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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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어두운 동굴 이야기 할께요. 재미 있죠!
미국 조지아 주에 가면 동굴이 있습니다.
동굴을 들어가 어렵게 내려가면 넓고도 넓은 지하 세계가 펼쳐집니다.
가로등 때문에 마치 해 뜰 아침이나 해질 무렵처럼 느껴집니다.
넓은 바다도 있고요. 배가 떠다니는데 멀리까지 소리를 쳐도 잘 안들리지요.
바다에 고기도 보입니다. 참 신기하지요.
우리나라에 있는 고수동굴, 고씨동굴은 그 범위가 작지만 다니기가 좀 힘들지요.
동유럽에 가면 이글이글 타버린 암석 사이로 불편하게 다녀야 할 동굴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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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수많은 동굴을 처음 발굴하기 위해 탐사대가 어떻게 탐사하죠.
동굴 입구에 끈을 단단하게 붙들어 매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밧줄을 조금씩 풀어줍니다.
이들은 종래 그렇게 길을 찾아 다니면서 동굴 내용을 탐사한다는 거죠.
이런 방법이 오늘날도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나중에 그 끈을 사리면서 그 끈이 놓여있는 자리를 따라서 나오게 되면
조난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거죠!
정말 옛날 방법 같기는 하지만 확실하고도 안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죠.
이 방법이 생명을 지키며 구원을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중요한 이야기가 되죠.
성경에도 이 세상 어두운 동굴(?)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천국 길에 대하여 말씀했죠. 이 말씀 뒤에 곧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분명 천국 가는 일은 길의 문제인가 봅니다.
그러자 도마는 의아하고 답답했던지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니이까” 라고 말했습니다. 조난이라도 당할까 싶은 심정 같아 보입
니다. 중요하고도 솔직한 표현이었죠.
그때 예수님께서 동굴을 벗어나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는데 이건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구출 방법이 되는 것이지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우리가 예수 안에서 죽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며 장차 예수님처럼 하늘로 가는 길은
예수께서 우리가 사는 동굴을 빠져나가는데 개척해 놓으신 유일한 방법입니다.
곧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입니다. 오직 예수님에 의해서만 이라는 말씀이죠.
이 길 외에는 탐사길 구출 방법이 없지요.
그런데 구원의 밧줄은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를 대신할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런 설명이 주어지면 그럼, 율법은 어떻고요? 하는 질문이 있죠.
예, 율법은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입니다. 율법은 큰 역할을 하지요.
그리스도와 율법을 나누어 생각하려는 발상이 역사적으로 있어왔는데 그렇게 나누어
따로 상충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 않을까요.
다만 나누어 생각하는 경우는 그 역할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렇게 설명하는 거죠.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에도 그렇게 나누어 역할을 강조했을 뿐이죠.
그럼, 조금 더 생각해 보지요.
그런데요. 어두운 동굴을 벗어나는 구원의 문제 하면 먼저 사람의 본성 문제를 생각해
야만 하죠. 사람의 영적인 시력을 생각해 보아야지요.
사람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물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주님의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까지 그 역할을 다 합니다. 한 집안 역할입니다.
율법의 역할 뒤에는 믿음이 의롭게 하고 그리하여 구원을 성취하지요.
믿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율법의 존재와 그 하는 일을 무시해서는 안되고 율법을 생각하
는 사람은 율법이 일한 뒤에 오는 믿음의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릴레이 경주 최종 결승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먼저 뛰어준 자가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다
그 영광을 나누어 갖는 것과 방불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구원을 성취시키는데 믿음과 율법의 역할(상호보완) 말입니다. 이것 다
그리스도에게서 난 것이지요. 구원은 그리스도에게서 비롯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와 자비라고 했고 그 공의와 율법은 서로 입맞추었다고 표현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믿음에 관한 것도 율법도 다 그리스도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두 개의 나누임의 편파는 성서적이지 않지요.
물론 믿음, 율법의 재 기능을 각각 어느 만치 강조하는 것이 무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말세가 되면 율법을 홰손하는 인류의 일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의 역할, 곧 율법이 하는
역할이 지금 그리스도인의 내적 삶에 역활하는 것 이상으로 외적으로 공공연하게 표현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 역시 예수로 인하여 구원을 얻는 이야기이지요.
이 세상 동굴 나가는 이야기 했네요.
어쩜, 세상은 밝게 보이지만 Patrick Morley에 의하면 정신 세계와 영적 세계의 우위가
물질문명 세계의 발전으로 서로 교차하여 그 우위성이 바뀌다 보니 세상은 어두워진다
라고 보더라구요. 결국 우리의 영적인 세계가 어두워지는 것이죠.
그럴 법 하죠! 물질 세계, 문명 세계가 이글이글 타버린 콕스 같은 산만하고 어두운 동
굴 속은 아닌지! 너무 심한 표현이었습니까? 죄송합니다.
어디까지나 더 좋은 세계(히 11:16) 하면 이 세상은 무력해지는 세계일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참 빛”(요 1:9)이라고 하신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생명의 빛이실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생명의 밧줄이시기도 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영원하신 분 생명의 밧줄 꼭 붙잡고 그 은혜 찬송하며 오늘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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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벙님의 댓글
사랑벙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번호 196 3-16-09의 질문에 답 부탁합니다. 작은머리로는 이해되지않고 궁금합니다. 현재 미주SDA의 상당수는 이방인들에게 자체교회을 재정상 모게지상환 방편으로 형편상 임대해준다는 명목입니다.어쩌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이 진리와 거리가 먼 구별되지 못하게 되었는지 기도해야 할것 같습니다. 한국연합회에 문의했는데 한국에서는 하나님의 진리의 교회가 일요일성수자들에게 SDA가 임대해준다면 첫째는 진리의기별과 구별되지못하고 둘째는 일요일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요일의 신성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한곳도 임대해 준곳이 없다 했습니다. 미주의 교회지도자들은 말씀과 거리가 상당히 많은것 같습니다. 현실이 이러니까 어쩔수 없으니까 답이 될수 없습니다. 어떤교회들은 처음건축 때부터 일요일 그룹에게 임대해줘서 모게지 매꿔가자는 지도자들의 결정으로 성전건축이 이루어진 곳도 있다하니 배움에 있는 작은자들은 어디에 서서 배워야합니까? 미주한인SDA는 다시 개혁과부흥이 이루어져야 펑신도들의 마지막사업이 전개될것 같습니다. 근본뿌리부터 기초가 세워져있지 않기때문에 교회가 연약하고 교인들의 쟁투가 끊이질않고 진리가 희미하며 거리가 먼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성전정결사업부터 시작하는 개혁과 부흥없이는 삯꾼들의 향연이외엔 다른것 없다 여겨집니다. 구-신약에서 선지자의 기별에서 하나님의 성전에대해서 어떤말씀이 계시는지 가르쳐 주십시요. 적은자가 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