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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의 인간관계의 여부를 생각한다!(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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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6.03 07:27 조회수 4,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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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3번에 걸친 이야기로 목회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안간관계에 대하여 말했다.
지금은 사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 인간관계와의 관계의 주축
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룬다.

가령 나는 목회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갈 수 있다. 왜냐하면 목회직은 사회
적인 인정도 받을뿐 아니라 비교적 안정직이기 때문에 선호의 대상으로써 이 길을 쾌히 선택
할 수도 있다.
오로지 소명이나 사명에 의한 것이 아니거나 그것에 우선한 것이 아니고서도 말이다.
결국 이 말은 심리적으로 하나님 우선 보다는 인간관계의 우선을 바탕으로 한 목회직 선택을
의미하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자칫 자신의 목회가 불리한 사정에 놓이게 될 경우에 버티기가 어렵고 부득불 목
회의 길을 미련없이 떠나서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유혹과 욕망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목회란 세상의 많은 다른 직업과는 달리 그렇게 할 수 없는 상이한 데가 있다는 점이
다. 그것이 무엇인가?
세상의 직업으로 말하면 정작 포드사에서 일하다가 GM으로 갈 수도 있고, GM을 떠나서 또
다른 판이하게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밥 벌어먹고 사는 일
에 무슨 일인들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싶다. 결국 그것이 그것인 셈이다.

그러나 목회의 길만은 그렇지 않다. 다르다. 소명과 사명의식으로 들어선 길이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안수로써 주님께 구별하여 바침바 되었으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그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한결같이 주의 충성되고 헌신한 종의 길을 가는 것이 목회의 길이어야만 바람직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목회를 하다가 종래 세상 다른 일에 정들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대단히 어려운 길도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할만한 사정의 길도 있을 수 있다. 특히 미국
같은 곳에서의 목회 사정은 헌신하고자하나 길이 열리지 않아서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러
나 기도하면서 인내하고 기다리면 주님이 길을 주시고 쓰시지 않을까 싶다. 사실 개척의 더 좋
은 방안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목회는 부르심이며 사명이며 그리고 절개 굳은 충성이다. 모두가 그 길을 가지 않을찌라도 나
는 그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길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길을 우선하여 살고 싶
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의 신임을 저버리고 싶지 않고 어떤 일이 있더래도 주님의
일을 해야 살 것만 같은 심정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구속주라는 사실을 알 때 당연한 그의 복된 기별을 전파하고싶
은 불변의 영구한 헌신의 마음인 것이다. 이것이 곧 목회자의 신조인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불의해서, 악독해서, 비리여서, 부정직해서 신앙의 마음으로 어떤 것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못할 경우를 직면한다.
그러나 목회자는 단순히 그런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판단 기준을 훨씬 뛰어넘어 차원이 다
르게 그것이 우리가 신뢰하는 하나님의 원천에서 발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기에 목회를 유지하는 그것 자체도 그러한 차원에서 주님께 자신을 제물로 드리고 싶어지
는 것이 목회자가 지니는 강열한 의지인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Andrew Johnson(1865-1869)의 이야기는 자못 이런 일에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된다.
그는 당원생활을 대부분 민주당에서 보냈으나 드디어 민주당에서 탈당했고 1864년에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의 런닝 메이트인 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어렸을 적에 심히
가난하게 살았고(어쩌면 링컨 보다 더) 심지어 그가 20세가 되기까지 글을 읽고 쓰지를 못한 정
도의 불운한 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치 가난한 생활의 사람 링컨에게 가난한 사람 잔슨이라는 어울림의 팀웍이었다. 노예를 해
방하려는 자에게 노예를 해방하려고 돕는 배필 같기도 했다. 진실로 잔슨은 노예해방을 주도
하는 대통령의 훌륭한 의지에 영합한 사람이었다.
불행하게도 링컨이 그만 1865년에 암살 당하자 잔슨이 대통령을 승계하여 일할 때 오직 자신의
대통령 임기 동안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의지를 관철시켜 나가는 그 일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의지로 그 생애를 온전히 바친 사람이 되었다.
물론 노예해방이야 말로 자신의 의지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말하자면 미국 남부에 대한
조약 성사와 완성을 위해 부득불 국회와 더불어 싸우는 일이었다.
실로 링컨의 노예해방이 완성되고 드디어 후 세대에게 광영이 된 이 일이 잔슨이라는 사람 없이
는 아마도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이야기는 한낱 동질의 삶과 정치신념에 관한 사람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만왕의 왕 되시
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홀로 부르심을 받아 목회자가 되고 재림성업의 완성을 위해 헌신한 목
회자로써는 어떻하여야 할지를 크게 가늠케 해주는 이야기가 된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목마르면 그것으로 끝내라! 그러나 다른 우물을 파지 말라!"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반응하겠
는가! 심히 어려운가! 아니면 단순한가! 그리고 용기가 솓구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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