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현장 잡기(1): 도전이 영혼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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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목회의 나의 경험인데 도전이 영혼을 얻는다는 체험입니다.
양보해버리면 현실적으로 피차 자유롭고 좋지만 양보하지 않는 한 경우가 영혼을 구원한
경험입니다.
나는 아내와 더불어 주택가로 차를 몰면서 뒷 마당에 한국식 농사하는 집을 찾았는데
때마침 배추, 시금치 상치, 등을 밭에 심은 가정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차를 정차한 다음 그 집을 노크했습니다. 필시 한국인 아니겠습니까?
예상 대로 우리나라 사람 젊은 여자 한 분이 이야기 할만큼 문을 조금 열고는 말을 건냈습
니다. 나는 말하는 도중에 그 문을 닫아버리면 그만이겠기에 얼른 문을 꽉 부여잡고는 말을
긴하게 건냈습니다.
"저는 재림교회 목사입니다. 성경을 연구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1주에 단 한 번 나의 아내
를 동석한 가운데 30분만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할 분을 찾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녀는 조금 생각에 잠긴듯 하더니 "그래요. 들어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들어가서 정해진 교재를 가지고 꼭 30분을 공부하고 시계를 보면서 떠나왔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거의 1년을 했습니다. 그녀는 학구파, 정말 부지런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녀는 미군 현역 간호사 대위였습니다. 그리고 간호학 석사 학위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공부를 빠진 일이 없었습니다.또 늦은 일도 없었습니다.
난 이 재미로 당시에 목회의 활력을 얻으면서 재미를 크게 본 셈입니다.
나는 이분을 좀 특별한 방법으로 다루었습니다. 교회에 나오겠느냐는 요청을 단 한 번도
하지를 하지 아니하는 케이스로 다루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1년이 거의 되어가던 어느날 "제가 교회를 나가도 되겠습니까?"라고 긴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나는 "물론이지요!" 라고 그때 그렇게 경쾌하게 말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미군 미국인 현역 중령인데 군의관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때부터 자기 남편
을 단 번에 인도하여 우리 집회소 옆에 있는 우리 미국인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이 내외분이 함께 독일 근무를 위해 떠나게 되었는데 가정을 마지막 방문
한 자리에서 말씀으로 권면하는 마지막 예배시간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난 이곳을 떠난 후 어디로 다니면서 근무하더래도 재림교회를 찾아
반드시 신앙할 것이며 영원히 재림교인으로 하늘에 갈 것을 목사님과 약속한다."고 애절한
심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큰 소리로 "아멘!" 했습니다.
그분의 미모나 영특함을 그만 두더래도 그분의 말하는 바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믿어야 할 분
이었습니다. 난 그때 하나님과 스스로 서약하던 그 분의 그 모습을 잊을 길이 없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숙련되리만큼 진실한 재림교인 신앙인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 문을 닫아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을 꽉 붙잡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도전이 영혼을 구원할 수도 있더라구요. 그 순간이 그 진귀한 부부 영혼
을 구원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아슬 아슬한 순간이었었는지요!
양보해버리면 현실적으로 피차 자유롭고 좋지만 양보하지 않는 한 경우가 영혼을 구원한
경험입니다.
나는 아내와 더불어 주택가로 차를 몰면서 뒷 마당에 한국식 농사하는 집을 찾았는데
때마침 배추, 시금치 상치, 등을 밭에 심은 가정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차를 정차한 다음 그 집을 노크했습니다. 필시 한국인 아니겠습니까?
예상 대로 우리나라 사람 젊은 여자 한 분이 이야기 할만큼 문을 조금 열고는 말을 건냈습
니다. 나는 말하는 도중에 그 문을 닫아버리면 그만이겠기에 얼른 문을 꽉 부여잡고는 말을
긴하게 건냈습니다.
"저는 재림교회 목사입니다. 성경을 연구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1주에 단 한 번 나의 아내
를 동석한 가운데 30분만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할 분을 찾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녀는 조금 생각에 잠긴듯 하더니 "그래요. 들어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들어가서 정해진 교재를 가지고 꼭 30분을 공부하고 시계를 보면서 떠나왔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거의 1년을 했습니다. 그녀는 학구파, 정말 부지런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녀는 미군 현역 간호사 대위였습니다. 그리고 간호학 석사 학위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공부를 빠진 일이 없었습니다.또 늦은 일도 없었습니다.
난 이 재미로 당시에 목회의 활력을 얻으면서 재미를 크게 본 셈입니다.
나는 이분을 좀 특별한 방법으로 다루었습니다. 교회에 나오겠느냐는 요청을 단 한 번도
하지를 하지 아니하는 케이스로 다루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1년이 거의 되어가던 어느날 "제가 교회를 나가도 되겠습니까?"라고 긴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나는 "물론이지요!" 라고 그때 그렇게 경쾌하게 말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미군 미국인 현역 중령인데 군의관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때부터 자기 남편
을 단 번에 인도하여 우리 집회소 옆에 있는 우리 미국인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이 내외분이 함께 독일 근무를 위해 떠나게 되었는데 가정을 마지막 방문
한 자리에서 말씀으로 권면하는 마지막 예배시간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난 이곳을 떠난 후 어디로 다니면서 근무하더래도 재림교회를 찾아
반드시 신앙할 것이며 영원히 재림교인으로 하늘에 갈 것을 목사님과 약속한다."고 애절한
심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큰 소리로 "아멘!" 했습니다.
그분의 미모나 영특함을 그만 두더래도 그분의 말하는 바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믿어야 할 분
이었습니다. 난 그때 하나님과 스스로 서약하던 그 분의 그 모습을 잊을 길이 없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숙련되리만큼 진실한 재림교인 신앙인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 문을 닫아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을 꽉 붙잡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도전이 영혼을 구원할 수도 있더라구요. 그 순간이 그 진귀한 부부 영혼
을 구원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아슬 아슬한 순간이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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