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지도자의 3적-전망(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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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자는 행복하다.
전망하는 자는 자유롭고 행복하다. 이것은 신념을 가진 자에 대한 해방이다. 딴 세계이다.
언제라도 어떤 경우라도 앞을 내다보는 마음을 가지면 너무나 지도자 생활 하기가 보람되
고 편하며 유효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가리켜 3번째 목회적인 원리 추가라고 말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확대시켜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젼이 없는 그 일이 하나님의 교회 지도자에게 왜 그리 큰 적이 되는 것일까? 무
엇 때문일까?
그 해답을 여기에서 중점적으로 찾아보고자 한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의 취임연설에서 "세계 정책에 있어서 나는 나의 국민이 선한 이
웃을 가지는 곧 착한 이웃이 되는 정책에 봉언하겠다."고 말했다.
거창한 "세계 정책" 문제에 대하여 어쩌면 딴 전 같은 "선한 이웃", "착한 이웃"이라는 말로
그 목적과 해결을 제시한다. 이것이 더 나은 세계질서에 대한 당시 루스벨트의 쉬운 비젼 이
야기이자 연설의 골짜 이야기이었다.
그는 당시의 취임연설처럼 그의 미래관에 어울리게 대통령직을 끝마쳤다. 그런데 이후 역사
가들에 의하면 "그는 미국이 지향해야 할 진로에 알맞게 최선의 길을 간 셈이었으며, 그래서
자국민의 가슴에 그는 유명한 대통령이었다 라는 생각을 남겼다." 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한 지도자의 비젼이 세상과 사람들을 달라지게 만든다는 흠모의 본보기 이야기
이다. 그런데 비젼을 가진 자는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는 어찐 일인지 모르나 그리 많지
아니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은 이 교회에서 당신의 전망을 찾는가?", "당신은
이 교회에 대한 어떤 비젼을 가졌는가?", 혹은 "당신은 이 교회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어보거나 자문 자답해 보아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불가시적인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의 영향을 힘입지 않지만 교회의 사명을
가진 자로 인해 가시적인 하나님의 교회는 가부간에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현재 사람들의 온전한 치리가 필요하지만 그것 만이 아닌 더 멀리 내다보는
시야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데 교회를 치리하는 데는 항시 전망에 관한 문제와 시간과 사람이라는 세 가지 합작요소
로 이루어지는 최선의 것,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최선의 것과 하나님의 영광의
것이란 현재 만의 만족한 것이 절대 아닌 다음의 세대에 이어지는 최선의 것으로써의 로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한 교회에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했다면, 새로운 지도자가 이입했다면, 새로운 문재와 새
로운 시간과 새로운 사람이 부여 받은 새로운 과정의 사업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에라도 그냥 안주 하거나 길들여진 길로만 가겠다 라고 가정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 하는 것이다. 혹시 이 교회는 내게 전망이 없다 라고 생각해서 교회의 전망까지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재"는 드디어 찾아왔다가 도로 달아나게 되고 "새로운 시간"은 빔서 미끄러지듯 흘
러가며 그래서 "새로운 사람"은 지켜내기 위한 것 외에는 별로 무용한 것(?)이 되는 격이 되는
것이다. 3자의 실패는 "사람"에게서 그 연고를 찾게 된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사실상 현상유지란 없다. 마땅이 전진하고 성장하였을 것에 대한 손실이
기록되어지는 것이다.
지도자가 그러할까 만은 가령 "칭찬", "인기"하는 일로 교회와 성도가 손해를 입고 비능율적인
일이 되었다면, 자신의 전망과 교회에 대한 미래의 "전망"을 가지지 못한 일은 교회가 그냥 굴
러가 보라는 형식이 성립 되는 것을 주문하는 것이어서 이것들은 교회 지도자의 큰 3적이 되
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counselor-
필자 주)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롬 11:34-35)
성경상의 기드온의 정예들은 앞을 보는 자들이었다. 아무리 성도들이 많아도 기드온의 소수의
정예는 필요하다. 교회의 지도자는 교회의 수뇌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의 기획부
(연구부)가 된다. 오늘날일수록 이런 "기획의 전문성"이 강조 된다. 선두에 서고 따라 잡기 위
해서일 망정 그들은 보다 나은...이라고 구호를 외친다. 경쟁사회의 작전타임 전략전술이다.
순수복음이 선포 되어야 할 하나님의 교회는 복음의 필연성에 의해서 그런 성질의 것이 강조
된다. 설사 결과가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항시 미래 지향적인 밝은 마음을 열어 변모해 가는
세상을 타진하고 검색하면서 교회의 적절한 노선과 최선책을 모색하고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교회의 나아갈 바 최선의 전망과 전략을 항시 계획하고 확인하면서 더 나은 추진 방도
를 새롭게 모색하고 간구해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하다.
굴러 가는 차량을 어디로든 그냥 놓아둘 것인가! 아니다. 우선 신속하게 "교회 전망"에 대한 수
뇌를 살려라! 한가한 시간은 없다!
* "교회 지도자" = 장로, 목회자
전망하는 자는 자유롭고 행복하다. 이것은 신념을 가진 자에 대한 해방이다. 딴 세계이다.
언제라도 어떤 경우라도 앞을 내다보는 마음을 가지면 너무나 지도자 생활 하기가 보람되
고 편하며 유효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가리켜 3번째 목회적인 원리 추가라고 말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확대시켜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젼이 없는 그 일이 하나님의 교회 지도자에게 왜 그리 큰 적이 되는 것일까? 무
엇 때문일까?
그 해답을 여기에서 중점적으로 찾아보고자 한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의 취임연설에서 "세계 정책에 있어서 나는 나의 국민이 선한 이
웃을 가지는 곧 착한 이웃이 되는 정책에 봉언하겠다."고 말했다.
거창한 "세계 정책" 문제에 대하여 어쩌면 딴 전 같은 "선한 이웃", "착한 이웃"이라는 말로
그 목적과 해결을 제시한다. 이것이 더 나은 세계질서에 대한 당시 루스벨트의 쉬운 비젼 이
야기이자 연설의 골짜 이야기이었다.
그는 당시의 취임연설처럼 그의 미래관에 어울리게 대통령직을 끝마쳤다. 그런데 이후 역사
가들에 의하면 "그는 미국이 지향해야 할 진로에 알맞게 최선의 길을 간 셈이었으며, 그래서
자국민의 가슴에 그는 유명한 대통령이었다 라는 생각을 남겼다." 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한 지도자의 비젼이 세상과 사람들을 달라지게 만든다는 흠모의 본보기 이야기
이다. 그런데 비젼을 가진 자는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는 어찐 일인지 모르나 그리 많지
아니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은 이 교회에서 당신의 전망을 찾는가?", "당신은
이 교회에 대한 어떤 비젼을 가졌는가?", 혹은 "당신은 이 교회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어보거나 자문 자답해 보아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불가시적인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의 영향을 힘입지 않지만 교회의 사명을
가진 자로 인해 가시적인 하나님의 교회는 가부간에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현재 사람들의 온전한 치리가 필요하지만 그것 만이 아닌 더 멀리 내다보는
시야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데 교회를 치리하는 데는 항시 전망에 관한 문제와 시간과 사람이라는 세 가지 합작요소
로 이루어지는 최선의 것,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최선의 것과 하나님의 영광의
것이란 현재 만의 만족한 것이 절대 아닌 다음의 세대에 이어지는 최선의 것으로써의 로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한 교회에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했다면, 새로운 지도자가 이입했다면, 새로운 문재와 새
로운 시간과 새로운 사람이 부여 받은 새로운 과정의 사업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에라도 그냥 안주 하거나 길들여진 길로만 가겠다 라고 가정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 하는 것이다. 혹시 이 교회는 내게 전망이 없다 라고 생각해서 교회의 전망까지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재"는 드디어 찾아왔다가 도로 달아나게 되고 "새로운 시간"은 빔서 미끄러지듯 흘
러가며 그래서 "새로운 사람"은 지켜내기 위한 것 외에는 별로 무용한 것(?)이 되는 격이 되는
것이다. 3자의 실패는 "사람"에게서 그 연고를 찾게 된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사실상 현상유지란 없다. 마땅이 전진하고 성장하였을 것에 대한 손실이
기록되어지는 것이다.
지도자가 그러할까 만은 가령 "칭찬", "인기"하는 일로 교회와 성도가 손해를 입고 비능율적인
일이 되었다면, 자신의 전망과 교회에 대한 미래의 "전망"을 가지지 못한 일은 교회가 그냥 굴
러가 보라는 형식이 성립 되는 것을 주문하는 것이어서 이것들은 교회 지도자의 큰 3적이 되
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counselor-
필자 주)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롬 11:34-35)
성경상의 기드온의 정예들은 앞을 보는 자들이었다. 아무리 성도들이 많아도 기드온의 소수의
정예는 필요하다. 교회의 지도자는 교회의 수뇌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의 기획부
(연구부)가 된다. 오늘날일수록 이런 "기획의 전문성"이 강조 된다. 선두에 서고 따라 잡기 위
해서일 망정 그들은 보다 나은...이라고 구호를 외친다. 경쟁사회의 작전타임 전략전술이다.
순수복음이 선포 되어야 할 하나님의 교회는 복음의 필연성에 의해서 그런 성질의 것이 강조
된다. 설사 결과가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항시 미래 지향적인 밝은 마음을 열어 변모해 가는
세상을 타진하고 검색하면서 교회의 적절한 노선과 최선책을 모색하고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교회의 나아갈 바 최선의 전망과 전략을 항시 계획하고 확인하면서 더 나은 추진 방도
를 새롭게 모색하고 간구해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하다.
굴러 가는 차량을 어디로든 그냥 놓아둘 것인가! 아니다. 우선 신속하게 "교회 전망"에 대한 수
뇌를 살려라! 한가한 시간은 없다!
* "교회 지도자" = 장로,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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