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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노트: 목회의 위기 상황 극복 문제(3)- 목회 관련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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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6.15 04:46 조회수 4,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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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많이 배지 않는 일, 처마 밑에 가민히 피했다가 먹구름 일고 더 큰 비바람 불어온다 하기에 스산한 일 그만 저버리고 앞질러 큰 나무 밑으로 달려가는 격일 수 있다. 정작 목회란 집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웅거하면 좋은 것을...
시골서 올라온 한 분이 그 많은 전답을 다 팔고 큰 도시로 대뜸 나왔다. "토지는 놔두고 나오시지 그랬습니까?" 하는 질문에 "아니요, 익숙하지 못한 도시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할 경우 다시 시골로 돌아갈 미련일랑 미연에 싹뚝 끊어버리기 위해 시골의 소유는 모두 버렸습니다." 라는 귀에 담겨질만한 말을 했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 따로 없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결단 같은 것이 아주 필요하다. 나의 한국 목회생활 1대기 안에서만도 어느 합회는 3달 봉급을 안주는 상황이 일더니 몇 년 지나 몇몇 목회자를 밖으로 내 보냈다. 
그러나 자급으로라도 일하겠다고 목회의 날을 세우고 일한 몇 분은 수년 후 목회직에 환원되었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는 복구의 중요성 보다는 그 동역자들의 투철한 목회 정신을 떠올리고 싶다.
나는 그 스산했던 시절 이후  합회의 선교부에서 일할 때인데 아내를 일터로 내보내기로 했다. 먹을 것이 끊어져도 우린 목회로 살자!는 것이 우리 부부의 결심이었다. 미래를 위해 유비무한 대비하자!고 했다. 이것은 우리의 장래 목회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이었다. 이리하여 우리 부부는 이렇게 의합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아내는 줄곧 그 길에서 19년을 일했는데 "교무사"로써 그 일에 베테랑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꼭 목회자의 아내가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련은 현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어느 때 어느 시대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금료는 한정적이고 없는데 헌신한 목회자의 수가 많을 때, 교회는 많지 않은데 일 터로 나갈 목회자가 언발란스 될 때 여러 가지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갈등의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할까? 이 짙은 안개를 어떻게 걷어 치울까?
기관이나 조직에서는 교회들의 집산 능력에서 한계가 있고 그 해결의 무한 과정에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암담하게 보일 수도 있다. 어찌 하랴! 우리는 다만 그것을 원망하지 않으며 원망하고 있을 수도 없다. 기관도 목회도 지극히 현실 상황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쥐었던 것을 놓아야 할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게 유약하지 않다. 목회의 길이 잘 되면 좋지만 그렇게 잘 풀리지 않을 경우, 그것이 어떻든지 간에 자아의 해결이란 한 길이 있는 것이다.  

결국 먹는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는 목회의 일이다. 누가 알아 주느냐 알아주지 않느냐만 초월하면, 목회적인 보장 등 문제만 소화하고 초월할 수만 있다면, 진정 하나님께 이 일을 맡길 수만 있다면이야 어쩌면 오히려 보람 되고 활발하고 속시원한 목회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런 분의 체험 글이 실리면 먼저 읽고 싶다. 주님의 기별을 힘차게 잘 전하고 성실 지구력하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사업을 위해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을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주님이 당신의 종을 쓰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인들이 희소하지만 미국의 땅이 광활한 것이 장점이고 기회이다. 가령 워싱톤 주 제 2의 도시 스포캔 같은 도시는 한국인들이 상당히 많이 살지만 우리 교단 한국인 교회는 없다. 
이제 우리나라가 된 미국 국내를 다시 돌아보면서 진일보 헌신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 길은 어디까지나 부르심 받은 제이 앤 앤드류스 같은 개개인의 소명이 완성할 것이 분명하다.
나의 목회 주장은  교회를 개척하는 목회자가 되라는 것이었다. 나는 목회를 하는 동안 8곳의 교회를 개척(한 곳은 신학교를 가기 전)해 보았다.  참으로 보람 되었다.
고작 다른 목회자가 다니는 교회 라는 길에만 있지 말고 그 일을 하는 동안 교회를 개척해 보라, 그리하면 나중에 큰 보람을 갖게 될 것이며 이것이 재림 교회의 가장 확실한 확산이 될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미국에 와서 개척 전도에 뛰어들었다. 수백마일 먼 교회 장로님들이 나의 집을 찾아와 극구 지금 우리 교회로 와달라는 요청을 하는대도 말이다. 우리 부부는 엉겹결에 뜻한 바 한 도시에 가서 스토아 앞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아내는 안식일학교 교장, 나는 반생이 되었고, 그 다음 설교시간에는 나는 설교자가 되고 아내는 설교를 듣는 자가 되어 2시간 동안 은혜롭게 안식일 예배를 드렸다.
우리가 이때 간절히  기도하기를 "이제 중년의 나이가 든 사람 하나를 보내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였다. 그리고는 준비해 온 식사를 마치고 그 큰 스토아 앞에서 전도하는데 한 중년 부인이 들어오길래 "저는 교회를 세우려고 이곳에 왔는데 오늘이 첫 날입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나와 같이 하지 않으시렵니까?" 라고 말했다.
설마일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의 집에 같이 가게 되었고 그를  첫 열매로 얻은 다음 8년 여를 그곳에서 지냈다. 고맙게도 재정을 지원하시는 분이 계셨고 또 하나는 나의 아내가 집에 꽂은 묵은 칼을 빼들듯이 문서전도사업을 여러 해  했다. 그래서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눅 22:35)고 묻자 제자들이 "없었나이다"(상동) 라고 대답했다. 주님은 분명히 우회적으로 주셨다. 이것이 목회가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미주 교회의 장래를 생각해 본다. 어서 속히 미주교회 성숙을 위해 자급 목회, 작은 교회 목회가, 큰 교회 목회 보다 오히려  격려를 받는 모양으로 용기를 더해주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그리고 더 좋은 개척 목회의 길이 창출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 나의 1호의 바램이다!
젊은 목회 동역자들이시여! 태산 같은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그대들의 생각은 옹오될 것이다. 위로를 드리고 용기를 드리고 싶다! 하기야 바울이 넘었다는 터키의 태산이 있던데 그는 그것을 넘었다고 전한다. 주님이시여,  우리의 이 세기의 자랑스런 젊은 목회자들의 길을 인도하옵소서! 주여, 그들로 하여금 시대의 준령을 빔서지 아니하고 똑바로 서서 직시하면서 과감하게 이것을 넘어서게 힘주시옵소서! 노독, 선배들의 선명한 사명의 대열에 항상 있게 하옵소서!
(그동안 목회 관련 글을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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