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곡에서 피어난 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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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스라엘의 나사렛을 지나갈 때 뜻밖에 어느 건물 이층에 깨끗하게 자리한 "제칠일
안식일예수재림교회"(영문) 간판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나서 어찌나 반가웠었는지 모른다.
나는 수년전 헬렌스 산의 아름다운 야생화 한 그루를 보았던 느낌이 들었다. 화산 폭발로 풀
한포기를 볼 수 없는 광활한 산야에 딱 하나의 유연하고 아름다운 꽃 한 포기가 왕성하게 피
어난 것을 보고서 너무 너무 신기하기만 했었다.
유대땅 재림교회이며 그 소수일 신자들은 가이 질곡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해야 옳을 일이다.
대총회 통계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에 있는 우리 교회 수가 2천년도에는 9개이던 것이 지금은
18 곳이 되었다. 예배소는 2곳이었던 것이 지금은 5곳이 되었다. 매년 평균 30명 정도가 침례
를 받으며 현재 총 신자수는 833명이나 된다.증명서 목사 1명을 포함하여 목사수는 5명이다.
"833명이나 된다."는 말에 놀라겠는가! 한 영혼을 얻기 어려운 유별난 신앙 토양에서 침례자
한 명이라면 다른 세계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얻는 몇 명에 해당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확실히 질곡에서 피어난 아름답고 반가운 남은 무리 꽃봉오리들이다.
나는 오늘날 유대땅 우리 재림교회를 질곡의 꽃이라고 부르는 데는 3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토라와 미쉬나에 꽉 막히고 유전 사고에 막힌 유대 백성들 토양 속에서 남은 무리의
희귀종 꽃이 필 수 있었다니 말이다. 고대사적인 고찰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더더구나 유대인들만 갖는 역사적 질곡의 토양에서 핀 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
서 바로 이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고대를 지나 중세사의 고찰 이야기이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이스라엘은 좁은 나라 지역이면서도 현제 첨예한 종교 사상으로 대
립각을 이루고 있는 지역인 연고이다. 자못 현대사의 고찰 이야기이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이 로마를 저항 하다가 단 한 번에 갈릴리 지역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수가 무려 2,000여명이나 되었다. 유대인들의 수많은 로마에 대한 항거는 2세기에
이르러 점차 포기되었고 그들은 유대인 교육에만 전념하다가 드디어 로마의 강압정책에 못이
겨 극히 소수만 남고 2세기에 온 세계로 흩어진 백성이 되었는데 이를 가리켜 역사는 Diaspora
혹은 scattering 이라고 부른다.
온 세계로 흩어진 유대 백성들은 온갖 핍박을 받았다. 드디어 아랍이 서기 634년 발레스틴과
의 전쟁이 있었을 때 유대인들은 약간 있었을 뿐 대부분 이 지역에 산 사람들은 아랍의 모슬
림인들이 되었다.
이리하여 유대인의 나라 잃은 세월은 1900년까지 거의 1700년에 해당하는 기간이었다. 그러
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그러니까 1900년대에 이르러서 유대인 후예들이 고국땅인
발레스틴으로 차츰 차츰 모와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발레스틴은 결코 자기들의 나라는 아니었다. 1922년 이곳을 통치하던 영국은
유대의 동부를 아랍 통치하에 두었고 서부의 해안 지역을 유대인들에게 허락하였다. 그렇다
고 하여 이것이 곧 이스라엘의 시작은 아니었다.
20여년이 지난 후 드디어 유엔은 여기에 좌와 우로 이스라엘과 아랍을 나누어 두 나라로 인정
할 것인가의 투표에서 많은 논란을 이르켰는데 미국의 강력한 지원으로 1948년 5월 14일 신
생 유대인 이스라엘국이 탄생 하게 되었다. 사실상 결정은 이렇게 되었으나 유대인과 아랍인
들 사이에 많은 싸움의 역사를 갖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집을 잃고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영토는 확장 되었다.
아마 세계인이면 누구나 그 이후의 갈등과 싸움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이렇게 갈등하는 유
대인과 아랍인들 사이의 속사정 속에서 유대인들, 모슬렘인들, 그리고 고국땅으로 이주해 올
당시에 5,000명의로 번영한 기독교인들, 이들은 어쩌면 지극히 대립적이며 팽팽하다.
아, 이런 속사정 속에서라도 질곡의 꽃들은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만 같아 보인다.
유대땅 재림교회, 재림교인들, 과연 그대들은 "남은 백성이여라! 질곡에서 핀 탐스러운 꽃봉
오리여라!
안식일예수재림교회"(영문) 간판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나서 어찌나 반가웠었는지 모른다.
나는 수년전 헬렌스 산의 아름다운 야생화 한 그루를 보았던 느낌이 들었다. 화산 폭발로 풀
한포기를 볼 수 없는 광활한 산야에 딱 하나의 유연하고 아름다운 꽃 한 포기가 왕성하게 피
어난 것을 보고서 너무 너무 신기하기만 했었다.
유대땅 재림교회이며 그 소수일 신자들은 가이 질곡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해야 옳을 일이다.
대총회 통계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에 있는 우리 교회 수가 2천년도에는 9개이던 것이 지금은
18 곳이 되었다. 예배소는 2곳이었던 것이 지금은 5곳이 되었다. 매년 평균 30명 정도가 침례
를 받으며 현재 총 신자수는 833명이나 된다.증명서 목사 1명을 포함하여 목사수는 5명이다.
"833명이나 된다."는 말에 놀라겠는가! 한 영혼을 얻기 어려운 유별난 신앙 토양에서 침례자
한 명이라면 다른 세계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얻는 몇 명에 해당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확실히 질곡에서 피어난 아름답고 반가운 남은 무리 꽃봉오리들이다.
나는 오늘날 유대땅 우리 재림교회를 질곡의 꽃이라고 부르는 데는 3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토라와 미쉬나에 꽉 막히고 유전 사고에 막힌 유대 백성들 토양 속에서 남은 무리의
희귀종 꽃이 필 수 있었다니 말이다. 고대사적인 고찰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더더구나 유대인들만 갖는 역사적 질곡의 토양에서 핀 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
서 바로 이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고대를 지나 중세사의 고찰 이야기이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이스라엘은 좁은 나라 지역이면서도 현제 첨예한 종교 사상으로 대
립각을 이루고 있는 지역인 연고이다. 자못 현대사의 고찰 이야기이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이 로마를 저항 하다가 단 한 번에 갈릴리 지역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수가 무려 2,000여명이나 되었다. 유대인들의 수많은 로마에 대한 항거는 2세기에
이르러 점차 포기되었고 그들은 유대인 교육에만 전념하다가 드디어 로마의 강압정책에 못이
겨 극히 소수만 남고 2세기에 온 세계로 흩어진 백성이 되었는데 이를 가리켜 역사는 Diaspora
혹은 scattering 이라고 부른다.
온 세계로 흩어진 유대 백성들은 온갖 핍박을 받았다. 드디어 아랍이 서기 634년 발레스틴과
의 전쟁이 있었을 때 유대인들은 약간 있었을 뿐 대부분 이 지역에 산 사람들은 아랍의 모슬
림인들이 되었다.
이리하여 유대인의 나라 잃은 세월은 1900년까지 거의 1700년에 해당하는 기간이었다. 그러
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그러니까 1900년대에 이르러서 유대인 후예들이 고국땅인
발레스틴으로 차츰 차츰 모와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발레스틴은 결코 자기들의 나라는 아니었다. 1922년 이곳을 통치하던 영국은
유대의 동부를 아랍 통치하에 두었고 서부의 해안 지역을 유대인들에게 허락하였다. 그렇다
고 하여 이것이 곧 이스라엘의 시작은 아니었다.
20여년이 지난 후 드디어 유엔은 여기에 좌와 우로 이스라엘과 아랍을 나누어 두 나라로 인정
할 것인가의 투표에서 많은 논란을 이르켰는데 미국의 강력한 지원으로 1948년 5월 14일 신
생 유대인 이스라엘국이 탄생 하게 되었다. 사실상 결정은 이렇게 되었으나 유대인과 아랍인
들 사이에 많은 싸움의 역사를 갖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집을 잃고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영토는 확장 되었다.
아마 세계인이면 누구나 그 이후의 갈등과 싸움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이렇게 갈등하는 유
대인과 아랍인들 사이의 속사정 속에서 유대인들, 모슬렘인들, 그리고 고국땅으로 이주해 올
당시에 5,000명의로 번영한 기독교인들, 이들은 어쩌면 지극히 대립적이며 팽팽하다.
아, 이런 속사정 속에서라도 질곡의 꽃들은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만 같아 보인다.
유대땅 재림교회, 재림교인들, 과연 그대들은 "남은 백성이여라! 질곡에서 핀 탐스러운 꽃봉
오리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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