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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2.06 09:42 조회수 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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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여인에게 사랑한다는 서투른 편지를 썼다.

이건 사견의 역사 속에서는 재법 찾아보기 힘든 용감한 행위였다.

'난 코스모스를 무척 좋아하는데 무슨 꽃을 좋아하지요?' 라고 물었더니만 곧 이어 온 회신에

장미 라고 했다.

왜선지 나는 주춤해졌다. 그 꽃은 너무 지체 높고 고상해서 였을 게다.

아마도 그녀는 그런 곳에 살기에 그렇게도 장미가  좋았나 보다 싶었다.

그래도 내 마음은 코스모스에 있었다. 만약에라도 그를 외면이라도 하는 날이면 정작 코스모

스는 슬피 울음을 터틀일 것만 같은 애정 쪽이었다.

내 마음은 후미진 곳, 들길 매마른 가도에 피어나 청순한 웃음으로 누구라도 반겨주는 코스모

스 쪽이었다.  

 

 

나는 시골 작은 도시에서 나고 가까운 산야를 바라보고 살면서 흔히 많이 보는 꽃이란 코스모

스였기에 코스모스를 낯익혀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채색화의 아름다운 코스모스 꽃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품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지나치게 치장하거나 우쭐대지 않아서 좋았다. 평범함과 수수함이 그렇게 좋았다.

어쩐지 항상 변화없이 그대로의 모습이 마음 편하고 좋았다.

요사이도 코스모스를 바라보노라면 내 고향 바로 그 코스모스 정취를 느낀다. 그래서 일부러 5

불 짜리 프라스틱 파란 화병을 하나 사다가 몇 개의 코스모스를 꽂아놓고 보니 격에 맞고 무척

한가롭고 좋았다.

옛 정취, 엣 세상을 사는 비결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두메산꼴을 지나면서 동무들과 같이 이것 저것 하면서 놀던 때를 꿈꾸어 본다.

 

 

누가 코스모스를 "청초하고 아름다운 관상용 꽃"이라 정의했던가. 참 옳은 말이다.

옛날이었기에 나의 집은 자연 단순한 생활이었겠지만 집 뜰에 피어난 코스모스의 자태는 하

도 나의 모습과 비슷해서 나의 어릴적 순정을 온통 코스모스에게로만 쏟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예수님은 코스모스와 닮은꼴 같다.

하찮은 울타리 후미진 곳에 피어난 코스모스 두어 송이를 물끄럼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예수님의 일대기를 파노라마로 보는 것만 같다.

나는 코스모스는 개화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그 원산지는 멕시코 라는 정도 외엔 왜 코스

모스라고 이름지었는지 조차 그 어원을 잘 모른다. 그런대도 나는 내 고향 족보 만큼이나 코

스모스가 좋다.

어쩜, 코스모스 같은 촌스러운 나는 그 코스모스 이름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는다.

 

 

'코스모스'(cosmos)는 '조화있는 세계' 혹은 '우주 질서'를 가리키는 뜻도 된다. 이러고 보면 비

약이 아닌 진실로 굉장한 도량과 회전하는 지혜를 지닌 꽃이 되어지는 것이다.

코스모스는 원형부분을 통상화라고 하고 둘레의 꽃잎 부분을 설상화 라고 하는데 아름다운

바깥 8꽃잎이 질서있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에서 코스모스라고 했다는 것이다.

코스모스는 도량이 크고 전망과 진취를 한 몸에 갖추었기에 그렇게 박식한 학자처럼 초취하

여 보이거나 고개가 숙여지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실 코스모스 라는 말은 혼돈이나 혼란, 무질서를 의미하는 '카오스'(Chaos), 곧 헬라어 Kaos

에서 유래한 반대 용어이다.

오늘날 코스모스는 이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두메산꼴에 질서있는 꽃잎으로 즐겨 피기에 세

계질서를 붙들어잡은 우주적인 꽃이 이미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햇빛의 이상처럼 피어난

멋있는 모습이다.

이러고 보면 갑자기 한낱 촌스러운 코스모스가 우주 질서의 첨단을 꿈꾸는 미래 지향적인 탐

스러운 꽃으로 둔갑을 하는 것만 같아보인다.

그래서 나는 코스모스를 좋아한다.

코스모스, 주님은 하늘에서도 자기 같은 그  코스모스를 매만지면서 말씀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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