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목회 자산?(하)(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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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목회자의 목회 자산"을 두 가지 방향에서 숙고해 보았다.
배움과(연구, 영성 포함), 건강, 성도, 가 목회자의 자산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교(성경
교수), 방문, 치리(행정)가 목회자의 자산이라는 것이었다.
이것들은 목회의 도구이며 방법론이자 나아가서는 목회자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오직 우리 주 예수를 위하여 목회자가 사용하고 활용하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일에나 아무추어가 있고 프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몇 년을 일했다고 해서 견주는 것이 다일까? 하는 우리 스스로의 생각이다. 또한 평생에
목회를 했다고 해서 목회라는 잣대에 재어보려는 것이 다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직도 선하고 성스러운 모습으로 있지만 성도가 밉고 설교가 막힌 다면 어떨까?
안식일은 가까와 오는데 설교가 준비되지 아니하여 어렵다면 어떨까? 오늘은 방문이 가
고싶지 아니하여 자연스런 한 날을 보내지 못했다면 어떨까? 솔직히 목회가 아니면 이것
저것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어떨까? 가령 목회의 쟁기를 부여잡고 뒤를 바라보면서
물러날 속시원한 길은 없는지를 탐색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이런 목회는 그런 질 좋은 목회와는 달리 아마추어의 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목회의 프로는 될 수 없는 가? 대개는 재능이나 역량 보다는 정신 가짐에 달려
있다. 온전히 그 마음 가짐이 비어졌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사는 자세로
마음과 몸의 자세가 갖추어져 있는가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목회의 프로는 될 수 있다.
오늘은 세번째의 경우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목회자의 자산은 무엇인가?
이 경우에 참 목회자이신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세 가지 성경절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하엿음이라"(고 전 2:2)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
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사도 바울은 외골수로만 가는 막힌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물 불이라도 모르는 척 뛰어드는
분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 때문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분 예수가 목회의 문에 들어서게 하였으면 그가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이다. 이것이 목회의
프로 되게 한다는 사실이다. 영성과 능력, 그리고 모든 활력소가 분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 번째의 성경절 사상이 결론적으로 중요하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진리로 말미암는 자유는 마치 독수리가 알프스의 산곡과 먹구름을 뚫고 천공으로 치솟아
푸른 하늘을 유유히 나는 것과 같은 목회자의 모습과도 흡사한 것일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뜻이기 이전에 오죽 주님으로부터 오는 바램에서 온 것이다.
이런 것은 만족이나 자만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경건과 겸손과 고독과 확신과 활로의 길이
다. 막을 것이 없고 막힐 것이란 없다. 자유이다.
확실히 주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감은 자신감을 갖는 자에게 주어진다. 기도와 헌신으로 전진한다면 어려운 목회 현항은
없다고 외쳐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왜? 진리가 자유했으니깐...
마지막으로 네번째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 목회자의 자산은 무엇인가?
그 답변은 명백하다. 하늘나라이다. 모세가 자기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서 지워져도 좋기를
바라는 백성들에 대한 신념을 말했을 때 그는 고난 중에 하는 일 가운데서 자기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 되어있는 것을 상념적으로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바울 사도 역시 그것이 없다면 허무한 것임을 말했다. 소망이 없는 자 보다 더 불쌍한 자일
것으로 묘사하였다. 어쩌면 당연하다.
성도는 다 하늘에 가는데 유득 목회자만 하늘에 가는 것이고 자산이냐? 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 성도들이 보두 천국에 간다. 그러나 목회자가 하늘에 간다는 신념의 자산은 목회자
이기 때문에 무조건 하늘에 간다는 그런 뜻이 아니고 만고의 고난 중에 얻을 천국이라는
배경 이고 보면 값지다는 사실을 묘사하는 말이다.
그리고 현재에서 그 값짐을 미리 맛보아 아는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자산, 든든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현재를 살면서 그 자산으로 무한 한 핸복감과 숨겨진 기쁨을 채득하여
소유한다는 것은 이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 것인가!
애급의 로세타석을 보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보는 사람이 있었고 보고 감격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감격이란 그것을 보기 위해 그동안 준비하고 경비를 만들어 여기까지 왔는데
바로 그 것을 발견하고 대면하여 보게 되는 감격 때문이다. 감격은 언제나 그 질이 중요하다.
천국이 목회의 자산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는 목회의 자산이라는 말과 함께 최고의 자산임
을 표현하는 말이 될 것이다.
"거룩하신 이 말씀 영원 본향집에서 누릴 기쁨 알리니 나의 귀한 보밸세!"(참미 198장)
배움과(연구, 영성 포함), 건강, 성도, 가 목회자의 자산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교(성경
교수), 방문, 치리(행정)가 목회자의 자산이라는 것이었다.
이것들은 목회의 도구이며 방법론이자 나아가서는 목회자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오직 우리 주 예수를 위하여 목회자가 사용하고 활용하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일에나 아무추어가 있고 프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몇 년을 일했다고 해서 견주는 것이 다일까? 하는 우리 스스로의 생각이다. 또한 평생에
목회를 했다고 해서 목회라는 잣대에 재어보려는 것이 다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직도 선하고 성스러운 모습으로 있지만 성도가 밉고 설교가 막힌 다면 어떨까?
안식일은 가까와 오는데 설교가 준비되지 아니하여 어렵다면 어떨까? 오늘은 방문이 가
고싶지 아니하여 자연스런 한 날을 보내지 못했다면 어떨까? 솔직히 목회가 아니면 이것
저것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어떨까? 가령 목회의 쟁기를 부여잡고 뒤를 바라보면서
물러날 속시원한 길은 없는지를 탐색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이런 목회는 그런 질 좋은 목회와는 달리 아마추어의 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목회의 프로는 될 수 없는 가? 대개는 재능이나 역량 보다는 정신 가짐에 달려
있다. 온전히 그 마음 가짐이 비어졌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사는 자세로
마음과 몸의 자세가 갖추어져 있는가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목회의 프로는 될 수 있다.
오늘은 세번째의 경우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목회자의 자산은 무엇인가?
이 경우에 참 목회자이신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세 가지 성경절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하엿음이라"(고 전 2:2)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
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사도 바울은 외골수로만 가는 막힌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물 불이라도 모르는 척 뛰어드는
분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 때문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분 예수가 목회의 문에 들어서게 하였으면 그가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이다. 이것이 목회의
프로 되게 한다는 사실이다. 영성과 능력, 그리고 모든 활력소가 분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 번째의 성경절 사상이 결론적으로 중요하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진리로 말미암는 자유는 마치 독수리가 알프스의 산곡과 먹구름을 뚫고 천공으로 치솟아
푸른 하늘을 유유히 나는 것과 같은 목회자의 모습과도 흡사한 것일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뜻이기 이전에 오죽 주님으로부터 오는 바램에서 온 것이다.
이런 것은 만족이나 자만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경건과 겸손과 고독과 확신과 활로의 길이
다. 막을 것이 없고 막힐 것이란 없다. 자유이다.
확실히 주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감은 자신감을 갖는 자에게 주어진다. 기도와 헌신으로 전진한다면 어려운 목회 현항은
없다고 외쳐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왜? 진리가 자유했으니깐...
마지막으로 네번째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 목회자의 자산은 무엇인가?
그 답변은 명백하다. 하늘나라이다. 모세가 자기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서 지워져도 좋기를
바라는 백성들에 대한 신념을 말했을 때 그는 고난 중에 하는 일 가운데서 자기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 되어있는 것을 상념적으로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바울 사도 역시 그것이 없다면 허무한 것임을 말했다. 소망이 없는 자 보다 더 불쌍한 자일
것으로 묘사하였다. 어쩌면 당연하다.
성도는 다 하늘에 가는데 유득 목회자만 하늘에 가는 것이고 자산이냐? 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 성도들이 보두 천국에 간다. 그러나 목회자가 하늘에 간다는 신념의 자산은 목회자
이기 때문에 무조건 하늘에 간다는 그런 뜻이 아니고 만고의 고난 중에 얻을 천국이라는
배경 이고 보면 값지다는 사실을 묘사하는 말이다.
그리고 현재에서 그 값짐을 미리 맛보아 아는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자산, 든든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현재를 살면서 그 자산으로 무한 한 핸복감과 숨겨진 기쁨을 채득하여
소유한다는 것은 이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 것인가!
애급의 로세타석을 보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보는 사람이 있었고 보고 감격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감격이란 그것을 보기 위해 그동안 준비하고 경비를 만들어 여기까지 왔는데
바로 그 것을 발견하고 대면하여 보게 되는 감격 때문이다. 감격은 언제나 그 질이 중요하다.
천국이 목회의 자산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는 목회의 자산이라는 말과 함께 최고의 자산임
을 표현하는 말이 될 것이다.
"거룩하신 이 말씀 영원 본향집에서 누릴 기쁨 알리니 나의 귀한 보밸세!"(참미 19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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