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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완전론(1)-K토대의 완전론 왜 잘못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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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토대의 [완전론]은 왜 잘못되었는가? (1)
그리스도인 완전에 대해서(1)

성경은 명백히 우리에게 [온전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완전한 사람]만이 구원을 받고
[완전한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간다
천국은 일말의 불완전함을 용납하지 않으며
예수께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위한 중보자로 봉사하시고 다시 재림하셔서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것 모두가 우리를 완전케 하시는
구속의 과정이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그 [완전]이란 무엇인가?

미국 k선교센터의 k목사는
그의 책자와 여러 설교에서 '우리가 죄짓지 않는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한번이라도 범죄하면
하나님이 주신 칭의에서 떠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죄를 미워하므로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완전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신학을 따르는 사람들로 단정짓고,
'우리는 어짜피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으며
'죄짓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로 매도해 버린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느 누가 죄 짓는 것을 좋아하며
죄 짓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어느 그리스도인이 [죄없는 완전]과 [죄짓지 않는 완전]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말과 '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말은 엄연히 다르다.
과연 K목사 말대로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후에는 결코 죄를 지을 수 없게 되는가?
또한 정말 한번만이라도 죄를 지으면 그 즉시로 칭의에서 떠나고
성소의 뜰로 다시 나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죄가 무엇인가?
살인, 간음, 도적질, 우상숭배도 죄이지만
시기, 질투, 교만도 죄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않는 것도 십계명을 범하는 죄이다
지나치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도 간음죄이다
탐심을 품어도 죄이며 남을 미워해도 죄다
십일조를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아도 죄짓는 것이고
우리의 생각과 동기가 불순해도 죄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어도 내 말한마디로 상대가 실족하거나
낙망에 빠지게 된다면 그것도 죄다.
타인을 비난해도 죄이며 조롱해도 죄이고 시간 낭비해도 죄이고
부모 공경하지 않아도 죄이고 자녀 교육 잘못 시켜도 죄다.
은근히 말을 과장하고 거짓말해도 죄이며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교회의 사명을 등한히 하고
집안에 소홀히 하는 것도 죄이며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지
않는 것도 이기적인 죄이고
아내든 자식에게든 이웃에게든 화 한번 내는 것도 죄이며
그러면서 안그러척하는 위선이나 가식들도 죄들이다.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죄이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아도" 죄 짓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죄'라는 정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죄의 성향과 연약성, 죗된 본성을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 삶은 안전한 것이고 떳떳한 것인가?
여기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과연 '나는 죄없다 나는 죄 짓지
않는 완전에 이르렀다고 죄짓지 않고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왜 다니엘과 같이 "아무 틈, 아무 허물도 없었던" 성화된 사람이
예수님을 뵈었을 때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듯 하였"을까?
'율법으로는 흠이 없었던' 행위의 완전론자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왜 그는 '땅에 엎드러지며' 사흘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이런 일련의 기록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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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완전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어떻게 완전해 질 수 있는가?
성경이 말하는 완전에 이른 사람은 그 완전을 일평생 간직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완전은 그리스도인 삶을 통해 자주 변질될 수 있는 것인가?
예수께서 명령하신 아버지같은 온전은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 값없이 선물로 얻은 '칭의'는 무엇이며
그 칭의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짓는 죄에 따라 좌우되며
벗겨지고 입혀지고를 반복하는 것일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입은 그리스도의 옷은
우리의 행위에 따라 벗겨지고 입혀지는 것인가?
우리가 거듭나 의롭게 되고 침례를 받아 인정된
'아들'의 신분이 우리의 행위 여하에 따라 순간적으로 바뀔 수 있는가?
우리가 침례 받을 때 선물로 주신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모하시면서 구속의 날까지 인치시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성령은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범죄 여하에 따라 들락날락거리며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분이신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전 우리는 누구였는가?
범죄하여 죽음으로 하나님 앞에 '없는 자들'(비생명, 비존재)이었다
의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고 의를 행하거나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죽은 자들이었다.
로마서 3:9~18절이 그러한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완전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위나 선행의 결과와는 전혀 관계 없는
오직 성경안에서의 완전,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이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 두어야 한다.
완전, 의로움, 거룩함 등은 오직 하늘의 소산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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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게 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거룩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다른말로 하나님이 의롭다고 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롭고 거룩한가?
우리는 완전한가?

이 말은 우리가 언제 의롭게 되고 언제 거룩하게 되는가를
알면 정확한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우리가 언제 거룩해 질 수 있는가?
또한 우리를 의롭다고 하고 거룩하게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성경의 답은 분명하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히2: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거룩하게 하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그분이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단번에 드리시는
"영원한 제사"를 통해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는 것이다

"일을 아니하실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5)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경건치 않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예수께서 [기약대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고,
이러한 [복음]을 듣고 "믿는 자마다" 그들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시는 그것을 우린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표현한다.

십자가의 강도가 일평생 나쁜 짓만 하다가 사형틀에 달려 사형을
집행 당하는 순간에, 바로 자신의 죄를 담당하시는 어린양 예수를
보고 믿음을 표현하였고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져서
그는 그 즉시로 구원함에 이르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여김을 받아
[완전]한 사람이 되어 구원을 받았다.

에녹도 완전해서 하나님이 하늘로 데리고 가셨고
모세도 완전하여 죽자마자 부활시켜 데리고 가셨고
엘리야도 완전하여 불병거 태워 데리고 가셨으며
노아도 당대에 완전하여 홍수 속에서 구원을 받았으며
아브라함도 완전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다윗도 완전하여 그리스도의 가계의 조상 명부에 올랐고
삼손도 완전하여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었으며 다니엘도 완전하여 뇌속으로 이상을 받고
미래의 일들에 대한 놀라운 계시를 보게 되었으며
베드로도 완전하여 예수님께 사랑 받았고
바울도, 요한도 완전하여 사도로 택함을 받았다.

우리는 이렇게 성경에 적나라하게 그들의 생애가 공개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완전한 사람이 되어
구원함에 이르고 하늘에 갈 수 있는지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가 한번만이라도 실수하거나 죄를 범하면
칭의에서 떠나고 성소 뜰로 다시 나가 처음부터 시작해야한다고 하는
주장들의 허구성을 명백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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