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4,000여년간은 '믿음의 의'로 구원 얻는 시대였다.
페이지 정보
본문
하늘에서 인류가 지상으로 나오기 전 양을 잡은 하나님님의 행위는 겉으로는 의식적으로 보이
지만 실상은 '믿음의 의'로 에덴이 다시 회복될 믿음을 심어주셨다.
그래서 인류가 지상으로 나왔을 때 하늘에 다시 갈 수 있는 유일의 희망은 표상적인 속죄양 어린
양에게 집중되었다.
이리하여 인류의 역사가 1500년을 지나 노아에 이르렀을 때까지 부조들은 자기 대에서 구속주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기대하고 소망했었다.
이들은 참으로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들이었다.
창세기 5장에 나타난 1500년간의 아담의 자손의 계보를 살펴 보면 누가 나서 몇 살에 자녀를 낳고
몇년을 더 살다가 몇세에 죽었다는 공식에 조상들의 이름만 대입한 문체처럼 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단 셋과 에녹과 노아에 대해서는 자못 인색하리만큼 간단한 독특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셋에 대하여는 '아담이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셋이라 하였고'(창 5:3) 에녹
에 대하여는 '에녹은...하나님과 동행하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대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상동 21-24) 하였고 노아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심으로 수
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상동 29)고 했다.
구속주를 바라는 이 세 조상의 독특한 신앙 덕목은 품성, 동행, 위로(소망)와 같은 것이었고 노아
의 예를 들면 이런 이를 가리켜 '노아는 의인이요'(창 6:9)라고 했고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
로움을 보았음이니라'(창 7:1) 고 했으며 노아는 의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했다.(겔 14:14 참조)
셋, 에녹, 노아가 의인이라면 이 말은 구속주를 바라는 모든 계보들이 다 의를 좇는 후손이라는 말
과 같은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당시의 불신하는 이들과 구별되었었다.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자.
구약 4,000년에서 의인 세 분을 지적하는 느낌을 에스겔서에서 찾으며 좋은 단서를 제공해 준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
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14:14)고 했다.
이들은 '의인'인데 그 '의'로 '구원'을 얻는다는 주 여호와의 말이다.
여기에 '자기 의'라는 말은 '믿음의 의'를 가리키는 것인데 다른 이의 도움으로 혹은 덤으로 구원
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구태어 '자기의 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것은 '믿음의 의'를 나
타내는 말이다.
구약 4000년사에서 그들만 '믿음의 의'로 구원을 받겠는가. 그리고 다른 이들은 다른 것으로 구원
을 받겠는가. 아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믿음의 의'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노아는 창조후 1500년에 나서 욥까지 다시 1000년이면 2500년간을 대표하고 있으며, 욥은 노아
이후 1000년에 나서 다니엘까지 다시 1000년이면 2000년간을 대표하고 있으며 다니엘은 욥 이후
1000년에 나서 예수님 탄생 때 까지 다시 500년이면 1500년간을 대표하는 '의인'들을 대표한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 '의'로 '자기 생명을 건지리라'고 했으니 곧 '구원'을 얻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이 구속주를 믿는 '의'로 구원을 얻게 된다면 구약의 다른 이들은 무엇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인가? 다시 말해서 구약시대의 구원의 잣대는 '믿음의 의'인 것이다.
이미 말했지만 셋, 에녹, 노아의 구원의 잣대는 '믿음의 의'이며 조부들의 '믿음의 의'가 또한 구원
의 잣대 라는 말이다.
신약에 나타난 구약의 믿음의 조상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히브리 11장 기록을 잘 살펴 보라.
그것이 신약시대의 믿음에도 동일하기 때문에 기록되었다.
아벨(대신 셋),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등에 믿음으로' 라고 했지 않는가.
이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다른이들은 무엇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인가. 여전히 믿음으
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의 시대 4000년간은 모두 다 같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시대이다.
성경연구자들이 얼핏 마치 구약시대는 율법의 시대이고 신약시대는 믿음의 의의 시대 라고 보
는 경향 같은 것은 올바르지 않는 것이다.
믿음의 의가 아직 십자가상에서 실현되지 아니하였음으로 해서 행함으로 의를 얻으려는 인간의
시도와 노력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베푸신 구약의 시대는 실로 믿음의 의의 시대
인 것이며 부조들은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유의해야 한다. 유대인이 기원전 약 500년 경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나라 곧 정치를 잃은 상
태에서 믿음으로 단결을 다짐하며 하나인 나라를 꿈꾸려 하였기에 자연 그들은 종교적인 것에
정치를 집착하면서 더욱 계율적인 것이 되었었다.
그래서 바라새인, 사두개인, 등 여러 가지 계율적인 종교 단체를 낳았으며 불행하게도 유대인을
대표하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었다.
그래서 그들의 자구적이고 율법적(계율적인)인 것이 구약시대 전반을 의미하지 않은 것임으로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율법적인 것은 그들의 것이며 성경적인 율법(십계명)마져 율법이라고 해서 혼돈해서도
안된다.
하나님의 십계명의 율법은 항상 의롭게 되는 일에 의로 인도하는 역활을 하며 다음에 십자가에
대한 믿음이 의를 이루는 것이어서 십계명과 구속주, 이 둘 다 기능하고 역활하는 것으로 믿음
의 의를 이루는데 중요한 것이다.
- 이전글노아시대, 그때를 이해하기 힘들다. 11.04.11
- 다음글Margaret Rowen 은 거짓 선지자인가?. 11.04.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