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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도 요한의 시대 이후의 교회 정황이 항상 궁금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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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6.06 03:43 조회수 5,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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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행복한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글을 쉬었다가 돌아오는 대로 글을 계속하겠습니다.

 

"마지막 사도 요한의 시대"라면 1세기, 그러니깐 예수님도, 사도들도 살아있던 초대교회를 지나 그 후 시

대인 2세기 쯤의 정황은 어떠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지요.

다시 말하면 성경시대 이후는 어떻게 복음사업이, 혹은 어떻게 교리 발전이 되어갔을까요 하는 것이지요.

성경을 추구하는 학도라면 당연히 귀중한 질문, 궁금한 질문이 되시겠지요. 그렇지요!

그러니깐 2-4세기까지를 생각해 볼 수 있지요. 4세기는 대 신학자 어거스틴이 활약하던 때이지요. 그러나

한계를 좀 좁혀 2세기 경의 교회의 상황은 어떻했는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다! 결국 교리발전과 전

도 문제에 포커스가 맞춰집니다.

 

 

100년 경의 사도 요한이 죽은 후 기독교는 암울한 시대를 맞았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증언이 없는

시대입니다. 당연 당시 세계화 되어가는 교회들을 감독이라는 이름으로 교리의 순수성을 지켜져야 했고

복음의 등불 같은 속사도 교부들과 후기의 교부들이 있었지만 기독교 복음을 유지해 가는데 아주 암울

했던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 바로 2세기 시대였습니다.

거기다가 외세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 상황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의 신앙 지키

기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교훈을 주는 바가 너무도 큽니다. 그래서 이 역사연구가 중요합니다.

 

 

1. 2세기는 외세의 두 가지 위기와 환난시대였습니다.

 

첫째는 세계의 폐권을 가진 로마 정부로부터의 박해와 시련의 시대였습니다.

기독교가 유대에 있었을 얼마 동안 로마 정부는 그리스도인들을 유대의 한 종파 종교로만 생각하고 그

것을 합법적인 종교로 생각했습니다. 다신교 국가인 로마는 또 하나의 종교가 다신교 안에 들어왔다는

보편적인 개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세계적인 특성을 요구하며 국교를 위협하고 대대적으로 국사를 무시하면서 또한 로

마의 우상숭배, 특히 황제숭배를 거절하는 등의 태도가 분명해지자 로마 정부는 기독교의 존재를 위협

하는 계속적인 박해를 시작하였던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이라면 강자 앞에 종교신앙의

자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웟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을 인해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헬라문화의 그노시스주의의 기독교 침투시대였습니다.

이 노스틱주의는 1세기경 사도들의 시대에도 문제거리가 되었습니다. 1세기 말 사도 요한 당시에는 이

런 예수가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닌 어떤 환상으로 왔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영지주의자들을 향해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 일 4:1-4절 참조)고 밝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스틱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문화적이고도 강세의 힘을 옷입고 기독교 교리 정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의 성도들이 얼마나 우왕 좌왕 힘들어 했을까 싶습니다. 오늘날은 만천하에 밝혀진 성

서진리를 인해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 2세기는 기독교 내부의 세 가지 유대인 성서진리의 곡해사상의 파가 일어난 시대였습니다.

 

첫째는 나사렛파(The Nazarenes)입니다.

이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유대인들인데 처음에는 마태복음만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사도 바울을 진

정한 사도로 인정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유대인들과는 달리 예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엄격하게 율법을 준수하고 실행했습니다. 제베르크는 "그들은 진정한 유대 기독교 신자들이었

다."고 말했습니다.

 

둘째는 에비온파(The Ebionites)입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을 유대교적인 입장에서 계속 반대한 진정한 바리새형의 단체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

울을 인정하지 않았고 율법의 배신자로 여겼으며 당시에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구

약의 유일신 사상을 주장하는 케린투스(cerinthian)의 그릇된 그리스도관을 가졌을 법 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피했습니다

 

셋째는 엘크싸이트(the Elkesaites)파입니다.

이들은 구원론적인 금욕주의로 특징지어졌습니다. 유대적인 기독교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했으며 고상한 영이나 천사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준수하며 안식일을 성수

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마술과 점성술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골로새서와 디모데서에서 언급한 이단

은 바로 이 파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기원 2세기 경이라면 서마나교회시대(계 2:8-11 참조)에 해당하는 시대입니다.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언해 놓은듯 합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

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상동 9)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가리켜 "몰약'이라고 하는 시대인 만큼 가히 그 시대의 신앙상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당시의 신앙지키기가 쉬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속사도의 문헌들까지 중시 되었던 것

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중요했을 것만 같습니다. 성서시대의 진리를 찾고 지키기 위한 추구 말입니다.

오늘날은 성경의 추구가 거의 완성(?)되어 있어서 우리가 열성만 내면 찾고 구할 수 있는 좋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더욱히 예언의 신 같은 내용 기별이 뒷밭침해주니 신앙을 지키기가 얼마나 행복하니까?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도 외세의 영향을 받습니다. 물질주의, 쾌락주의, 황금만능주의, 다양한 신학

혹은 주의의 난립한 사상들, 암울합니다. 그러나 세속화의 혼미한 정신이 일깨워저야만 하겠지요. 2

세기 경의 "몰약"정신을 우리 것으로 교훈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말씀 중심 신앙이어야 하겠지요! 정말 그러합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며 준비하는

삶을 사십시다. 글이 길어져서 송구합니다. 주께서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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