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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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다리는가?
겨을이 가고 기다렸던 따스한 봄이 오면 또 해수욕 가고파 손꼽아 여름을 기다리는가?
기다림은 많다.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사는가?
"사람의 생애란 하나의 기다림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터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어머니의 젖을 기다리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임종의 시간까지 크고 작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인류의 역사라는 것 역시 다름 아닌 인류의 기다림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하나의 기다림 속에서 싹튼 역사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 슬픈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하나의 부조리이니까. 희망하고 절망하고 기대하고 권태하고 설래이는 희열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답답한 환멸도 있다.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생의 가도 속에서 기다림의 꽃은 피고 진다."
기다림, 엉겹결에 맞는 기대의 성취가 있는가 하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지루함도 있던가!
네가지 기다림이 있다.
1. 기다렸는데 응답이 없고 무소식이다.
"달 뜨면 오마든 님 달 떠도 안오시네. 우리님 계신 곳은 첩첩이 산이 높아 저 하늘 뜨는 달 조차 더디인가 하노라"(고운)
더디고 더디인데도 그래도 여전히 "우리님"이다. 정감이 있는 시이다. 정서가 살아있는 시이다. 기다림인가? 채념인가? 그대는 이런 경험 속에 사는가?
2. 기다렸는데 반대현상이다.
"애비 없는 아들 손바닥 놓고 길렀는데 아내 치마폭에 휘감겨 간 연후 한 달 넘어 소식 없네. 연경거종(목을 길게 빼고 뒤굼치를 든다는 말. 몹시 초조하게 기다린다는 뜻) 했더니 차마 기다리잖던 우체부 아저씨 편지 받고 엄마, 몇달 후나 갈가 봐 라고 했지 않나. 그래 엄마가 엄마더냐...!"
아들 기다렸더니 불청객 아저씨 소식 전한다. 몇 달 후란다. 너무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엄마다. 어떻게 길렀는데 이리도 쉽게 마음이 변할 수 있다더냐! 엄마는 필시 눈물을 흘린다. "그래 엄마가 엄마더냐!"
3.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이루어진다.
"꾸복 꾸벅 했던가. 새벽역인가 봐. 잠을 잔 것은 아니지! 선잠이었겠지! 님이 정녕 안오는가 봐 하고 성큼 일어서서 하품하며 문열었더니 님이 나를 환하게 반기며 성큼 들어서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랬어라! 아유 반가워라! 님을 기다리고는 있었는대도... 정말 기다렸던 보람이 있다!
4. 아직도 기다려지는 기다림이 있다.
"만날 때의 웃음 보다 떠날 때의 눈물이 좋고 떠날 때의 눈물 보다 다시 만나는 때의 웃음이 좋다구려! 아. 님이여 우리 다시 만나는 웃음은 어느 때에 있을 건고!"
이별의 찬송가에는 다시 만나는 소망이 있다. 확실한 기다림이라면 그 기약은 소망으로 맘에 사무친다. 어서 오소서 하고....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써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현대인은 고독하다. 그리움과 기대 그리고 기다림이 상념처럼 엇갈린다. 어쩜 이런 상념과 기대가 있어 생의 바퀴를 돌려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역동적으로 생동감을 얻는 것이겠지!
순이 엄마의 이런 임종이 있단다. "엄마 나예요. 순이 왔느냐! 예, 엄마 나예요. 순이예요. 미쳐 딸의 손목마져 잡지 못한 순간에 엄마는 머리를 아래로 떨구면서 잠잠해졌다."
순이는 엄마 하면서 울음을 터틀인다. 아, 사람은 죽을 때까지 기다림에 산다.
시편을 읽으면 다윗의 시련과 환난의 날들이 언제까지인가 싶다. 초조하고 무한정 같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래서 더욱 주님을 신뢰하게 되었나보다. 다윗대왕이 되었나 보다!
기다림은 좋은 것, 만날 확실한 약속이 있는 것이라면...! 기다리자! 오실이는 오실 것이기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겨을이 가고 기다렸던 따스한 봄이 오면 또 해수욕 가고파 손꼽아 여름을 기다리는가?
기다림은 많다.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사는가?
"사람의 생애란 하나의 기다림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터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어머니의 젖을 기다리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임종의 시간까지 크고 작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인류의 역사라는 것 역시 다름 아닌 인류의 기다림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하나의 기다림 속에서 싹튼 역사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 슬픈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하나의 부조리이니까. 희망하고 절망하고 기대하고 권태하고 설래이는 희열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답답한 환멸도 있다.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생의 가도 속에서 기다림의 꽃은 피고 진다."
기다림, 엉겹결에 맞는 기대의 성취가 있는가 하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지루함도 있던가!
네가지 기다림이 있다.
1. 기다렸는데 응답이 없고 무소식이다.
"달 뜨면 오마든 님 달 떠도 안오시네. 우리님 계신 곳은 첩첩이 산이 높아 저 하늘 뜨는 달 조차 더디인가 하노라"(고운)
더디고 더디인데도 그래도 여전히 "우리님"이다. 정감이 있는 시이다. 정서가 살아있는 시이다. 기다림인가? 채념인가? 그대는 이런 경험 속에 사는가?
2. 기다렸는데 반대현상이다.
"애비 없는 아들 손바닥 놓고 길렀는데 아내 치마폭에 휘감겨 간 연후 한 달 넘어 소식 없네. 연경거종(목을 길게 빼고 뒤굼치를 든다는 말. 몹시 초조하게 기다린다는 뜻) 했더니 차마 기다리잖던 우체부 아저씨 편지 받고 엄마, 몇달 후나 갈가 봐 라고 했지 않나. 그래 엄마가 엄마더냐...!"
아들 기다렸더니 불청객 아저씨 소식 전한다. 몇 달 후란다. 너무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엄마다. 어떻게 길렀는데 이리도 쉽게 마음이 변할 수 있다더냐! 엄마는 필시 눈물을 흘린다. "그래 엄마가 엄마더냐!"
3.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이루어진다.
"꾸복 꾸벅 했던가. 새벽역인가 봐. 잠을 잔 것은 아니지! 선잠이었겠지! 님이 정녕 안오는가 봐 하고 성큼 일어서서 하품하며 문열었더니 님이 나를 환하게 반기며 성큼 들어서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랬어라! 아유 반가워라! 님을 기다리고는 있었는대도... 정말 기다렸던 보람이 있다!
4. 아직도 기다려지는 기다림이 있다.
"만날 때의 웃음 보다 떠날 때의 눈물이 좋고 떠날 때의 눈물 보다 다시 만나는 때의 웃음이 좋다구려! 아. 님이여 우리 다시 만나는 웃음은 어느 때에 있을 건고!"
이별의 찬송가에는 다시 만나는 소망이 있다. 확실한 기다림이라면 그 기약은 소망으로 맘에 사무친다. 어서 오소서 하고....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써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현대인은 고독하다. 그리움과 기대 그리고 기다림이 상념처럼 엇갈린다. 어쩜 이런 상념과 기대가 있어 생의 바퀴를 돌려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역동적으로 생동감을 얻는 것이겠지!
순이 엄마의 이런 임종이 있단다. "엄마 나예요. 순이 왔느냐! 예, 엄마 나예요. 순이예요. 미쳐 딸의 손목마져 잡지 못한 순간에 엄마는 머리를 아래로 떨구면서 잠잠해졌다."
순이는 엄마 하면서 울음을 터틀인다. 아, 사람은 죽을 때까지 기다림에 산다.
시편을 읽으면 다윗의 시련과 환난의 날들이 언제까지인가 싶다. 초조하고 무한정 같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래서 더욱 주님을 신뢰하게 되었나보다. 다윗대왕이 되었나 보다!
기다림은 좋은 것, 만날 확실한 약속이 있는 것이라면...! 기다리자! 오실이는 오실 것이기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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