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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 받는 자들"이라 했으니 대리침례가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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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5.21 06:10 조회수 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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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요.

다시 말하면 성경에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 받는 자들"이라 했으니 성경상으로 대리침례

가 가능하거나 죽은 자가 대리 침례를 통하여 다시 구원이 이루어지는지요? 하는 의문 같습

니다. 혹 이렇게 하여 제 2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면 대단히 좋을 것 같은데요 하는 생각도 포함

되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이미 알고 믿는 내용과는 상반되어지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그

래서 혼란스럽고 심각한 문제가 되죠? 어서 올바른 해석을 알아야 하겠네요.

 

중요한 문제이니깐 먼저 서론적인 결론을 알아봐야 하겠네요. 그 해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

니다. 성경에는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

에 이르느니라"(벧 후 3:16)고 했지요.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엉뚱하게 잘못 되고 신앙의 길이

오도되게 되지요.

 

 

 

우선 이 성경절을 보십시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고 전 15:29)고 했네요.

지금은 성경해석의 밝은 시대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그 해석이 어려운 시대가 많았는데 이 성

경절을 36 가지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 성경절은 가장 난제의 해석 성경절이었습

니다. 바클레이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많은 사람들은 골머리를 앓았다."고 썼

습니다. 그런데 이 알송달송한 말씀을 사도 바울이 했거든요. 그가 오도된 길을 제시하지는

않았을 거거든요. 그러면 무슨 뜻일까요?

 

 바클레이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침례를 대신 받는 관습이 있었다. ...그가 죽은 뒤에 그 사람을 대신하여 다

른 사람이 침례를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대리 침례였던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그러

한 관습에 대하여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만일 부활이 없으며 죽은 자들이 다

시 살지 못한다면 그러한 관습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느냐고 물을 따름이다." 라고 했습

니다.이런 내용에 집착하여 해석한다 라고 해도 다음과 같은 설명이 요구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이 본문 성경절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디까지나 부활의 확실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이 사실입니다.

다만 죽은 자를 위한 침례의 그릇된 관습을 들어 말한다 해도 그것이 부활이 없으면 그 행위

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바울이 정색으로 말한다면 그런 이론을

옳다고 말할 리가 없지요. 왜냐하면 바울이 말한 다른 내용을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다시 말

하면 그릇된 관습의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지 지금 그것이 옳거나 진리이다 라고 말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권위있는 해석은 성서의 원어적인 해석입니다.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 받는 자들"

을 좀 더 연구해 보십시다. 여기서 "위하여"라고 우리 말로 번역된 헬라어 전치사는 "휘페르"

(hup-er)로 되어 있는데 이 뜻이 하나만이 아닙니다. "위하여, 대신하여, 때문에", 이런 뜻이 있

습니다. 만약에라도 휘페르를 "위하여"나 "대신하여"로 해석을 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

례 받는 것이 되어 대리침례까지 그 의혹을 증폭시키고 잘못 믿고 죽어도 산 사람 누구가 대

리 침례를 받아주면 죽은 자의 구원이 가능해지는 경우까지 증폭 해석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해석을 따르기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다른 성서진리와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휘페르의 다른 뜻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훼페르의  "때문에" 라는 뜻으

로 해석을 하면 "죽은 자들 때문에 침례를 받는 자들, 즉 죽은 자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이유

때문에 침례를 받는 자들이 만일 부활이 없으면 그 소망이 무엇이 되겠느냐? 헛된 것이 되지

않겠느냐? 는 것을 사도 바울이 설명코자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사도 바울이 구

태어 당시의 그릇된 관습을 인용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해석인데 외초에 번역을 잘못 해

놓아서 혼란을 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점에 대하여 바클레이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 귀절("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 받는다")은 죽은 이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가지고 침례

를 받은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설이 있다. 이것 역시 귀중한 진리이다. 우리 가운데도 많은

사람이 우리가 사랑하였으며 또는 우리가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간절히 소원하

며 기도하면서 죽은 것을 알았으며 또 기억하였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미 이 세상을 하직한 이의 보이지 않은 영향력 때문에 드리어 자기의 생애를 그리스도께

바친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고 했습니다. 

 

 

 

어떠하든지 간에 이 이야기는 대리침례가 되거나 죽은 자가 다른 산 사람의 침례로 다시 구

원을 얻을 기회를 얻는 것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셩경적인 진리라는 말입니다.

"믿는 자 마다 구원을 얻"게 되어있고 "노아, 욥, 다니엘,"이 거기 있을 지라도 자기 의로 자

기만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 곧 구원은 개인적인 것이라는 내용이 성경의 진리라는 것이지

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하고 유여한 삶,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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