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0장로는 무슨 맹고맛일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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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열한 병사들을 사열하는 대대장이 갑자기 열로 들어오더니 "너는 왜 눈이 하나 크고 찢어
젔느냐?" 하고 물었다. 이때 병사는 "옛, 눈 하나 크고 찢어저도 잘만 보입니닷!" 하더라는 것
이다. 이때 대대장은 "좋군!"하면서 등을 다독이듯이 두둘기더라는 것이다. 아마 병사는 의외
로 용기를 얻었던 모양이다.
그것과는 반대 이야기가 있다. 신학교에서 3년째를 맞는 학생이 "전공 바꿔 전학한다."고 한
것은 현세의 상대가치나 실용가치는 놓히지 않고 추구하고 있을 망정 믿음과 소명에 관한 궁
극의 "절대가치"는 미처 소유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해도 옳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거의 수양한 3년 만치 수련의 신학교에서 지냈지만 마땅히 보았어야 할
절대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것은 눈이 찢어져 보이질 않는 연고였을까!
바로 다음 이야기는 중요하다. 장로에게 모든 것이 중요하고 수양이 다 잘 되었다고 할찌라
도 심중의 절대가치에 대한 "가치관 확립" 여부가 달리는 말의 고삐처럼 장로의 내적인 사람
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성경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소위 믿음으로 성공한 자는 모두 가치관이 확립된 사람들이
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시 57:7) 라고 함과 같다.
뮐러는 이런 말을 했다. " 인간은 일생 중 한 번은 자기의 무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은 무이며 자기 실체와 기원과 영원한 생명은 초자연적인 이해하지 못할 무엇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라고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신에의 복귀이며 설령 그 복귀의 길이
이 세상에서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마음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신을 향한 향
수를 남겨주는 것이다."
와, "마음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신을 향한 향수"!! 그래서 절대 가치관(확립)!!
장로를 장로관으로 보면 "건재 약국의 백복령"(쓰이는 데가 많다는 뜻)이라는 식의 쓰임새도
나무랠데 없이 좋긴 좋은 것이지만 무엇 보다 더 그 정력이 한 데 결집된 확립이 더 중요하다.
백복령의 치유제 보다는 예방제인 건강의 맹고맛이 더 좋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러 이런 삶을
고지식하다거나 뚫이지 않았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맛은 교회에서나 맛볼 수 있는 진짜
맛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에는 훨씬 더 감화력이 있는 맹고맛이 된다.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는 사람인 것이 사실이지만 가치가 있는 삶이냐 아니냐 하고 보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예수를 믿고 그 가치관을 하늘에 매는 사람 만큼 귀한 존재는 다시
없다.
장로가 한 쪽 눈이 크고 찢어지게 보일지 몰라도 "그래도 잘 보인다!"고 하는 절대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다면 재 자리에 놓인 재 금석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동양의 이야기는 감동 이상의 것이 더러 있다. 사마천이라는 역사가를 잘 알 것이다. "구우일모"
이야기는 바로 그가 고난 중에 내밷은 말이다.
한나라가 흉노를 토벌하다가 이능이 사로 잡혀갔는데 흉노는 이를 잘 대접했다. 이에 격분한
한무제는 억울하게도 무슨 오해인지 이능의 일족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자기 신변이 두려
운 신하들은 그 왕의 오해를 말하려고 하지 아니했으나 사마천이 그 진상을 솔직히고 소상하
게 고하였다.
이리하여 분노한 왕은 사마천의 성기를 자르고 투옥시켰다. 하늘이 불벼락처럼 혼난 사마천
이 정신을 차리고 하는 말 "이 세상 이런 수형 따위란 구우일모(많은 소 가운데 털 한가닥 정
도)인 것을..."했다는 것이다.
안수 받은 장로는 평생 주의 사업 위해 봉사하면서 어려워도 "구우일모인 것을...!" 하는 것은
어찜인가? 가치관이 확립된 본연의 자세 때문이다.
가치관이 확립된 본연의 자세, 절대 가치관의 맹고맛...! 주여, 장로의 삶이 부유하는 삶이 아
닌 닷과 같이 정착된 삶인 것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젔느냐?" 하고 물었다. 이때 병사는 "옛, 눈 하나 크고 찢어저도 잘만 보입니닷!" 하더라는 것
이다. 이때 대대장은 "좋군!"하면서 등을 다독이듯이 두둘기더라는 것이다. 아마 병사는 의외
로 용기를 얻었던 모양이다.
그것과는 반대 이야기가 있다. 신학교에서 3년째를 맞는 학생이 "전공 바꿔 전학한다."고 한
것은 현세의 상대가치나 실용가치는 놓히지 않고 추구하고 있을 망정 믿음과 소명에 관한 궁
극의 "절대가치"는 미처 소유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해도 옳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거의 수양한 3년 만치 수련의 신학교에서 지냈지만 마땅히 보았어야 할
절대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것은 눈이 찢어져 보이질 않는 연고였을까!
바로 다음 이야기는 중요하다. 장로에게 모든 것이 중요하고 수양이 다 잘 되었다고 할찌라
도 심중의 절대가치에 대한 "가치관 확립" 여부가 달리는 말의 고삐처럼 장로의 내적인 사람
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성경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소위 믿음으로 성공한 자는 모두 가치관이 확립된 사람들이
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시 57:7) 라고 함과 같다.
뮐러는 이런 말을 했다. " 인간은 일생 중 한 번은 자기의 무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은 무이며 자기 실체와 기원과 영원한 생명은 초자연적인 이해하지 못할 무엇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라고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신에의 복귀이며 설령 그 복귀의 길이
이 세상에서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마음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신을 향한 향
수를 남겨주는 것이다."
와, "마음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신을 향한 향수"!! 그래서 절대 가치관(확립)!!
장로를 장로관으로 보면 "건재 약국의 백복령"(쓰이는 데가 많다는 뜻)이라는 식의 쓰임새도
나무랠데 없이 좋긴 좋은 것이지만 무엇 보다 더 그 정력이 한 데 결집된 확립이 더 중요하다.
백복령의 치유제 보다는 예방제인 건강의 맹고맛이 더 좋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러 이런 삶을
고지식하다거나 뚫이지 않았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맛은 교회에서나 맛볼 수 있는 진짜
맛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에는 훨씬 더 감화력이 있는 맹고맛이 된다.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는 사람인 것이 사실이지만 가치가 있는 삶이냐 아니냐 하고 보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예수를 믿고 그 가치관을 하늘에 매는 사람 만큼 귀한 존재는 다시
없다.
장로가 한 쪽 눈이 크고 찢어지게 보일지 몰라도 "그래도 잘 보인다!"고 하는 절대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다면 재 자리에 놓인 재 금석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동양의 이야기는 감동 이상의 것이 더러 있다. 사마천이라는 역사가를 잘 알 것이다. "구우일모"
이야기는 바로 그가 고난 중에 내밷은 말이다.
한나라가 흉노를 토벌하다가 이능이 사로 잡혀갔는데 흉노는 이를 잘 대접했다. 이에 격분한
한무제는 억울하게도 무슨 오해인지 이능의 일족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자기 신변이 두려
운 신하들은 그 왕의 오해를 말하려고 하지 아니했으나 사마천이 그 진상을 솔직히고 소상하
게 고하였다.
이리하여 분노한 왕은 사마천의 성기를 자르고 투옥시켰다. 하늘이 불벼락처럼 혼난 사마천
이 정신을 차리고 하는 말 "이 세상 이런 수형 따위란 구우일모(많은 소 가운데 털 한가닥 정
도)인 것을..."했다는 것이다.
안수 받은 장로는 평생 주의 사업 위해 봉사하면서 어려워도 "구우일모인 것을...!" 하는 것은
어찜인가? 가치관이 확립된 본연의 자세 때문이다.
가치관이 확립된 본연의 자세, 절대 가치관의 맹고맛...! 주여, 장로의 삶이 부유하는 삶이 아
닌 닷과 같이 정착된 삶인 것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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