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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의 소명 문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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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6.25 07:07 조회수 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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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의 소명 문제의 해결"이라니, "소명"도 "해결"이라는 어떤 비결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의아하다.
부르심을 받는 "소명"도 어떤 타력의 해결이라면 자못 인위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하
는 문제이다. 소명이란 어디까지나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말이다. 
물론 소명이란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맞다. 그런데 그런  소명, 그런 소명감을 사
람, 아니면 교회가 방해(?)가 되어 좌절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의 주요한 이야기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로의 소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해결점이 무엇인가?

1. 잘 가르쳐야 한다.
성서 진리를, 그리고 우리의 진리와 교리를 잘 가르쳐 놓았을 때 이 소산에서 소명을
느끼거나 받게 된다. 물론 유의할 것은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소명을 받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사명을 다 했는가이다. 적당하게, 듣기 좋게, 편하게, 자유롭게, 책임
성 없게, 흘러가는 물줄기 따라,...이런  속사정 속에서는 필연 자유주의 파도가 사람을
삼키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극장도 가고 안식일에도 극장에 가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가르치고 지도하는 격이니깐...이리하여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소명
이라고 한들 이런 성격의 다짐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면 그리 바람직하지 않는 소명이
될 것이다. 자칫 소명 보다는 하나의 직책으로써의 일감을 맡는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현대 기독교인에게는 소명이라는 말이 생소해져 가고 있다.
소명은 물론 교회의 장래를 생각하면 성서를 올바로, 구체적으로, 정신 나게 가르치고
교훈하고 훈도를 해야 할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교훈 하는 디모
데 전 후서를 잘 읽어볼 필요가 있다.(딤 후 3:16 참조)
다시 말하면 포드사의 직원이 되는 것처럼 교회의 장로가 될 가능성이 있는 미래가 도
래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장로의 소명을 받을 일꾼 양성을 위해 애쓸 오늘날의 헌
신적인 지도자 일꾼들이 필요하다.

2. 잘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 모습이 어떻한가?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어떻한가? 이다. 보여지는
교회의 모습이 그러하면 성도들 역시 그러하다. 사람을 밖으로 잃으면 교회 밖으로 나
가는 것이며 안으로 잃으면 장로로 소명 받고 싶지 않거고 집사로 소명 받고 싶지 않고
싶은 것이다. 이 것이 곧 교회가 영혼을 잃는 것이다.
교회가 요란하면 청년이 목사 되기 싫고 장로 되고 싶지 않는 것이다. 곧 그것이 잃는
것이다. 때때로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런 손실이 얼마나 큰 것이랴!
 한 교회의 장로는 담임 목사도 없이 평생을 교회 목양을 위해 마치 자급 목사로, 장로
로 그 생애를 마쳤다. 그는 장로직 수행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살았다. 이름 없는 이 장
로님은 에녹처럼, 아브라함처럼 훌륭하다고 보아진다.
이런 밭에서 수없는 목사며 장로들이 탄생을 했다. 그 장로에게서 보여진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채득한 것도 그 장로님의 사랑을 통해서였다.
이것은 강조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잘 가르쳐 놓은 곳에서, 다음에 소명을 받는자의 보여
지는 모습에서 다시 소명으로으로 태어난 결과이다.
교회는 잘 보여져야만 한다.

3. 소명은 좋은 터밭에서  일구어진다.
교회가 사명만을 강조하면 무리가 있다. 끄는 것, 미는 것이어서 한 때는 잘 되지만 기복
이 남고 재 자리 걸음이 되는 예가 많다.  어떻게 하면 자원하는 소명의식으로 스스로도
모르게 해 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는가? 이것이 우리의 과제 이다.
이 일에는 많은 해당 과제를 놓고 그 해답을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
마다 다를 것이다.
소명은 잘 가르치기, 좋은 모범 보이기, 평화롭고 행복하기, 사랑으로 가꾸어지고 어울리
기 등등,  행정적으로는 막힌 것이 없이 원활한 소통, 평등과 소속감 등등과 같은 교회의
터밭에서 순수한 소명을 받은 훌륭한 장로가 더 많이 나온다고 보아진다.
소명감이 투철해야 부질없는 것과 타협하지 아니하는 훌륭한 장로가 탄생한다. 이점에
대하여 나는 버마에서 순직한 이범석 외무부장관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그는 한 나라의 외무부 장관으로써 아무리 바쁜 일과 중에서라도 교회에 가장 먼저 나왔
고 앞 자리에 앉아 기도를 했다.
신자들의 눈에 비친 것으로는 먼저 나와 오래 동안 기도를 하고 있는 경건한 그의 모습,
의자를 정리 정돈 하고 있는 모습...등등이었는데 그의 행사는 항상 이러하였다. 그런데
그의 감화는 너무 너무 컸다는 글귀 이야기이다.
나는 오랜 전 이 이야기가 그대로 사실이라면, 그리고 이런 일이 있다면 그의 일은 사명 
에 앞서 먼저 소명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진다.
주님의 소명, 오, 먼저 소명감에 충일한 장로님들을 더 많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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