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아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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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의 자격 13번째는 "자기 집을 다스려" 잘 하는 자인데 여기에 "자녀들"을 언급하며
이것을 잘 하지 못하는 자는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오"라고 하였다.
참, 부담을 받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공부할 때 이런 부담이 되는 말씀에 부디
칠 때는모세가 가시덤불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는 심정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자 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의 모리아산의 제단을 생각하자고 했다. 물론 잘
하라고 하신 말씀이지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 속에 진실이 있고 사랑이 있다.
주어진 내용을 가지고 생각해보자. 장로는 집을 잘 다스리며 자녀들로 하여금 순종하
는 자녀들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장로는 교훈과 생활로 본을 보이는 자이기 때문
에 먼저 가정과 자녀 교육에 있어서 누구 보다 더 모본이 되어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사업의 성공에 관계 되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첫째로 획득해야 하는 것은
가정생활에서 승리하는 것이다."(교회증언 6권 354)
"가정의 모본이 될 수 있을 때 교회를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반면에
우리는 "최악의 경우에 최선을 드린다."는 헌신의 정신과 봉사정신으로 살아야만 어
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아니하고 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권면의 말도 함께 생
각할 수 있다.
우리는 가정 때문에, 자녀들 때문에 짐을 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위로와 용
기를 얻을 수 있다. "봉사를 위하여 주님께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는 자는 누구에게나
무한한 결과를 초래할 능력을 주시는 것"(교회증언 7권 30)이기 때문에 그럴수록 더욱
미쁘신 주님을 믿고 신뢰해야만 한다.
대개의 경험적인 이야기이지만 자녀는 가능한 대학을 들어가기까지는 부모와 함께 있
어서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지도를 할 수 있으면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세심한 신앙
지도란 잔소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어린시절에는 신앙의 마음을 앗아갈 많은
유혹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부모의 보살핌과 지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없으니 해방하는 마음이 되어 한 두번 교회를 나가지 않다 보면 그것이 교회를
등지거나 떠나게 되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부모는 미처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가 멀리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기숙사에 오는 날에는 신실하게 하는 것
처럼 할 것이기 때문에 부모는 다른 이 말 보다 자녀의 그 말을 믿고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우를 범하게 된다. 정작 이렇게 하여 잘못된 습관이 결국 생활이 되고 그런
생활습관이 부모가 원치 않는 신앙이 없는 미래의 자녀를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으니 안심한다 라는 생각은 안전치 못하다.
선생님들이 어찌 자녀의 사생활까지 뒷바라지를 하거나 책임져 줄 수 있겠는가 싶다.
그런고로 기숙사나 타향에 자녀를 두고 교육할 수 밖에 없는 경우는 방심하지 말고 세
심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녀는 부모 이상으로 회피하면서도 그럴듯하게 보이
는 일에 지혜롭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전문교육을 받게 됨으로 부득불 집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나 가능한이면 대
학까지라도 보다 덜 유명한 대학이라 할지라도 집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대학교육을
받게 하고 부모의 지도로 자녀가 교회신앙이 몸에 온전하게 베이도록 수양하는 철저한
신앙생활 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권면을 드리고 싶다.
적어도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그 어느 때부턴가 자녀의 마음이 부모를 떠나 부모
의 종전과 같은 교육에 의존하려고 하지 않게 됨으로 사실상 자녀들에 대한 부모로써의
교육은 끝난 셈이 된다는 것이다.. 교육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품 안에 있을 때
의 자녀교육을 숙고하여야 한다.
나는 자녀교육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정리하여 말하고 싶다. 자녀가 성장하여
미래의 부모로써 자기 아내와 자녀에게 착오를 이르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까지이다.
나의 이 말은 외람 되게 하는 말이기 보다는 서로의 유익한 삶을 위한 전제에서이다.
1) 가족적으로 드리는 아침 저녁 예배를 (절대로 라는 마음으로) 빠짐이 없이 신실하게
행한다.
2) 교회의 정규예배를 (절대로 라는 마음으로) 빠짐이 없이 신실하게 출석하게 한다.
3) 자녀로 하여금 교회의 일반적인 일에 참여하여 봉사하는 습관을 기르게 한다.
4) 가능한 자녀의 대학 시절까지 집에서 부모와 함께 신앙수련의 기회가 되도록 한다.
5) 대학 이후의 어느 때부터서는 부모가 하는 말은 보통 소리도 잔소리가 된다. 이때부
터서는 때에 따라서 요긴한 충고와 격려를 할 수는 있을지라도 한 편으로는 기도하는
길 외에 다른 방도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6) 이렇게 교육을 받은 자녀는 결혼을 했을 때, 부부생활을 시작했을 때 철저하게 이러
한 자기교육 시절을 몸소 가정에서 실현하고 살도록 권장한다.
7) 자녀의 결혼 초기에 이것을 자칫 소홀하게 하고 지나다 보면 소홀한 그 댓가가 가정
의 정신 페턴처럼 되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결혼 초기 3개월은 평생을 좌우하는 부부
생활터전 마련의 중요한 기회가 된다. 그래서 부모는 이런 교육까지가 부모가 마지막
자녀에게 주는 교육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8) 사랑을 계명이라 부르는 데는 진실한 의미가 있다. 사랑이 계명처럼 보이고 계명이
사랑처럼 보이는 교육, 이 사랑의 교육이 보모가 자녀에게 전수할 교육이다.
9) 부모는 부모가 자녀를 길렀던 관심 그대로 결혼하여 사는 자녀의 가정 문제를 상관
하거나 간섭하여 불행을 초래하거나 불행을 심어주지 말아야 한다.
10) 부모의 노년에는 가능한 자녀 가정에 부모가 짐이 되지 않도록 하는 주의를 갖는다.
어쩌면 흠없는 가정을 보여주려고 하기 보다는 혹시 흠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흠없이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의 진실한 삶이 되게 해 주옵소서! 아-멘.
이것을 잘 하지 못하는 자는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오"라고 하였다.
참, 부담을 받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공부할 때 이런 부담이 되는 말씀에 부디
칠 때는모세가 가시덤불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는 심정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자 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의 모리아산의 제단을 생각하자고 했다. 물론 잘
하라고 하신 말씀이지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 속에 진실이 있고 사랑이 있다.
주어진 내용을 가지고 생각해보자. 장로는 집을 잘 다스리며 자녀들로 하여금 순종하
는 자녀들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장로는 교훈과 생활로 본을 보이는 자이기 때문
에 먼저 가정과 자녀 교육에 있어서 누구 보다 더 모본이 되어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사업의 성공에 관계 되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첫째로 획득해야 하는 것은
가정생활에서 승리하는 것이다."(교회증언 6권 354)
"가정의 모본이 될 수 있을 때 교회를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반면에
우리는 "최악의 경우에 최선을 드린다."는 헌신의 정신과 봉사정신으로 살아야만 어
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아니하고 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권면의 말도 함께 생
각할 수 있다.
우리는 가정 때문에, 자녀들 때문에 짐을 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위로와 용
기를 얻을 수 있다. "봉사를 위하여 주님께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는 자는 누구에게나
무한한 결과를 초래할 능력을 주시는 것"(교회증언 7권 30)이기 때문에 그럴수록 더욱
미쁘신 주님을 믿고 신뢰해야만 한다.
대개의 경험적인 이야기이지만 자녀는 가능한 대학을 들어가기까지는 부모와 함께 있
어서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지도를 할 수 있으면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세심한 신앙
지도란 잔소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어린시절에는 신앙의 마음을 앗아갈 많은
유혹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부모의 보살핌과 지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없으니 해방하는 마음이 되어 한 두번 교회를 나가지 않다 보면 그것이 교회를
등지거나 떠나게 되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부모는 미처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가 멀리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기숙사에 오는 날에는 신실하게 하는 것
처럼 할 것이기 때문에 부모는 다른 이 말 보다 자녀의 그 말을 믿고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우를 범하게 된다. 정작 이렇게 하여 잘못된 습관이 결국 생활이 되고 그런
생활습관이 부모가 원치 않는 신앙이 없는 미래의 자녀를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으니 안심한다 라는 생각은 안전치 못하다.
선생님들이 어찌 자녀의 사생활까지 뒷바라지를 하거나 책임져 줄 수 있겠는가 싶다.
그런고로 기숙사나 타향에 자녀를 두고 교육할 수 밖에 없는 경우는 방심하지 말고 세
심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녀는 부모 이상으로 회피하면서도 그럴듯하게 보이
는 일에 지혜롭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전문교육을 받게 됨으로 부득불 집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나 가능한이면 대
학까지라도 보다 덜 유명한 대학이라 할지라도 집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대학교육을
받게 하고 부모의 지도로 자녀가 교회신앙이 몸에 온전하게 베이도록 수양하는 철저한
신앙생활 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권면을 드리고 싶다.
적어도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그 어느 때부턴가 자녀의 마음이 부모를 떠나 부모
의 종전과 같은 교육에 의존하려고 하지 않게 됨으로 사실상 자녀들에 대한 부모로써의
교육은 끝난 셈이 된다는 것이다.. 교육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품 안에 있을 때
의 자녀교육을 숙고하여야 한다.
나는 자녀교육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정리하여 말하고 싶다. 자녀가 성장하여
미래의 부모로써 자기 아내와 자녀에게 착오를 이르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까지이다.
나의 이 말은 외람 되게 하는 말이기 보다는 서로의 유익한 삶을 위한 전제에서이다.
1) 가족적으로 드리는 아침 저녁 예배를 (절대로 라는 마음으로) 빠짐이 없이 신실하게
행한다.
2) 교회의 정규예배를 (절대로 라는 마음으로) 빠짐이 없이 신실하게 출석하게 한다.
3) 자녀로 하여금 교회의 일반적인 일에 참여하여 봉사하는 습관을 기르게 한다.
4) 가능한 자녀의 대학 시절까지 집에서 부모와 함께 신앙수련의 기회가 되도록 한다.
5) 대학 이후의 어느 때부터서는 부모가 하는 말은 보통 소리도 잔소리가 된다. 이때부
터서는 때에 따라서 요긴한 충고와 격려를 할 수는 있을지라도 한 편으로는 기도하는
길 외에 다른 방도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6) 이렇게 교육을 받은 자녀는 결혼을 했을 때, 부부생활을 시작했을 때 철저하게 이러
한 자기교육 시절을 몸소 가정에서 실현하고 살도록 권장한다.
7) 자녀의 결혼 초기에 이것을 자칫 소홀하게 하고 지나다 보면 소홀한 그 댓가가 가정
의 정신 페턴처럼 되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결혼 초기 3개월은 평생을 좌우하는 부부
생활터전 마련의 중요한 기회가 된다. 그래서 부모는 이런 교육까지가 부모가 마지막
자녀에게 주는 교육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8) 사랑을 계명이라 부르는 데는 진실한 의미가 있다. 사랑이 계명처럼 보이고 계명이
사랑처럼 보이는 교육, 이 사랑의 교육이 보모가 자녀에게 전수할 교육이다.
9) 부모는 부모가 자녀를 길렀던 관심 그대로 결혼하여 사는 자녀의 가정 문제를 상관
하거나 간섭하여 불행을 초래하거나 불행을 심어주지 말아야 한다.
10) 부모의 노년에는 가능한 자녀 가정에 부모가 짐이 되지 않도록 하는 주의를 갖는다.
어쩌면 흠없는 가정을 보여주려고 하기 보다는 혹시 흠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흠없이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의 진실한 삶이 되게 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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