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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천사 기별과 영원한 복음, 그리고 안식일의 관계에 대하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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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천사 기별과 영원한 복음, 그리고 안식일의 관계에 대하여

[시작하는 글]
안식일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일까?
안식일 자체가 인이란 말인가?
왜 성도의 특성과 남은 자손의 특징은 ‘계명’이라고만 했는데 오늘 우리는 유독 안식일 계명에 집착하는 것일까? 역사의 마지막 때에 우리가 안식일을 자주 강조하고 안식일 기별을 전하는 것은 안식일을 예수님보다 높이는 것일까? 우리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과연 안식일을 예수님의 자리에 올려 놓는 것일까?

일요일 휴업령은 정말 내릴까?
요즘같은 최첨단 세상에 국가의 법률을 통한 신앙 양심에 대한 통제나 핍박, 박해가 과연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인가? 세월이 흐르면 하나님의 말씀도 변색되고 그 해석도 바뀌어져야 맞는가? 만약 일요일 법령이 화잇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상황에서 급조된 시대적인 기별이었고 당시 성경학자였던 우라이아 스미스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받아 들여 주장한  것이라면 수없는 계시를 통해 ‘주께서 보여 주셨다’라고 하면서 일요일 법령에 대한 글을 아주 많이 반복하여 그것도 종말 사건의 중심으로 언급하고 기록한 화잇의 글들에 대한 신뢰는 어디까지여야 할까? 그래도 우리는 그녀를 선지자로 그녀의 글을 남은 자손의 두가지 특성 중 하나인 [대언의 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최근 몇몇 사람들을 통해 발설된 일련의 글들을 근거로 하여 이런한 의문과 의아심을 갖고 이 문제에 대한 성경과 예언의 신의 견해를 살피고 나의 생각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1.성령의 인과 최후의 인의 구별법

(1)두 가지의 인(印)
하나님의 인은 마지막 시대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이후로 영원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이 되어 인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계시록에 보면 그러한 일반적인 인과는 다른 최후의 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2)대쟁투의 두가지 계쟁점
계시록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인은 지구 역사 마지막에 참된 예배와 거짓 예배,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이 대쟁투의 계쟁점이 되어 온 세상에 제시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쳐지는 [최후의 인]을 일컫습니다. 그래서 성경 계시록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지구 네 모퉁이를 붙잡고 있는 천사들에게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불지 못하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계7:1참조).

(3)최후의 인을 치는 시기가 있음
성경은 [최후의 인]을 치는 [시기]가 올 것임을 확실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데로부터 올라”오는 때가 있고 하나님의 백성(소유)들로 확정된 사람들의 이마에 “인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잇은 현 시대를 가리켜 “아직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네 바람이 붙들려 있는 때이다”(화잇주석, 데이1846.3.14)라고 했으며, “환난의 때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우리는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다”(화잇주석, 데이1846. 3. 14)고 했습니다.

(4)가장 중요한 마지막 시험-졸업시험
만약에 특별한 [최후의 인]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는 기간 설정이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가 해 돋는데로부터 올라 올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화잇은 대쟁투의 종결되어지는 시점을 언급하면서 “마지막 시험이 이미 세상에 주어졌고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한 것이 입증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계 7:2)을 받았다. ”(쟁투, 61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 시험]이라는 말입니다. 학교로 말하면 [학년말 고사]나 [졸업시험], [최종 학력고사](수능) 정도 되겠지요. 학생들이 매년 여러번 시험을 보지만 매 시험마다 문제가 다릅니다. 학년이 올라 갈수록 점점 어려워집니다. 졸업 시험이나 학년말 고사는 학생들에게 중요하지만 학력고사(수능)만큼 중요한 시험은 없지요. 그 시험의 결과에 따라 대학 진학 여부와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5)두 인의 중요성
역사의 마지막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곧 [최후의 인]을 받는 것은 지구 선악의 대쟁투 속에서 하나님 백성들이 치루는 최종 학력고사 정도로 비유하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에게 오직 그 시험만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평소 갈고 닦은 실력으로 쌓아 온 내신도 중요하고 수능도 중요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이 평소 살아온 삶을 통한 [성령의 인]도 중요하고 최종적으로 이 땅에 참된 예배와 거짓 예배를 선택해야 하는 때에 이마에 쳐지는 [최후의 인]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6)최후의 인을 받지 못할 쭉정이 신앙
내신이 없는 학생에게 최종 수능이 의미가 없듯이 평소 그리스도인 삶에서 순종과 변화와 전진의 생애를 살아오지 못해 성령의 인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위기의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결단코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화잇은 그때를 가리켜 “쭉정이가 바람에 구름처럼 날려갈 것인데, 심지어 우리가 오직 풍성한 알곡만을 보는 곳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 교회증언 5권, 88(1882)”라는 말로 경각심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2.마지막 성도들이 이마에 받는 최후의 인

성도들이 이미 예수 믿고 거듭난 순간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며서 성령 안에서 인침을 받았는데도 역사의 마지막 대쟁투의 최후 결전에서 왜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로 다시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는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시록 14장의 세천사 기별을 반드시 살펴 보고 바르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1)세천사 기별과 영원한 복음과의 관계
세천사중 첫째 천사가 온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하는 것은 분명히 [영원한 복음]으로 명명되어졌습니다. 그 영원한 복음은 한마디로 태초부터 주어진 변함없는 복음 곧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복음인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천사로 말미암아 전파된 기별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고 말씀하셨을 때에 선포하신 바 동일한 복음이다. ”(2기별, 106)

1)영원한 복음의 내용
그런데 창세기 3장 15절의 영원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 내용은, 첫째, 뱀과 여자와 원수 관계 즉 사단과 교회와의 처절한 대쟁투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둘째,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과 즉 어두움의 세력과 빛의 세력간의 피흘리는 쟁투도 나타나 있습니다
셋째, 범죄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약속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긍극적으로 심판을 통한 사단의 영원한 패배로 하나님의 의가 온 우주에 확실하게 드러날 것임이 극명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2)복음의 실체와 복음의 내용
복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은 그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이 땅에 올 것이며 어떠한 죽임을 당할 것이며 부활하여 어떻게 승리하실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악의 세력을 심판하실 것인지가 짧은 창세기 3장 15절에 놀라운 필치로 함축되어 묘사되어 있음을 볼 때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입니다.

3)과거, 현재, 미래의 삼중복음
그래서 복음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성육신하셔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과거적 복음과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중보자, 대언자로 일하시고 계신 현재적 복음과 필연코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미래적 복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세가지 혹은 세차원이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복음의 실체되신 예수께서 죄로 인해 죽아야 마땅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셨고 행하시며 행하실 그 모든 기쁜 소식 즉 복음이 시제적으로 볼 때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입니다. 세천사 기별이 첫째 천사가 기별을 전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둘째와 합하고 둘째가 셋째와 합하여 [삼중 기별]로 전파 되어 지듯이 [영원한 복음]도 과거, 현재, 미래가 [삼중 복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4)세천사 기별속의 영원한 복음
창세기 3장 15절을 우리가 일명 [원초적인 복음]이라고 합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그 원초적인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과 사단과의 처절한 대쟁투, 하나님 백성과 사단의 백성과의 싸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고난 그리고 심판을 통한 사단의 세력 박멸과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것으로 요약이 됩니다.

우리는 계시록 12장을 읽으면서 그 주요 등장 인물(세력)이 첫째, 여자 둘째, 뱀 셋째, 여자가 낳은 남자 아이임을 알 수 있는데 그 세 등장 인물이 바로 원초적 복음을 발표한 창세기 3장에 나온 인물들과 동일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역사의 마지막 때에 온 세상에 선포되어질 세천사 기별 내용을 보면 바로 창세기 3장에 나온 똑같은 복음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사단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배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둘째,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고 선언합니다.
셋째, 사단의 지상 왕국 바벨론이 심판을 통해 무너질 것을 예고했습니다
넷째, 사단의 지상 대리자인 짐승과 그의 우상, 그리고 그의 표에 대한 두려운 경고와 자비가 없는 심판의 확실성, 여자의 후손들인 성도들의 계명 준수와 예수 믿음을 통한 긍극적 승리의 모습 등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셋째 천사 기별에 언급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승리한 무리들을 묘사한 계시록 15장에 보면 결국 그 모든 것은 “주의 길이 의롭고”(3절)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4절)났다는 것으로 귀결되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결국은 온 우주에 “의”가 드러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롬 1:17)
그래서 [세천사 기별]을 [영원한 복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2)세천사 기별과 최후의 인과의 관계
세천사 기별이 결국 복음이라면 왜 우리가 창세기 3장 15절의 원초적인 복음을 듣고 성령의 인을 받았으면 그만이지 왜 최후의 인을 다시 이마에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왜 하필 이마에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가? 또 그와 상반되는 짐승의 표를 이마와 오른 손에 받게 한다는 말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앞서 서두에 자세히 말한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 거듭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며 그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습니다(엡1:13;4:30참조). 그런데 (엡4:30)에 보면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하시므로 복음을 믿음으로 인치심을 받았더라도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면 성령이 떠남으로 인치심이 취소될 수 있음을 암시하였고 성경의 여러 곳곳에서 그러한 예는 얼마든지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기쁨의 싹이 나서 자라다가도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지는 자도 있고 말씀을 즐거움으로 듣고 살다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예도 있음을 마13장의 비유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쟁투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 어떤 환난이나 유혹과 회유,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잃지 않는 인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크게 분노하여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있는 사단과의 최후의 결투에서 승리할 자들에게 마지막 시험(최종적 죄악의 지구 졸업 시험)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최종적 최후의 시험에서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의 음성에 굴복하고 죽음을 각오한 믿음으로 승리할 자들에게 하나님이 특별한 하나님의 소유를 의미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그들의 이마에 찍어 그들을 구별하겠다는 것이 대쟁투 최종 시나리오의 장면인 것입니다.

(3)예수 사랑의 증거는 무엇인가?
우리가 오늘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무조건 ‘싸랑합니다’라고 외치면 되는 것입니까? 성경은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요 14:23)

어떤 계명입니까? 물론 십계명 모두입니다. 그러다면 왜 오늘 우리는 유독 안식일 계명만을 그토록 강조합니까? 사단에 의해 넷째 계명이 유린되었고 파괴 되었고 변질 되었으며 그 계명 안에는 하나님의 인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계명에는 전혀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과 직함과 통치영역이 표기 되어 있어 십계명의 중심에 인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작 십계명 중 넷째 계명이 없어진다면 나머지 9계명은 마호멧이 알라신의 법도 될 수 있고 도덕적 종교의 일반적인 가르침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세상 우상 숭배의 종교에도 자신들 신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강변하고 자신들의 신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 용납하지 않으며 살인과 간음과 도적질, 거짓말, 탐심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가르침이나 설법에도 ‘나는 여호와이며 내가 천지를 창조하였으며 나는 하늘과 땅가 만물의 주가 된다’고 선언한 것은 없습니다. 고로 여호와 우리 주만이 온 우주 만물의 유일의 창조주가 되신다고 선언한 넷째 계명은 사단의 1차 공격 대상이며 오랜 세월을 통해 사단에 의해 전략적으로 경시되어 오고 무시되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끝까지 안식일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끝까지 온전하고도 견실히 지키는 소수의 무리가 눈엣 가시거리입니다. 드디어 그는 그들과 맞서 싸워 그들을 이 땅에서 멸절시키고자 과거 하만을 통해 유대인 박멸에 나섰던 유사한 일을 계획해 낸 것이 계시록 12장, 13장, 14장의 주요 내용들인 것입니다. 즉 사단은 인간에게 가장 취약점이 ‘먹고 사는것’임을 간파하고 과거 몇 번에 걸쳐 워밍업을 끝낸 정치와 종교 권력의 야합을 통해 국가적인 법으로 매매를 금지 시키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최후의 카드로 남은 자손들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서 카톨릭을 위한 우상을 세우고 그것에게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하는 즉 일요일 법령을 선포하여 온 세상은 마지막 환난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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