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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그리스도인 '안위'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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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위'라는 말은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호감이 가는 좋은 말이다.

안위 속에는 반드시 소망과 즐거움의 씨앗이 움트고 자라고 꽃을 피우며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는다.

그리스도인의 안위란 마음으로 위로 되고 몸으로 하여금 편하게 해주는 것인데 그 안위란 마치 추운 날 따뜻한

솜털 이불이나 몸의 내의와 같이 따스한 역활을 해주는 영적,정신적,육체적인 신령한 경험이다.

사람 누구나에게 있어서 이것이 중요한가? 절실하게 중요하다.

마음이라는 거실을 적절하고 알맞게 따스하게 해주는 신앙원리이다.

홀로라고 생각될 때, 힘들 때,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슬프고 고될 때, 병이 들어 아플 때, 늙어 정신력이 쇠잔

해지고 힘이 약해질 때, 여러 가지로 이르러 오는 안위는 아주 두툼하기만 한 내의나 따스하기만 한 이불과 같

은 것이 되어진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소중한 음율이며 생의 가락이다.

 

 

 

라멕은 노아의 아버지이다.

라멕이 노아라는 아들을 낳았을 때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안위하리라 하였더라'고 했다.

노아가 라멕을 위해 무엇을 위로하리라는 말이기에 아버지인 라멕이 그렇게 말했을까?

아담 때로부터 계보를 따라 장자를 낳을 때 마다 이이가 구속주가 아닌가?! 라는 기대를 걸었다.

라멕 역시 '그의 장자가 약속된 후사 곧 충성된 자들이 그의 오심을 기다린 구속주일 것이라는 희망에서 우리

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고 말하면서 그를 "쉼"(rest, comfort =노아)이라고 불렀다.'

'라멕은 그의 모범적인 할아버지 에녹과 경건하며 장수한 아버지 무두셀라의 발자취를 따른 신실한 사람이었다.

라멕은 하나님의 저주한 땅을 경작하는 부담을 분명히 느꼈음으로 현존하는 불행과 부패가 그치고 저주로부터

의 구원이 이르러 올 그 때를 믿음으로 고대하였다. '

 

 

라멕은 자기의 조상들이 바랬던 대로 자신의 아들 노아에게서 구속주의 바랬던 뜻이 성취되고 그렇게 바라던

에덴의 회복이 작금에 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자식에게 대했던 큰 위로가 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그의 위로가 얼마나 죄많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기대가 되었으며 그 기대가 얼마나 따스한 내

의나 이불처럼 따스하게  느껴졌을까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 구속주에 대한 소망과 열망 외엔 다른 여타의 위로란 큰 강의 지류에 불과한 것이다.

위로의 본류는 외초에 구전을 통해 아담에게서 이어받은 바 표상적으로 구속주이신 양에게 있는 것이었으며 당

시 인류의 모든 조상은 이것만이 오직 기대와 기다림이였고 처참한 세상에서의 심령의 위로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그러하다.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고 세 손자 셈, 함, 야벳을 보면서 이제 아들 노아가 구주는 아니지만 온 세상에 의의

기별을 전파하는 경고자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비록 세상은 멸망한다 해도 곧 이후에 속히 구속주에 대한 약

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리며 살다가 노아홍수전 약 5-6년 전에 777세로 생을 마감했다.

 라멕의 '위로'는 무엇인가? 단순히 그리고 막연하게 자식에게서 바라고 의지하고 기대하는 어떤 것이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아들 노아가 구속주이기를 바라는 기대였으며 이 기대가 무너졌을 때 노아가 지금 행하고 있는

의의 기별자로써 행하고 있는 기대에 방불한 그 사업이었다.

그런데 라멕이 가진 이런 위로는 역대의 모든 조상들이 바랐던 구속주에 대한 소망이며 열망이었다.

또한 성경에 나타난 '위로'란 성경을 관통한 기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속주의 오심에 있다.

이런 위로는 처다 봄으로 얻는다.

 

 

성경을 다시 보라. 살전 4:16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강림시 부활이 있고 승천의 장면이 전개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위로하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주의 강림이 우리의 위로가 된다 라는 말씀이다.

우리의 참다운 위로는 주의 재강림이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

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디도 2:11-13) 이제는 우리가 어떤 환경,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간

에 신앙 선조와 라멕의 안위신앙, 위로신앙으로 끝날까지 그날을 바라보며 기다려야 한다.

그 '안위'는 주님이 직접 주시는 것이기에 튼튼하고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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