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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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명적인 존재이다. 인간이란 사명을 깨닫고 사명을 위해 살고 사명에서 보람을 느끼고 사명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가을날이면 해질 무렵 높은 천공으로는 새 세마리 혹은 몇 마리가 열을 지어 어디론가 날아간다. 기특하기 그지 없다. 어디
로 무엇 하기 위해 날아가는 것인가? 한낱 새들에게도 드높은 목적이 있고 사명이 있고 할 일 많아 하늘을 가르고 해지는
저편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나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이냐? 사람은 무엇을 위해 모슨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냐? 황금인가? 아니면 그 무엇인가?
이런 글귀가 있다.
"황금의 아프로디테가 없는 곳에 무슨 삶의 보람이 있으며 즐거움이 있으랴. 이런 것이 이미 나의 관심을 끌지 않게 되면
죽음이 오히려 나의 소원이다. 사나이를 추하게 만드는 한스러운 노년이 올 때 마음은 재화에 닳고 닳아서 태양빛에도 마
음은 즐겁지 않고 소년들에게는 실증을 주며 여인들도 그를 존중하지 않는다."
정말 그런 것인가? 그렇다. 다만 세상은 그런 것이다. 세상에 있는 그런 것은 모두 그런 것이다.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다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겐 그 의미가 전적으로 다르다. 예수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봉사"의 참 의미를
얼마나 채득하다가 집사가 되었는지는 잘 몰라도 그의 향방이나 헌신이 아주 달라졌다.
대접을 받고 영예를 누리기 위해 사는 목적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의 "봉사" 라는 대 명제 속에 사는 이들의 인생
관은 인생을 달리 본다.
봉사가 즐겁고 보람되고 영예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봉사를 위해 살고 봉사를 위해 죽는 결의가 있다. 단지 집사로 봉사하
다가 일을 끝내는 것이 아닌 소명과 사명을 지니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사는 것은 예수님이 살아가신 발자취 그대로이기 때문인 것이다.
어떻든 집사가 자기의 일을 보람되게 봉사하려면 우선 자기의 사명을 바로 깨달아야 한다. 그 사명이 집사를 훌륭하게 하
고 그 사명이 집사를 용감하게 만들고 그 사명감이 집사를 집사답게 진취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실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명감이 잇었기 때문이며 스데반 집사가 용감하게 죽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사명감 때문이며 집사 빌립이 훌륭한 전도자가 된 것은 사명감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예배와 봉사의 교제를 위한 단체이며 따라서 말씀의 선포와 진리의 가르침과 여러 가지 예
식을 위해 목사와 장로와 집사를 필요로 하는 성스러운 모임이다.
여기에서 내적인 소명과 외적인 소명을 받은 집사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잘 섬길 투철한 사명감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집사의 사명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생각하게 된다.
1) 종의 사명이다.
2) 청지기의 사명이다.
3) 충성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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