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지금도 인성을 쓰셨다면 그 무소부재하심이 원활하지 않겠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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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시지요!
하나님 걱정하는 효자 아들도 있습니다. 허허허...어떻게 좀 도와드리지 않으시고요. 허허허...
.하나님의 신성문제이네요. 주님의 성육신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신비이지요. 우리가 온전하
게 생각하기에는 벅찬 문제지요. 우리가 라고 말 하기 보다는 제가 이야기할 입장이 아니지요
만.
우리가 아는 바는 지금도 예수님은 인성을 쓰시고 손에 못자국 난 모습하며 계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님이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도 인성을 쓰고 계신 모습 그 대로 오실 것이며 그리고
영원히 주님은 인성을 쓰실 것입니다. 의심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인성을 쓰고 계시면 무소부재하실 하나님의 일에 불편하여 원만하지 못할 것 같다
는 걱정 말씀이시지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네요. 그리고 효도하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걱정처럼 하나님이 안위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려. 자 생각해 보십시다.
참 사려깊습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서 신학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연구해 왔습니다.
지난 세기 말의 대 신학자(great theologian)인 벤자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 같은 분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Christ'shumanity and his deity) 문제에 대하여 많은 말을 남겼습니
다. 최근 신학자로써도 많은 분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한 분을 이야기 한다면 칼슨(Carson)
같은 분이 있지요. 칼슨은 켐브리지 대학에서 학위를 수여받은 분으로 12나라 말을 학문적
으로 능란하게 구사하는 분이시지요. 불란서어는 어렸을 때 독파했다고 하지요.
2000년 경에 한 저널리스트의 신학적인 질문을 따라 심오한 신학적인 내용들을 언급한 The
Case For Christ 라는 책에 님이 질문한 내용과 같은 질문에 칼슨이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대답한 분들의 신성문제에 관한 한 조심하고 겸허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어
떤 설명으로 신성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설명되어지지도 못하는 인간 이해의 한계 밖
에 있는, 곧 신비의 영역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은 신의 과학, 신에 대한 과학이지만 신을
훤하게 아는 학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님께서는 무소부재만 취급하는 질문을 했지만 이 책에서는 무소부재, 무소부지, 무소불능까지
를 모두 포함하여 지금 인성을 가지셨다면 그 신성이 원활하지 못하지 않겠느냐고 묻고 있습
니다. 가령 한토막 질문을 소개한다면 How in the world could Jesus be omnipresent if he
couldn''t be in two place at once?입니다.
대저 예수님께서 인성을 가지시고 계시면 무소부재에 있어서 원활하지 못하겠다는 표현 보다
는 꼭 계셔야 할 곳에 인성을 가지셨으니 어떻게 여러 곳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하는 질문이
더 절실하게 와 닿는 질문이 되겠습니다. 그렇지요?
제 좁은 소견으로는 "신인합체" 이상 더 설명할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집니다. 사실 이 문제
에 대한 뚜렸한 정복(?)은 없었으니깐요.
하나님이 인간을 쓰신 신인합체의 참 유력한 성경절은 빌 2:6-8절입니다. 거기에서도 "자기를
비어"(emptied himself)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비었다는 것입니까? 그 능력과 비여지는 신비나
과정을 해박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그 소상한 자료가 있습니까? 역시 신인합체
의 신비의 오묘는 하늘까지 이어질 조짐입니다.
주님은 신성 속에 인성이 있고 인성 속에 신성이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그리고 주
관적으로 인간 속에 오셨을 때 신성의 자취와 권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도 그러했
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비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이시기에 그렇게 스스로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물 위로 걸으셨다든지 천사를 대려다가 혼내줄 수 있지만 인간에게 신성의 행사를 미치
지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되셔서 구속사업을 성취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철저하
게 자기(신성의 역활)를 비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 후에는 달랐습니다. 인성을 쓰셨지만 신성의 행사의 자취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시공간의 장벽을 초월하셨습니다. 인성을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늘로 승천하셨고 하늘에
가셨습니다. 신성의 역사입니다.
여기에서 질문하신 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신이십니다. 신이신 그분
이 인성을 입으셨다고 해서 여러 곳에 나타나지 못할까요? 하는 되묻는 질문입니다. "스스로"
라는 말씀을 보셨지요
그 능을 몰라서 못 믿는 다고 하면 그 답은 옳은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원만하지 못하고 불
편하다면 신이 아니시지요.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해로만 이해될 수 있는 생각이고요. 그렇죠.
위의 짤막한 내용의 질문 이야기는 님에게 답변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원활하지 못하신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결함이 있으신 하나님, 혹은 부족한 신이라고 하는 말이 됩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런 암시가 없습니다. 만약에라도 신이 참신이
라면 자기 불편을 감내하면서 마지 못해서 어쩔 수 없어서 사는 신이란 없을 것입니다
저의 주님의 신성과 인성문제의 과도한 언급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가면 우리의 지혜와 이해력은 고도로 달라질 터인데 얼마나 널펴질지 궁금합
니다. 그러나 기대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도 확대경으로 볼 수 있을지 지금은 누가 잘 알겠습
니까! 기대하십시다!
변함이 없으신 주의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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