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지 말아라. 유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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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지 말아라. 그리하면 유명하게 된다..
이것은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한 끝에 하고 싶은 말입니다.
어거스틴은 354년 11월 13일에 북아프리카에서 탄생하였으며 Tagaste, Numidia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그의 생애와 사상에서 몇 군데에 눈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1) 그는 17세 때 Carthage에 유학했는데 이때 큰 타락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신앙사상, Cicero가 가르쳐준 철학사상, 이교의 Manichaeism사앙, 이 세 가지의 혼돈으로 오는 타락이었다고
보아집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다가 그냥 잘못 생각하여, 잘못 행하여 일반적으로 타락하는 그런 타락이라고 하기 보다는 범상치
않는 두뇌의 학문적인 혼란에서 온 타락이었다는 것이 퍽 이색적입니다.
2) 그는 Carthage에서 지중해를 가로질러 환락의 도시 로마로 가는 타락이었지요.
타락의 생애를 걸을지라도 그의 학자성은 결국 세기적인 학자인 Milan의 교부 Ambrose를 만나게 되지요.
386년까지 15년 동안 허송세월을 살고 타락의 생애를 살지만 그의 회심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에 눈이 머물러집니다.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랴"고 한 것처럼 그는 어떤 때는 무
화과나무 아래 잔디밭 위에서 자기를 이기지 못하는 죄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딩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그가 회개하여 침례를 받던 32세 때인 386년에 지중해를 건너 아주 고향집으로 돌아오려는 참이었는데 어머니 모
니카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고는 계속 로마에 머무릅니다.
만약 이때 북아프리카로 돌아와 버렸다면 그 유명한 어거스틴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암브르스
에게서 사사를 받으면서 로마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머로 거기에 머물러 있었음이 어거스틴을 크게 만들어줍니다.
4) 그는 감독이 되어 북아프리카 Hippo에 이른 후 430년 그가 죽을 때까지 42년간의 생애를 살펴보면 두 가지로 불후
한 생애를 삽니다.
ㄱ, 그의 신학적인 학문성은 한없이 뻗어나갔습니다.
특히 그이 명작 "On the trinity" 15권은 30년 동안 저술된 것이며 그의 유명한 참회록은 400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위대한 사업 성취"였습니다.
ㄴ, 그의 성화의 경험은 한없이 뻗어나갔습니다.
대개 학자의 약점이라면 이론에 충실하나 신앙의 체험적인 변화가 미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
거스틴에게서는 예외이며 이 두 가지가 독보적인 존재 라고 보아 틀리지 않습니다.
그는 조랑말을 타고 거리를 지나갈 때에 사람들이 그를 보려고 일손을 멈추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그를 바라보
면서 수군대는 것이었습니다. 또 심지어는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랑말을 탄 그대로 아래의 땅만 바
라보고 말없이 그냥 지나가곤 했습니다. 무슨 자랑할 것이 있냐는 생각 전에 이 죄인이라는 진실로의 생각이 사무
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진실로 변화된 생애를 살았습니다.
5) 그는 이레니우스나 암브로스 등의 교부들을 후대에 Church Father 라고 부를 때에 어거스틴은 Great Church Father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신학사상이 오늘날 불가피하게 수정되어야 할 부분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6) 아마 그가 죽을 때는 로마에 있었나 봅니다. 나라가 전세로 휘말려 있을 때 그는 천천히 시편 51편의 다윗의 회개의
시를 읊조리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회개 외에 더할 것이 있을라구요!
7) 어떻든 성경신학을 체계화시키고 변화된 삶을 산 역사에 없는 독보적인 존재 라고 부르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나
봅니다.
8) 유명하지 말아라. 그리하면 유명하게 된다는 것은 어거스틴의 삶이 무언으로 보여준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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