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 심방의 9가지 요소: 차별 없이 고르게 대할 것(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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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제가 2-3주 동안 잠시 지상에서 뵙지 못할지 모르겠습니다. 곧 오는 대로 또 뵙겠습니다.
오늘은 "차별 없이 고르게 대할 것"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머니가 7남매에게 고르게
신경을 써주는 대도 댕굴댕굴 구르면서 나에게는 왜 형에게 해주는 것처럼 해주지 않느냐?고 외치는
자녀가 의외로 있을 때가 있지요. 사람이 사람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것 참 어려운 것이지
요.
참 쉬운 이야기이지만 사실로 차별을 하지 말아서 고르게 해 줘야 할 필요가 강조되기도 하지만 정작
차별이 없이 잘 해주는 대도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 쪽에서 다른 의견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는 상대적
인 일이어서 차별이 없이 고르게 대한다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모는 은근히 성도들의 관심이 집중 됩니다. 사모이기에 집중되기도 하지만 성도 자신의 근접된 관
계 형성을 바라는 심리가 있으며 또 순수하게 양이라는 관점에서의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소위 평등하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모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필시는 성도들을 차별 없이 고르게 대하기 위하여는 두 가지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이 목회적
인 개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 누구나의 개인적인 참된 욕구와 요구는 차별이 없는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말입니다. 거지도 말입니다. 배우지 못한 자도 말입니다. 할 일 없는 자도 말입니다. 왜냐 하
면 이것이 사람이 갖는 기본권입니다. 사람이 갈구하는 기본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이것을 가
질 권리가 있도록 생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누구나 기본권이 다 있습니다. 따라서
다스리고 돌보는 사람에게는 그 심리를 잘 알아야 할 일차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을 존중하고 이
것을 확대해석해서 심리적으로 잘 이용해야 하지요.
둘째,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혹은 요구, 곧 그 차별이 없는 사랑이 효과적인 커무니케이션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효과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많은 지도자들이 가저야 할 문제의 본질적인 요소는 그
들 자신이 지닌 개성과 자질을 잘 다루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 혹은 요구는 이렇게 다 갖지만 그 요구에 대한 태도와 표현 방
식은 갖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개성에 맞춰서 기술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발전시켜 나아
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본질적인 욕구나 요구를 차별이 없이 고르게 충족시켜 주도록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한 것은 그리스도와 그 사랑 안에 있을 때 그렇
게 되어져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럴 경우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가령 사모가 차별이 있다든지, 고르게 대하지 못한다든지, 편벽되다
든지, 이를테면 그 룰을 범하는 예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왜선지 더 가깝게 하고 싶고(친절과 사랑을
주니까) 가까이 하고 싶은 게 덜 하다( 미워지는 반응심리 때문에)는 이유에서라든지,정신적으로나
실제적인 어떤 일로 더 가까이 해지는 심리가 나 자신을 이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일단 사모가 가져야 할 성정은 분명히 아니고 누가 그러한 분도 없는 것이지만
만약에라도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정신적인 지도하에서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바라는 성도들에게
는 만족이 될 수 없겠지요. 반면에 사모가 이점에서 오해를 받으면 부질없는 일로 내심 억울한 경우
가 있는 것이기에 성도들의 넓은 이해가 항상 있기를 바라는 점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괜스레 신
경 쓰이는 이야기 갔네요. 그건 그렇고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모든 사람을 고르게 대하여야 한다는 원리는 목회상으로 적용
되어야 할 원리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새롭게 디자인되고 성능이 좋아질지라
도 굴러가는 바퀴는 둥굴어야 한다는 원리는 변할 수 없음 같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평등 사상의 사랑의 원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이야기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혼의 귀천이 없기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이유 외에 그래
야 할 다른 큰 이유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나 요구에 역점을 두고 목회를 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결
국 사모의 정신은 항상 예수 정신으로 돌아가는 정신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저는 목회를
할 때 늘 주님께로 돌아간다는 심리작용이 있었습니다. 그거 좋은 거지요? 그러시다니 좋습니다.
목회는 개개인을 구원하고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영적인 생활이 자라도록 돕
는 것 자체가 목회이니만큼 목회의 대상은 개인의 영혼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영혼을 우선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종류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인의 영혼은 평등한 것입
니다. 어떤 경우라도 사모의 마음에 이 정신이 체질화 되면 목회 사모의 아마추어 아닌 프로가 되는
것이 분명하지요!
무거운 방문 가방을 들고 먼 길을 갈 때는 조금 율동을 더하면 덜 무겁고 멀리까지 쉽게 갈 수 있습
니다. 목회의 영적인 심리에도 이같은 적용은 유용하지요. 아닌데요. 지금은 자동차로 심방간다고요.
혹시나 해서입니다. 그동안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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