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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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인간관계의 원만한 사람"의 "나그네를 대접하며"를 설명했는데 오늘은 그 후편
인 "가르치기를 잘 하며"를 설명할 차례이다.
나는 목회활동을 오래 하면서 마음에 들고 장차 교회의 인물감이 되겠다 싶은 사람이면 내벧는
말이 하나 있다. "안식일 학교 교과를 가르칠 욕망을 가지시요! 이런 욕망은 좋은 욕망입니다!"
라는 부탁이다. 성경을 연구하여 광범위하게 잘 풀어 해석하고 이것을 다른 이에게 가르치는 자
처럼 복되고 행복한 사람이란 다시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처럼 말한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히브리어 원문에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란 차라리 잘 "가르치는 자" 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는
바로 그사명이 중하고 보람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장
로의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번 "나그네를 대접하며"를 설명할 때 "나그네를 대접하는 정신은 사랑에서 울어나오는 정신
이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이 충만할 때 바로 이 정신이 "가르치
기를 잘 하며"라는 자격을 북돋아주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 교사는 사랑의 정신 없이 탁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론 이전에 그의 함축된 정신의 표출이 그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가르침이란 매마른 지식에 불과해서 영혼에 대한 사랑의 매아리가 없는 법이다.
그런고로 "가르치기를 잘 하며" 라고 하는 말씀의 뜻을 성취하는 데는 잘 가르칠 수 있는 소양
이나 테크닉 이전에 영혼에 대한 사랑이 그 먼저 필요한 것이 강조 되는 것이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그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될 것이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겠다는 지혜의 감각을 터득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잘 가르치기 위한 방법 연구나 끊임이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선천적으로 가르치는
소질과 역량을 잘 타고 났다고 할지라도 교수 방법이나 성실한 준비가 없으면 잘 가르칠 수 없
을 뿐 아니라 연구심이 없게 되면 발전하는 세대의 지도자로써의 시대적인 낙오자가 되어 그의
가르침을 백성들이 필요로 하지 않게 될 보이지 않는 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는 부단히 연구하고 애써야 하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잘 가르쳐주지 못한다고
하는 원성이 있는 대도 그 사실을 미쳐 잘 간파하지 못해 각성하는 기회나 대비적인 연구 자세
를 취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신약학을 공부할 때 키가 작은 그 미국인 선생은 헬라어에 능하단다. 그리고 헬라어로 신약
성경을 거의 다 외운단다. 이게 보통 이야기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나 하긴
다른 이를 가르치려는 자에게는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의 장로가 꼭 유념해야 할 말씀이 하나 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 전 5:17)고 한 말씀이다. 곧 "잘
다스리는 장로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 "배나 존경할 자들", 이들을 같은 시각의 선
상에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말은 장로들의 가슴에 깊이 와서 닿는 권면과 암시의 말씀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래야 미래를 위해 이상적이며 현실을 위해 실제적인 장로의 거룩한 그 직분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연구하고 배우며 또 그렇게 가르치자!
인 "가르치기를 잘 하며"를 설명할 차례이다.
나는 목회활동을 오래 하면서 마음에 들고 장차 교회의 인물감이 되겠다 싶은 사람이면 내벧는
말이 하나 있다. "안식일 학교 교과를 가르칠 욕망을 가지시요! 이런 욕망은 좋은 욕망입니다!"
라는 부탁이다. 성경을 연구하여 광범위하게 잘 풀어 해석하고 이것을 다른 이에게 가르치는 자
처럼 복되고 행복한 사람이란 다시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처럼 말한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히브리어 원문에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란 차라리 잘 "가르치는 자" 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는
바로 그사명이 중하고 보람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장
로의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번 "나그네를 대접하며"를 설명할 때 "나그네를 대접하는 정신은 사랑에서 울어나오는 정신
이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이 충만할 때 바로 이 정신이 "가르치
기를 잘 하며"라는 자격을 북돋아주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 교사는 사랑의 정신 없이 탁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론 이전에 그의 함축된 정신의 표출이 그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가르침이란 매마른 지식에 불과해서 영혼에 대한 사랑의 매아리가 없는 법이다.
그런고로 "가르치기를 잘 하며" 라고 하는 말씀의 뜻을 성취하는 데는 잘 가르칠 수 있는 소양
이나 테크닉 이전에 영혼에 대한 사랑이 그 먼저 필요한 것이 강조 되는 것이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그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될 것이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겠다는 지혜의 감각을 터득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잘 가르치기 위한 방법 연구나 끊임이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선천적으로 가르치는
소질과 역량을 잘 타고 났다고 할지라도 교수 방법이나 성실한 준비가 없으면 잘 가르칠 수 없
을 뿐 아니라 연구심이 없게 되면 발전하는 세대의 지도자로써의 시대적인 낙오자가 되어 그의
가르침을 백성들이 필요로 하지 않게 될 보이지 않는 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는 부단히 연구하고 애써야 하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잘 가르쳐주지 못한다고
하는 원성이 있는 대도 그 사실을 미쳐 잘 간파하지 못해 각성하는 기회나 대비적인 연구 자세
를 취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신약학을 공부할 때 키가 작은 그 미국인 선생은 헬라어에 능하단다. 그리고 헬라어로 신약
성경을 거의 다 외운단다. 이게 보통 이야기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나 하긴
다른 이를 가르치려는 자에게는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의 장로가 꼭 유념해야 할 말씀이 하나 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 전 5:17)고 한 말씀이다. 곧 "잘
다스리는 장로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 "배나 존경할 자들", 이들을 같은 시각의 선
상에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말은 장로들의 가슴에 깊이 와서 닿는 권면과 암시의 말씀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래야 미래를 위해 이상적이며 현실을 위해 실제적인 장로의 거룩한 그 직분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연구하고 배우며 또 그렇게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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