 변화속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순종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말을 한다고 하여 완전론자들이 의의 표준내지는 상대를 판단하는 잣대로 활용하는 그런 생애를 내가 살지 않는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최근에 우리 가정에 작은 변화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현미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가끔 닭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내 아내가 요즘 내가 강권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혼 초기에 나는 현미밥과 잡곡밥을 좋하하여 몇 번 말하는데도 한두번 해 주다가 다시 자신이 좋아하는 백미로 돌아가는 일 때문에 다툰적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아내가 가끔 먹고 싶다고 하면 나는 과거 나의 입맛을 경험을 떠 올리며 흔쾌히 아내를 위해 닭고기를 사 주었었다. 그런데 그런 아내에게 최근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제 닭고기가 싫어졌고 다시는 안먹겠다면서 주방 기구 이것 저것을 사더니만 맛있는 현미밥과 함께 콩으로 만든 갖가지 요리들을 밥상에 내어 놓는 것이었다. 콩으로 만든 불고기와 건강식 피자, 건강식 케잌까지 정말 우리 아내가 이런 솜씨가 있었음을 일찍이 전혀 알지 못할 만큼 달라진 밥상을 받으면서 정말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입맛을 변화시켜 주셔서 에덴의 식탁으로 아내의 마음을 돌려 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것은 그동안 꾸준히 새벽마다 아내를 위해 기도했던 나의 기도의 넘치는 응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말하지만 우리가 마지막 백성들로 좀 더 구별된 영적 삶을 위해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고 행하는 그 모든 것들은 우리를 의롭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행위들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은(혹은 완전을 주장하는 것)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롬10:3)려는 것이며 결국 그러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사 64:6)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여호와만이 우리의 의가 되시고(렘23:5) 예수님만이 우리의 의이시고 구속이시다(고전10:30).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시며 모본이시다 그분만이 죄가 없으시고 죄를 범치도 않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기에 우리의 유일한 구주가 되시고 우리 죄인들의 [의]가 되시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인간이 한번도 죄를 짓지 않고 범죄치 않고 죄를 알지도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노력하여 행위로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이유도 우리의 유일의 구원자가 되실 수 있는 자격도 없으신 것이다. 우리와 같은 죄인이 한번도 범죄하지 않은 것처럼 의인으로 여겨지고 칭해지는 것은 바로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 있고 하나님은 무흠하신 그 예수를 통해 우리를 보시기 때문이다. 곧 예수님의 흠없고 죄없는 생애를 우리의 것인양 여겨 주시는 것이 칭의의 본질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붙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로 여겨 주시는 것이다.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 3:27) |
- 이전글완전론(4) -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야 할 다른 복음 08.12.12
- 다음글그리스도인 완전론(2)-누가 과연 갈렙과 여호수아인가? 08.12.12
댓글목록
박용진님의 댓글
박용진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기성안식일교회가 1888년기별 즉-계18장천사기별을 거절한
원인으로 위탁기별 사업의 노선이 변경되는 예언섭리와
또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의 남은교회의 특징과
그 역사적 실상을 잘 모르시는 분들 이거나
한번도 저희 개혁운동 ims 교회 집회에라도 와보지 않으신분들은
제발 개혁교회를 안다고 함부로 떠벌이지 않기를 빕니다
참된 거듭난정신을 가진분들은 겸손하게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거나
아는것만 말하게 될것이라 봅니다
제칠일 안식일예수 재림교 개혁운동 세계선교회교단은
1914년-안식일시험사건이후 sda가 굴복한이후
분리되어 1919년에 독일연합회가 조직되고
1925년에는 세계대총회가 조직된 후, 올해로 83년이된
엄연한 세계 130여 개국에 분포된 교단입니다
무슨 스스로 개혁한다는 어떤 소수무리의 분파와는 다릅니다
sda분파교회 소속인, 박진하님을 비롯하여
sda여러분들께서는 새로 연구 검토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새로운 섭리를 깨닫게 되실것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cafe.daum.net/DR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