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의 인간관계의 여부를 생각한다!(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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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인간관계, 곧 교인, 목회 동역자, 교단 지도자, 사회 인사, 아내, 자녀,
라는 수평관계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수직관계이다.
우리는 이 관계를 떠나서, 소홀리 해서 말씀으로만 목회를 할 수는 없다.
만약에라도 이 원만하지 아니한 관계가 혹시라도 잘못 정비되면 본연한 목회
에서 손실을 입거나 그 이상의 것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이 어느 것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영성을 잃게 하고 현재를 유지상태에
두거나 세상을 돌아보는 마음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심지어 세상의 직
업을 들여다 보게 되고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딤 후 4:10)라고 함과 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때 영혼구원으로 불탔던 마음이 무엇으로 충족되겠는가? 발등을 찍고 싶다
는 후회감 섞인 호소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관계에서의 미끄러짐은 사정없는
슬픈 애가의 일이다.
그런고로 목회관계에 있어서의 성공이 곧 목회의 성공이 된다.
1. 교인과의 관계
여기에는 반드시 목회의 성공을 위하여 두 가지 정신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의 목자나 양이나 우리의 참 목자이신 하나님을 목자로 해서 교회
안에서 목자와 양인 우리 모두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양이라는 입장을 정신적
으로 언제나 견지해야만 한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중요하다.
그렇게 변화되거나 무장하지 아니하면 인정을 받지 못할 때, 못 마땅할 때, 지도
를 잘 따르지 않을 때, 엉뚱한 일이 발생할 때, 목자의 위치를 가지고 권위의 행세
처럼 내비칠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
이것은 목회심리로 볼 때 불행의 한계선으로 돌입하는 과정이다. 권위의 정신은
사랑의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감동과 배려를 본디 받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양은 고개를 들지 않고 걷는 동물이기 때문에 목자의 인도를 받지만 때때로 빗나
가 다른 골짜기 길을 간다. 반면에 동물이지만 같은 양이면서도 성질 나쁜 양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산야에서 양을 쳐본 이들은 너무나 잘 아는 상식이다.
그런고로 앞을 잘 보는 목자가 양을 잘 알고 같이 동행하면서 그 길을 우회시킬
궁리를 해야만 한다.
이것이 목자가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목자나 양은 다 양이
라는 생각을 견지하여야만 한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배려하고 함께 걱정도 해보
는 일은 오히려 아름다운 목회의 추억이 된다. 여기에서 성공하는 "지체됨(함)의
원리"가 있다.
이것이 때때로 크게 성공의 결과를 갖게 한다. 대개 끈질긴 사랑과 관심과 배려에
는 감동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결과에는 흔히 존경과 신뢰를 낳고 쌓는다.
목자는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권위의 채찍 대신 줄곧 사랑의 채찍을 사용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12영 되는 천사의 채찍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2.. 목회 동역자와의 관계
목회는 홀로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외로움의 사명일 수 있다.
교인들은 양들이어서 상통하지 않을 수 있고 목회 동역자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들어내고 싶지 않는 생각이 있어서 일정 한계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관계가 되겠는가?
고기를 잘 낚는 사람은 좋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좋지 않다. 높은데 사과를
잘 따는 사람은 좋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좋지 않다. 낙시터에 가고싶지 않고
사과밭에 가고싶지 않다.
머리를 지혜롭게 쓰다보면 오히려 아담이 해와 더러 선악과를 제시한다.
이때 해와가 과감하게 믿음을 발휘하고 용기와 격려를 주어야 할 차례이다.
이런 이야기는 차라리 지나친 이야기가 될지는 몰라도 중요한 것은 목회는 소명
의 일이며 사람 아닌 하나님이 어떻게 인정하는가의 사업이다. 결단코 이점을 잊
어버리지 않는 한 자기만 갖는 특유의 그 목회는 성공하게 될 것이다.
결단코 주위를 살필 시야를 어둡게 가지고 개인경주의 자세를 가지고 늘상 가늠
해야만 한다. 평생 목회에 성공하고 행복하려거든 그래야만 한다. 특히 목회자
발령제나 교회의 선택처럼 된 우리 교회에서는 그래야만 한다.
매력은 매력에 있다. "그분은 (참) 목회자이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렇다. 그
분은 목회자라는 참 매력을 아는 자의 말이다. 이 말은 인기(?) 있고 훌륭하다는
말을 훨씬 뛰어 넘는 심중의 말이다. 이 얼마나 큰 영예인가!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인정하시겠는가!
(다음 계속)
라는 수평관계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수직관계이다.
우리는 이 관계를 떠나서, 소홀리 해서 말씀으로만 목회를 할 수는 없다.
만약에라도 이 원만하지 아니한 관계가 혹시라도 잘못 정비되면 본연한 목회
에서 손실을 입거나 그 이상의 것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이 어느 것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영성을 잃게 하고 현재를 유지상태에
두거나 세상을 돌아보는 마음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심지어 세상의 직
업을 들여다 보게 되고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딤 후 4:10)라고 함과 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때 영혼구원으로 불탔던 마음이 무엇으로 충족되겠는가? 발등을 찍고 싶다
는 후회감 섞인 호소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관계에서의 미끄러짐은 사정없는
슬픈 애가의 일이다.
그런고로 목회관계에 있어서의 성공이 곧 목회의 성공이 된다.
1. 교인과의 관계
여기에는 반드시 목회의 성공을 위하여 두 가지 정신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의 목자나 양이나 우리의 참 목자이신 하나님을 목자로 해서 교회
안에서 목자와 양인 우리 모두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양이라는 입장을 정신적
으로 언제나 견지해야만 한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중요하다.
그렇게 변화되거나 무장하지 아니하면 인정을 받지 못할 때, 못 마땅할 때, 지도
를 잘 따르지 않을 때, 엉뚱한 일이 발생할 때, 목자의 위치를 가지고 권위의 행세
처럼 내비칠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
이것은 목회심리로 볼 때 불행의 한계선으로 돌입하는 과정이다. 권위의 정신은
사랑의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감동과 배려를 본디 받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양은 고개를 들지 않고 걷는 동물이기 때문에 목자의 인도를 받지만 때때로 빗나
가 다른 골짜기 길을 간다. 반면에 동물이지만 같은 양이면서도 성질 나쁜 양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산야에서 양을 쳐본 이들은 너무나 잘 아는 상식이다.
그런고로 앞을 잘 보는 목자가 양을 잘 알고 같이 동행하면서 그 길을 우회시킬
궁리를 해야만 한다.
이것이 목자가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목자나 양은 다 양이
라는 생각을 견지하여야만 한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배려하고 함께 걱정도 해보
는 일은 오히려 아름다운 목회의 추억이 된다. 여기에서 성공하는 "지체됨(함)의
원리"가 있다.
이것이 때때로 크게 성공의 결과를 갖게 한다. 대개 끈질긴 사랑과 관심과 배려에
는 감동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결과에는 흔히 존경과 신뢰를 낳고 쌓는다.
목자는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권위의 채찍 대신 줄곧 사랑의 채찍을 사용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12영 되는 천사의 채찍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2.. 목회 동역자와의 관계
목회는 홀로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외로움의 사명일 수 있다.
교인들은 양들이어서 상통하지 않을 수 있고 목회 동역자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들어내고 싶지 않는 생각이 있어서 일정 한계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관계가 되겠는가?
고기를 잘 낚는 사람은 좋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좋지 않다. 높은데 사과를
잘 따는 사람은 좋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좋지 않다. 낙시터에 가고싶지 않고
사과밭에 가고싶지 않다.
머리를 지혜롭게 쓰다보면 오히려 아담이 해와 더러 선악과를 제시한다.
이때 해와가 과감하게 믿음을 발휘하고 용기와 격려를 주어야 할 차례이다.
이런 이야기는 차라리 지나친 이야기가 될지는 몰라도 중요한 것은 목회는 소명
의 일이며 사람 아닌 하나님이 어떻게 인정하는가의 사업이다. 결단코 이점을 잊
어버리지 않는 한 자기만 갖는 특유의 그 목회는 성공하게 될 것이다.
결단코 주위를 살필 시야를 어둡게 가지고 개인경주의 자세를 가지고 늘상 가늠
해야만 한다. 평생 목회에 성공하고 행복하려거든 그래야만 한다. 특히 목회자
발령제나 교회의 선택처럼 된 우리 교회에서는 그래야만 한다.
매력은 매력에 있다. "그분은 (참) 목회자이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렇다. 그
분은 목회자라는 참 매력을 아는 자의 말이다. 이 말은 인기(?) 있고 훌륭하다는
말을 훨씬 뛰어 넘는 심중의 말이다. 이 얼마나 큰 영예인가!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인정하시겠는가!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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