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돈 사랑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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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이것은 12번째 장로의 자격이다.
돈이란 하나님의 사업의 절대적인 필요이며 생활수단의 필수적인 필요이다. 벌고 쓰기에
요긴하고 더함이 없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장로가 왜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자세한 이유와
설명 없이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라고 그리도 간단하게 금했으니 자못 의아스럽다.
누구나에게 있어서 유득 돈에 대한 애착이란 그리 간단하지 않는 것인데 너무 쉽게 취
급하여 설명한 느낌마저 든다.
생각해 보자. 여기에서 "사랑"한다는 뜻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디모데전서 3:1-7절에
언급한 장로의 15 가지 내용중 이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는 문자적으로는 "돈을 사랑하
는 자가 아닌"으로 되어 있지만 디도서 1:5-9절에 나타난 똑같은 장로의 16 가지 자격에
는 돈 문제를 언급할 때 "더러운 이를 탐내지 아니하며"로 되어 있어 쉽게 알만 하다.
그런고로 여기에서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는 돈을 탐내지 말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돈을
탐내는 돈 사랑 정신이다. 그런고로 이런 돈 사랑(탐냄)정신은 교회의 지도자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경계의 말이다.
돈이란 놈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선대하지만 사람 자신 만
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필요로 하거나 과도하게 애착을 갖는 사람에게는 탐욕의
고무풍선 정신을 불어넣어 작은 욕심이 큰 탐욕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마치 "욕심이 잉
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야 1:15 )기까지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이런 정신은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돈은 사람에게 "일만 악의 뿌리가 되"(딤전 6:10)는
것이다.
그런고로 사도 바울이 돈에 대하여 이렇게 간단하게 언급한 이유는 당시에 돈의 해로운
내용을 많이 설명하여 이미 잘 이해하고 있는 터인지라 장로의 자격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여 취급을 한다고 해도 다 아는 사실이었으며 장로에게
는 유득 그러하여야 했다.
"가롯 유다와 박수 시몬의 경험은 돈을 사랑하면 교회의 사업에 위험과 상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드러내 준다."(요 12:1-6, 행 8:4-23 참조)
다윗과 같은 위인도 돈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잠
30:9)라고 말했다.
그런고로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자는 믿음을 지켜 하나님을 잘 섬기기 어렵고
하나님의 교회를 더 잘 섬길 수 없는 법이다. 장로는 모름지기 돈 보다 하나님을 더 사
랑하는 자라야만 하는 것이다.
서양에는 오래 전부터서 "돈은 악의 근원이다."(Money is the root of all evil.) 라는 말이 있
어왔다. 그런데 S 스마일즈는 "악의 근원이 되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그
애착 그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 어디 돈 자체가 나쁜 것이겠는가. 나쁜 것은 사람
의 나쁜 마음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공사간에 유의할 일이 있다. 돈에 대한 애착은 지나친 탐심을 낳기 마련이므로 돈
고삐를 단단히 붓잡아야만 낙마하지 않고 죽지 않는 다는 교훈이 있어온다. 이런 사례는
이 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사실 돈 고삐가 아니라 사람 마음의 고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의 고삐를 잘 부여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돈을 벌고 선하고 유익하
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제적인 3 가지 유형별로 돈에 대한 사람 이야기를 통해
그 교훈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탐욕정신으로 돈을 벌고 탐욕정신으로 돈을 관리하는 정신이 있다.
물론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세계를 향한 중대한 방송을 하
기 위한 목적으로 택시를 불러 세우고 지금 BBC 방송국까지 가자고 했다. 이때 의외로
기사가 말하기를 "미안하지만 다른 차를 이용해 주시지요. 저는 지금 그렇게까지 멀리
갈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고 말했다.
처칠은 돈을 벌려고 다니는 기사의 말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칠은 "어째
서 그러죠?" 라고 되물었다. 이때 기사가 하는 말 "한 시간 후면 있을 처칠 경의 방송을
들으려고 해서요!" 라고 말했다.
이때 처칠은 기분이 좋았다. 처칠은 즉시 1파운드의 돈(큰 돈)을 꺼내 기사에게 집어주
었다. 기사는 얼른 그 지폐를 훌터보더니 "아저씨, 타세요! 처칠인지 개떡인지 돈부터 벌
고 봐야지요!" 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즉시 부르릉 하고 먼 길을 떠났다.
사람이 돈 고삐를 잡은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 고삐를 잡은 것이다. 이런 삶의 결과는
어떻할까! 삶의 시세에 따라 흐르는 부평초나 다름 없을 것이다.
2) 개으른 정신으로 돈을 벌고 계획성 없는 정신으로 돈을 관리하는 정신이 있다.
물론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돈에 대하여 무관심했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제단에서 이때 당시의 거금인 일천 오백불 짜리 수표를 받았는데 그것을 은행
에 넣지 아니하고 이것을 책상 위에 한참 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그나마 책을 보는 습
관 따라 서표로 사용하였다.
한참 후 어느날 보니까 수표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책까지 누군가가 집어가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허허,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지! 그 좋은 책까지 돈을 보고 따라
가버렸으니...!"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돈 고삐를 잡지 않으면 마구 뛰다가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이런 삶
의 결과는 아내만 힘든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살기에 힘들고 비능율적인 것이 된다.
3) 삶의 목적과 열심이 있는 정신으로 돈을 벌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업과 생
활에 의미있고 복되게 사용하고 관리하는 정신이 있다.
이것이 바람직 하다. 이것이 우리의 돈에 대한 확실한 생활 개념이 되어야 한다.
요한 웨슬리는 자신을 위하여는 청빈한 생활을 했다. 그는 모처럼 자기의 책을 판 거
액의 돈을 모조리 희사했다. 그는 본디 크리스찬은 세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라고
역설했다.
(1) 벌 수 있는 대까지 벌어라!
(2) 모울 수 있는 대까지 모와라!
(3) 줄 수 있는 대까지 주어라!
그러면 결론적으로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교회의 장로는 하나님 보다 더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이렇게 세상을
사는 자는 응당 자연스럽게 번 그 돈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교회 사업을 위하여 이모 저모로 사용해지며..., 이렇게 정의할 수 있지 않
을까...!
돈이란 하나님의 사업의 절대적인 필요이며 생활수단의 필수적인 필요이다. 벌고 쓰기에
요긴하고 더함이 없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장로가 왜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자세한 이유와
설명 없이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라고 그리도 간단하게 금했으니 자못 의아스럽다.
누구나에게 있어서 유득 돈에 대한 애착이란 그리 간단하지 않는 것인데 너무 쉽게 취
급하여 설명한 느낌마저 든다.
생각해 보자. 여기에서 "사랑"한다는 뜻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디모데전서 3:1-7절에
언급한 장로의 15 가지 내용중 이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는 문자적으로는 "돈을 사랑하
는 자가 아닌"으로 되어 있지만 디도서 1:5-9절에 나타난 똑같은 장로의 16 가지 자격에
는 돈 문제를 언급할 때 "더러운 이를 탐내지 아니하며"로 되어 있어 쉽게 알만 하다.
그런고로 여기에서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는 돈을 탐내지 말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돈을
탐내는 돈 사랑 정신이다. 그런고로 이런 돈 사랑(탐냄)정신은 교회의 지도자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경계의 말이다.
돈이란 놈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선대하지만 사람 자신 만
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필요로 하거나 과도하게 애착을 갖는 사람에게는 탐욕의
고무풍선 정신을 불어넣어 작은 욕심이 큰 탐욕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마치 "욕심이 잉
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야 1:15 )기까지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이런 정신은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돈은 사람에게 "일만 악의 뿌리가 되"(딤전 6:10)는
것이다.
그런고로 사도 바울이 돈에 대하여 이렇게 간단하게 언급한 이유는 당시에 돈의 해로운
내용을 많이 설명하여 이미 잘 이해하고 있는 터인지라 장로의 자격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여 취급을 한다고 해도 다 아는 사실이었으며 장로에게
는 유득 그러하여야 했다.
"가롯 유다와 박수 시몬의 경험은 돈을 사랑하면 교회의 사업에 위험과 상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드러내 준다."(요 12:1-6, 행 8:4-23 참조)
다윗과 같은 위인도 돈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잠
30:9)라고 말했다.
그런고로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자는 믿음을 지켜 하나님을 잘 섬기기 어렵고
하나님의 교회를 더 잘 섬길 수 없는 법이다. 장로는 모름지기 돈 보다 하나님을 더 사
랑하는 자라야만 하는 것이다.
서양에는 오래 전부터서 "돈은 악의 근원이다."(Money is the root of all evil.) 라는 말이 있
어왔다. 그런데 S 스마일즈는 "악의 근원이 되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그
애착 그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 어디 돈 자체가 나쁜 것이겠는가. 나쁜 것은 사람
의 나쁜 마음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공사간에 유의할 일이 있다. 돈에 대한 애착은 지나친 탐심을 낳기 마련이므로 돈
고삐를 단단히 붓잡아야만 낙마하지 않고 죽지 않는 다는 교훈이 있어온다. 이런 사례는
이 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사실 돈 고삐가 아니라 사람 마음의 고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의 고삐를 잘 부여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돈을 벌고 선하고 유익하
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제적인 3 가지 유형별로 돈에 대한 사람 이야기를 통해
그 교훈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탐욕정신으로 돈을 벌고 탐욕정신으로 돈을 관리하는 정신이 있다.
물론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세계를 향한 중대한 방송을 하
기 위한 목적으로 택시를 불러 세우고 지금 BBC 방송국까지 가자고 했다. 이때 의외로
기사가 말하기를 "미안하지만 다른 차를 이용해 주시지요. 저는 지금 그렇게까지 멀리
갈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고 말했다.
처칠은 돈을 벌려고 다니는 기사의 말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칠은 "어째
서 그러죠?" 라고 되물었다. 이때 기사가 하는 말 "한 시간 후면 있을 처칠 경의 방송을
들으려고 해서요!" 라고 말했다.
이때 처칠은 기분이 좋았다. 처칠은 즉시 1파운드의 돈(큰 돈)을 꺼내 기사에게 집어주
었다. 기사는 얼른 그 지폐를 훌터보더니 "아저씨, 타세요! 처칠인지 개떡인지 돈부터 벌
고 봐야지요!" 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즉시 부르릉 하고 먼 길을 떠났다.
사람이 돈 고삐를 잡은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 고삐를 잡은 것이다. 이런 삶의 결과는
어떻할까! 삶의 시세에 따라 흐르는 부평초나 다름 없을 것이다.
2) 개으른 정신으로 돈을 벌고 계획성 없는 정신으로 돈을 관리하는 정신이 있다.
물론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돈에 대하여 무관심했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제단에서 이때 당시의 거금인 일천 오백불 짜리 수표를 받았는데 그것을 은행
에 넣지 아니하고 이것을 책상 위에 한참 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그나마 책을 보는 습
관 따라 서표로 사용하였다.
한참 후 어느날 보니까 수표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책까지 누군가가 집어가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허허,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지! 그 좋은 책까지 돈을 보고 따라
가버렸으니...!"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돈 고삐를 잡지 않으면 마구 뛰다가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이런 삶
의 결과는 아내만 힘든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살기에 힘들고 비능율적인 것이 된다.
3) 삶의 목적과 열심이 있는 정신으로 돈을 벌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업과 생
활에 의미있고 복되게 사용하고 관리하는 정신이 있다.
이것이 바람직 하다. 이것이 우리의 돈에 대한 확실한 생활 개념이 되어야 한다.
요한 웨슬리는 자신을 위하여는 청빈한 생활을 했다. 그는 모처럼 자기의 책을 판 거
액의 돈을 모조리 희사했다. 그는 본디 크리스찬은 세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라고
역설했다.
(1) 벌 수 있는 대까지 벌어라!
(2) 모울 수 있는 대까지 모와라!
(3) 줄 수 있는 대까지 주어라!
그러면 결론적으로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교회의 장로는 하나님 보다 더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이렇게 세상을
사는 자는 응당 자연스럽게 번 그 돈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교회 사업을 위하여 이모 저모로 사용해지며..., 이렇게 정의할 수 있지 않
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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