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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 세상에서 교회는 하기 싫은 강요로 스트레스를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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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4.05 05:42 조회수 4,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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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 세상", "하기 싫은 강요", 이것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씀이네요.

아마도 교회에 출석하는 분인가 합니다. 그러니깐 그렇게 느끼는거죠. 좋으셔야 할 터인데 다른 데

가 아닌 교회가 스트레스를 주고 받는다니 말입니다. 교회로써도 운영을 잘 해보도록 해야 하겠지

요.

 

한편 님께서 말씀하신  "강요"(enforcement)라는 말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라는 말씀이지  실제 "강

요"한다는 말이 아니겠지요. 강요 뒤에 처벌, 위협 여부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지요. 교회

가 하는 것은 "권장 혹은 권유"(encouragement)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깐 "자유한 세상"에서 "권장"도 신경 쓰여서 싫다 이렇게 표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사실 자타를 막론하고 세상이 그렇게 가르쳐 주지요.

 

하여간 "권장"은 어디까지나 자유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니 "강요"로 느껴지는 생각이 없었으면 좋겠

네요.한편 "자유한 세상"이라고 해서 내 마음 대로, 내 편할 대로 하는 것이 자유는 아니지요. 그런 자

유는 무질서한 세상이 되게 만들지요. 그런 자유는 때때로 남용에까지 이릅니다. 그러니깐 개인주의

의 세상에서 내 편할 대로 놔두지 자꾸 이렇게 저렇게 간섭하느냐는 그런 의미의 "자유한 세상" 말씀

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교회가 하는 주요한 권장을 생각해 보십시다. 이를테면 예배출석, 조석예배, 성경공부, 기도생애, 구

역예배, 더러 교회행사에 관하여 교회는  "권장", 혹은 "장려"를 하지요. 그런데 이것들이 믿는 자에

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우리와의 언약관계에 속했거나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이라도 이 소중한 것들을 성도들에게 "장려"하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로는 신앙성

숙이라는 개인을 위해서죠.

 

그런데 이것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짐이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각해보셨습니까?

예수를 미처 자신의 구주로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던지

아직 좋은 신앙생활이 습관화 되지 못한 신앙습관 탓이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유의 세상"인

교회에서 억제를 받는 것 같은 그 스트레스는 자신에게 그 탓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

제적으로 교회는 그런 곳이고 그렇게 성장하는 영적인 성향의 곳이기도 합니다. 이점을 잘 이해했으

면 좋겠습니다.

 

자유에 대하여 말씀했는데 예, 신앙은 자유입니다. 구원까지도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시조에

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실 때에도 "강요"가 아닌 "선택"이라는 자유를 전제하셨습니다. 우리가 자

유라고 할 때 기준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이 나타내 줍니다.

"마음에 원하는 길과 내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

판하실 줄 알라"(전 11:9) 하셨습니다.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좋을지 아니 좋을지는 심판 때

확실하게 나타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으로 미리 알라 하신 것이지요.

 

성경의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언약의 소중함은 사랑관계로 즐겁게 지켜지는 이 소중한 이유는 주님

을 개인의 구주로 확신할 때 얻어지는 것인데 혹시 님에게는 이것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신지 생각

해 보시지요. 개인의 구주? 말입니다. 구주의 요구가 강요가 되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사랑의 관계가

되어질터인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도망간 종을 받아들이라고 강요(?)를 합니다. 죄를 짓고 도망한 오네시모를

빌레몬 주인에게 돌아가라 강요(?)합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강요'가 아닌 "권유"입니다. 왜 그렇습

니까? 다음에 나타난 글을 보시지요.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너로 말미

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와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빌레몬 1:6-7)고 하셨습

니다.다시 말하면 사랑관계입니다.

 

허다히 부모와 자녀간에 또 부부 간에 사랑으로 하는 일이 "강요"가 아닌 것처럼 우리가 가진 신앙

과 소망은 즐거운 관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측량대를 세상 혹은 교회 어디에 꼽고 측량(해석)하느

냐의 마음 여부에 따라 다른 한 편이 강요도 되고 사랑의 권유관계도 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지

요.

 

우리 주님 예수께서 베드로의 구주에 대한 고백처럼 님의 구주이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으리라"(고 후

3:17) 하신 신앙의 참 자유를  온전히 내 것으로 삼고 온전히 그것을 누리시게 되실 수 있기를 간절

히 바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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