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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여러견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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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야소리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10.06 13:57 조회수 4,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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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견해들


말틴 루터를 위시한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이 깨닫고 가르쳤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셋째 천사의 기별이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다른가, 아니면 같은 기별인가? 만약 전혀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셋째 천사의 기별은 16세기부터 전하여 졌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혼란해 한다. 물론 기별이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차이점이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업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오늘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업과 조화를 이루는 일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성소는 뜰과 성소(첫째 칸), 지성소(둘째 칸)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봉사하시는 장소와 위치에 따라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더욱 완전하게 교회에 계시되었다. 중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특히 하늘 성소에 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다.

16세기 말틴 루터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중심교리는 성소 뜰에서 비쳐오는 진리이다. 죄인들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진리가 그 당시에 그들이 깨달은 빛이었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러 J. 웨슬리와 같은 개혁자들이 주장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중심교리는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이 깨달은 칭의 교리의 바탕 위에 성소의 첫째 칸이 간직하고 있는 성화의 진리가 첨가되어‘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의 빛은 더욱 밝아졌다. 드디어 19세기에 이르러 셋째 천사의 기별과 함께 하늘 지성소의 완전함의 진리가 과거의 모든 개혁자들에 의하여 밝혀진 진리와 연합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교회에 완전하게 공개되어 나타났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하늘 성소진리와 합병되어져야 하며 셋째 천사가 가리키는 하늘 지성소와 조화되게 가르쳐져야 한다. 오늘날 백성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의 견해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다.


1) 일반적인 견해


칭의 -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과거의 죄에 대하여 완전한 용서를 받게 되며 그 공로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믿는다. 회개와 자복으로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 거듭난다고 믿으며 이것을‘칭의’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순간적인 경험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의 자격이라 믿는다.

▷성화 - 의롭다함을 받은 영혼은 거룩한 생애, 곧 율법에 대한 순종의 의무를 갖게 되며 천국에서 살기 위한 적합성을 키우기 위한 준비라고 믿는다. 율법에 대한 순종의 동기는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자발적인 순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온전함 - 성화는 일평생의 경험이며 율법을 순종하는 생애 가운데 실수할 수 있으며 이러한 죄들은 회개와 자복으로 용서 받을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한 후에 부족한 부분은 그리스도가 채워주심으로 완전함에 이른다.

  

이와 같은 견해는 대부분의 재림신자들이 믿고 있는 전통적인 견해이며 이론적으로 건전하며 현실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화의 생애 속에 실수할 수 있는 생애가 일평생 지속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부족이 나타나고 그리스도께서 채워주셔서 완전함에 이른다는 생각은 하늘 성소진리와는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셋째 천사는 하늘 성소 중 지성소를 가리키고 있으며 그 곳에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중보하고 계신다. 이제 백성들은 모든 것이 완전한 지성소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2) 새로운 신신학적인 견해


▷칭의 -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그 공로에 의하여 믿는 죄인들은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에 이른다고 말한다. 칭의는 과거에 지은 모든 죄의 용서는 물론 미래에 지을 모든 죄들까지 포함하며 완전한 용서와 함께 완전히 의롭다는 선고이며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완전한 자격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하여 믿는 자에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합법적인 선고이므로 구원은 성화와 완전함과 같은 신자들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화 -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생애를 살고 율법을 순종해야 하지만, 그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이고 저절로 나타나는 행위이며 생애일 뿐, 이미 얻은 구원과 무관하다는 가르침이다.

▷온전함 - 성화의 생애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며 구원받은 사람들의 생애에서 나타나는 결과요 열매이다. 거듭난 영혼들도 여전히 죄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으며, 그 이유로는 율법은 우리의 행위뿐만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까지도 정죄하며 비록 죄를 짓지 않았지만, 어떤 환경에 이르러 죄를 지을 가능성까지도 정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칭의로 이루어지며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완전한 구원을 얻었으므로 공연히 구원과 무관한 성화와 완전함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새로운 신신학적 견해는 일반적으로 재림교회에서 가르치는 전통적인 견해에서 비롯된 율법주의적 개념에서 해방시켜주었고 영혼들로 하여금 재림교회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구원의 기쁨과 희열을 누리게 하였다. 그러나 영혼들에게 자유방종의 길을 열어주었고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으로 생각하는 타락한 일반 개신교회들에서 가르쳐지는 신신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재림교회가 16세기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경험을 잃어버리고 다만 복음이 이론과 형식화되어 율법주의적인 성향으로 기울어져, 교회는 라오디게아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다. 새로운 신학은 이와 같이 라오디게아 상태에 빠진 재림교회의 결함을 보충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또 다른 사단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하늘 성소진리를 외면함으로 말미암아 16세기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복음과 ‘진실로 셋째 천사의 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복음과의 차이를 식별하는데 실패하였다.

2,300주야에 정결하게 되는 하늘 성소의 진리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죄의 생애가 끝나고 완전하게 되어야 성취된다는 진리를 간과해 버렸다.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하늘 성소의 진리가 합병되지 못한 결과이다. 그 결과 재림교회의 독특한 진리들을 외면하고 무관심에 빠져 율법의 표준은 낮아지며 성도들의 경건성은 현저하게 떨어져 또 다른 라오디게아교회의 상태로 전락해 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선고가 내릴 때 거룩한 자로 주 앞에 서지 못하고 구원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3) 셋째 천사의 기별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칭의 


1888년 와그너와 존스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별이 제시되었을 때에  화잇 선지자는 이것은 참으로 ‘셋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말씀하셨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0년 4월 1일. -“여러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기별이 셋째 천사의 기별이냐고 편지로 나에게 물어 왔으며 나는 ‘그것은 참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라고 했다.”(1기별, 372)


그렇다면 16세기의 말틴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에 의하여 가르쳐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셋째 천사의 기별 속에 함축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는 분명 차이가 있어야 한다. 차이가 없다면,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이미 16세기부터 전해지기 시작하였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진실은 1844년 10월 22일 이후부터 셋째 천사의 기별이 전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 차이점이란, 하늘 성소진리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이 합병 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불법의 사람에 의하여 짓밟힌 복음은 16세기의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에 의하여 회복되기 시작하였는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기별이었다. 이 기별은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의 진리이며 칭의의 기별이었다. 그 이후 많은 종교 개혁자들이 일어나 가르친 기별은 의롭다함을 받고 칭의를 얻은 자들은 성결한 생애를 살아야 한다는 성화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복음과 하나님의 율법이 어떻게 조화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성결의 생애는 칭의를 얻은 자들에게 나타나야 하는 열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웨슬리는 율법과 복음의 완전한 조화를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 예컨대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성결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쟁투, 263)는 사실을 개혁자들은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칭의와 성화의 기별이 합병되었고 의의 기별은 더욱 밝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 성화의 진리는 바로 성소의 첫째 칸에서 비쳐오는 빛이었고 진리였다. 하늘 성소에서 비쳐오는 기별들은 구분은 될지라도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연합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칭의와 성화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가르치는 전통주의적 재림교회의 가르침과 성화를 구원의 조건에서 완전히 배제해버리는 새로운 신신학은 위험한 것이다. 1888년의 기별자들과 화잇 선지자는 칭의와 성화는 구별되는 것일지라도 분리하여 가르치지 않았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원고 21, 1891. -“칭의와 성화 간의 미세한 구별점들을 엄밀히 정의해 보려는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두 용어의 정의에다 자신들의 생각과 사색의 소산을 덧붙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영감의 말씀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하여 정의한 것보다 왜 더 자세히 정의하려 하는가? 마치 영혼의 구원이 이 문제에 대한 그대의 이해 여부에 좌우되기라도 하는 것같이 무엇 때문에 모든 세부 사항을 다 풀어내려 하는가?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선상에서 볼 수는 없는 법이다.”(화잇주석, 롬 3:24-28).


1888년 기별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소중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별을 전하셨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91. -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 그것은 보증물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하였다.”


1888년의 기별자인 와그너는 칭의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것은 성화의 개념을 구원의 조건에서 배제시킨 신신학자들의 가르침과는 다르며 칭의와 성화를 엄격하게 구별하여 가르치는 재림교회의 전통주의와도 차이가 있다. 칭의를 율법과 관련을 지었고 순종을 배재시키지 않았다.


영문시조, 1893. 5. 1. - “칭의는 율법과 관련이 있다. 칭의는 의롭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이제 우리는 로마서 2장 13절에서 어떤 자들이 의로운 자들인지를 읽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그러므로 의로운 사람은 율법을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은 의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은 단순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행하는 자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칭의보다 더 높은 상태는 없다는 것이 발견될 것이다. … 의를 보전하기 위해서 곧 항상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끊임없이 활용하고 그분께 복종해야 한다. …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이 말씀의 뜻은 우리의 생애로서 율법을 깨트리고 폐하는 대신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율법을 마음에 굳게 세운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사실인데 왜냐하면 믿음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오며 하나님의 율법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1888년 기별자인 와그너의 기별에 화잇 선지자는 동일한 기별로 지지를 보냈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91.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 이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며, 이 기별은 큰소리로 전파되고, 크나큰 성령의 부어지심이 수반될 것이다.”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9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에게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제시하는 증언을 주셨는데, 이것은 분명하고도 명백한 면에 있어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특히, 알고 있는 죄를 간과하면서 칭의를 주장하거나 완전한 마음의 복종과 굴복이 없는 믿음과 순종의 생애가 배제된 칭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언하셨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66. -“하나님께서 아무리 공의로우시며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죄인을 의롭게 하실 수 있다 할지라도 어떤 인간이든지 자신이 알고 있는 죄를 여전히 행하며 알고 있는 의무들을 등한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로 자신의 영혼을 가리울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얻기 이전에 그 심령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신다.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보유(保有)하기 위하여서는 계속적인 순종을 하여야 하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활동적이며 살아 있는 믿음을 통하여 그 영혼을 순결케 하여야 한다. …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하여는 그의 믿음이 마음의 모든 애정과 충동들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믿음 자체가 완전함에 이르게 되는 것은 오직 순종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분명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이 가르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별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새로운 기별이 아니요, 빛이 증대되고 서로 합병되어 더욱 완전한 빛으로 나타난 것이다. 16세기의 개혁자들이 가르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18세기의 개혁자들이 제창한 성화의 기별이 합병되어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별로 제시되었다. 이처럼 1888년 기별자들의 가르침에는 칭의, 곧‘의롭다하심’에 엄청난 비중을 두었으며 과거에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칭의의 개념보다는 한층 더 발전된 것이었는데, 그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인 지성소에서 비쳐오는 온전함의 진리가 칭의의 진리와 결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참으로 셋째 천사의 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라고 하신 것이다. 선지자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8년 7월 24일. -“그대가 구속의 대가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대는 예수를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대가 예수께서 그대를 위하여 갈바리의 거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느낄 때, 그분의 죽으심은 그대를 위하여 죄를 그치게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보혈의 대가로 그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대의 품성을 온전하게 할 수 있음을 믿는 지적인 사고를 가질 때, 그대는 예수를 믿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란 지적인 것만이 아니요 경험들을 포함한다.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경륜에 대하여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과 경험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고통을 받으신 것은 바로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그때에 진정한 회개와 죄를 자복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으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는 마음의 결심과 율법에 즐겨 순종하는 생애를 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능력은 자신의 생애에서 죄를 그치게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 죗된 품성이 변하여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는 지적인 사고와 믿음을 가지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1888년 와그너와 존스, 두 종을 통하여 당신에 교회에 전하신 칭의의 기별은 셋째 천사의 기별과 하늘 지성소에서 비쳐오는 빛이 합병되어 전해진 것이다. 


히 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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