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0장로는 무슨 배맛일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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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읽어주는 것이 감사해서 진직부터 답례로 고맙다는 이야기 하나 하고 싶었다.
나는 솔지기 장로학이라 할까 장로론이라 할까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글을 쓰면서 시종 하나
의 걱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자유스러운 셰계에 사는 독자의 마음을 부자연스럽게
터치하고 올가매는듯한 간섭의 말이 계속 되고 있는듯한 느낌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내용의 말이 연발해 옴
으로 그것이 무엇인가 중첩된 마음의 무거움을 안겨준다 라는 느낌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
기로 이미 마음 먹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상관하지 아니하고 곧고 충성 되게 그리고
열정과 즐거운 마음 가짐으로 그냥 자연스럽게 이 길을 추적해 나아가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누가 자신의 마음 가짐이나 장로로써의 높은 표준에 도달하도록 간섭할 사람이란 없는 것
이다. 오히려 그래서 현대인치고 허전하고 외로울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로지 내가 나 스스로를 다스리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살면서 내 자신을 수련할 필
요를 느끼는 삶, 이것이 진귀하고 보배로운 일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장로론에 대하여 피차 공부(?)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사람을 통하여
주님께로부터 직접 영으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 가짐을 가질 때이다.
죽은 호랑이에게서 그 가죽을 배끼는 자가 정작 호랑이 가죽 옷을 입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호랑이 생각이 나서 그 가죽 옷을 못입더라는 것이다. 그랬는지 아니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간 영문도 모르는 사람이 호랑이 옷을 대뜸 입고 나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리를 제공해 준다. 장로론을 연구하고 수양할수록 그 중한 직임이 더 크게 느껴저서
두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가 장로 직임을 진지하게 수행하기 좋은 때 라는 사실이다.
그 열매를 딸 때까지는 쉬어간들 어떠리 하지 말 것만 같다.
영글면 배는 떨어지는 법인 모양이다. 그러나 "다문 입에 배 안떨어진다."(No pear falls into
a shut mouth.)는 것이다. 좋은 교훈의 말씀이다. 그런데도 그 배가 맛이 있으면 남 주기 위해
배가 주렁 주렁 맺일 배나무를 심으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다. 언제 커서 그 배 맛을 보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가 보라. 금방이다.
이조 영조 때 정호는 늙어서 영의정을 그만 두고 낙향하여 과수원을 가꾸고 있었다. 도승지
를 하던 이 형좌가 정호를 모시러 고향인 충주로 내려와 보니 정호는 배나무 접을 붙이고 있
었다.
"아, 공의 연세 이미 80이온데 언제 그 열매를 잡수시려고 이 나무의 접을 붙이십니까요?" 라
고 놀란듯이 물었다. 정호는 종래 아무런 대꾸 말이 없었다.
그후 이 형좌가 충청 감사가 되어 정호를 찾아오니 정호는 음식을 대접하고나서 따로 배를 깎
아 대접했다. 이 형좌는 하도 배맛이 좋아 "어디 소산인지요!" 하고 또 놀라면서 물었다. 이때
늙은 정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게 자네가 걱정하던 접붙인 배나무 그 배일세!" 하였다는 것
이다.
오늘날 배 맛은 많이 달라젔다. 냉면 국수 맛을 더하게 한다. 배맛은 배맛인데 미래의 교회 지
도자는 무슨 맛을 더하게 할꼬!
나는 솔지기 장로학이라 할까 장로론이라 할까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글을 쓰면서 시종 하나
의 걱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자유스러운 셰계에 사는 독자의 마음을 부자연스럽게
터치하고 올가매는듯한 간섭의 말이 계속 되고 있는듯한 느낌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내용의 말이 연발해 옴
으로 그것이 무엇인가 중첩된 마음의 무거움을 안겨준다 라는 느낌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
기로 이미 마음 먹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상관하지 아니하고 곧고 충성 되게 그리고
열정과 즐거운 마음 가짐으로 그냥 자연스럽게 이 길을 추적해 나아가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누가 자신의 마음 가짐이나 장로로써의 높은 표준에 도달하도록 간섭할 사람이란 없는 것
이다. 오히려 그래서 현대인치고 허전하고 외로울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로지 내가 나 스스로를 다스리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살면서 내 자신을 수련할 필
요를 느끼는 삶, 이것이 진귀하고 보배로운 일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장로론에 대하여 피차 공부(?)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사람을 통하여
주님께로부터 직접 영으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 가짐을 가질 때이다.
죽은 호랑이에게서 그 가죽을 배끼는 자가 정작 호랑이 가죽 옷을 입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호랑이 생각이 나서 그 가죽 옷을 못입더라는 것이다. 그랬는지 아니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간 영문도 모르는 사람이 호랑이 옷을 대뜸 입고 나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리를 제공해 준다. 장로론을 연구하고 수양할수록 그 중한 직임이 더 크게 느껴저서
두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가 장로 직임을 진지하게 수행하기 좋은 때 라는 사실이다.
그 열매를 딸 때까지는 쉬어간들 어떠리 하지 말 것만 같다.
영글면 배는 떨어지는 법인 모양이다. 그러나 "다문 입에 배 안떨어진다."(No pear falls into
a shut mouth.)는 것이다. 좋은 교훈의 말씀이다. 그런데도 그 배가 맛이 있으면 남 주기 위해
배가 주렁 주렁 맺일 배나무를 심으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다. 언제 커서 그 배 맛을 보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가 보라. 금방이다.
이조 영조 때 정호는 늙어서 영의정을 그만 두고 낙향하여 과수원을 가꾸고 있었다. 도승지
를 하던 이 형좌가 정호를 모시러 고향인 충주로 내려와 보니 정호는 배나무 접을 붙이고 있
었다.
"아, 공의 연세 이미 80이온데 언제 그 열매를 잡수시려고 이 나무의 접을 붙이십니까요?" 라
고 놀란듯이 물었다. 정호는 종래 아무런 대꾸 말이 없었다.
그후 이 형좌가 충청 감사가 되어 정호를 찾아오니 정호는 음식을 대접하고나서 따로 배를 깎
아 대접했다. 이 형좌는 하도 배맛이 좋아 "어디 소산인지요!" 하고 또 놀라면서 물었다. 이때
늙은 정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게 자네가 걱정하던 접붙인 배나무 그 배일세!" 하였다는 것
이다.
오늘날 배 맛은 많이 달라젔다. 냉면 국수 맛을 더하게 한다. 배맛은 배맛인데 미래의 교회 지
도자는 무슨 맛을 더하게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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