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얻는 방법 알기 쉬운 초고속 도로 여기 있다! > 신학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신학

구원을 얻는 방법 알기 쉬운 초고속 도로 여기 있다!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사람들은 종종 쉬운 것을 어렵게 짚어간다. 그래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어려워진다.

18세기 이후 사람들은 이래 저래 뒤숭숭한 세상이 되어서인지 머리 씀씀이가 더욱 복잡해진다.

사람의 구원이란 하나님이 최상으로 바라시는 바인데 어렵게 가르쳐 줄 리가 있겠는가. 그렇지 않는가?

초대교회 당시에 바울은 그 구원을 얻는 방법을 아주 쉽게 가르쳐 준 사실에 유의해야만  한다.

이것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한 것이다.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

복잡해지고 보니 하는 말이지만 이것이 복음과 구원의 연결고리 골자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머리가 복잡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 의아해 했기에 이들 위주로 조금 어렵게 로마서를

기록했을 것 같은 감이 든다.

오늘날도 '믿음'이라는 말이 추상적인 말이 되어서 조금은 어렵지만 단순히 믿음이란 구세주를 마음으로

믿으면 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어보인다.

오늘날은 '믿음의 의'라고 해서 여러가지로 어렵게 이해하고 더욱 복잡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꼭 그렇게 알아야만 구원을 얻을 것인가? 하고 의아해 하며 오히려 배우면 배울수록

구원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솔직한 말을 한다.

구원의 방법은 행 16:31절이다.

자매지간으로 이해할 말씀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 고 설명한 주님의 말씀과 합일하다.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주님이 가는 길로 생각하고 유일한 진리로 생각하고 소중한 생명과 구원으로

생각하는 것을 일컬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보다 더 구원의 문제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는 없을까?

다행히 그것을 구약에서 찾는다.

 

 

구약에 비해서 신약은 구원의 이치가 더 어려워 보이는듯 하다.

구약은, 더욱 하늘에서부터 시기적으로 가까웠던 창세기는 구원의 이치를 알기 쉽게 말한다.

사람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한 양을 보고 그 표상을 통해 구세주를 믿으면 다시 에덴이 회복된다 라고 말

한다.(창 3:21)

오늘날도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 단순하게 그것을 믿으면 된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 보다 더욱 쉬운 방법을 창세기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며...'(창 5:24)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었으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구원'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의합지 아니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암 3:3) 했으니 동행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

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가 되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안다는데 부담을 갖지 말라. 얼마나 알아야 할까 하고. 아는 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행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질 정도로 알고자 하는 것이다.

구원 , 곧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인 만큼 '그러

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 라고 구원을 얻으려는 자는 응당 격려를 받는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 갔고'(창 12:4)에서 말씀을 생각하며 쫓아 간 것이 주님과의 '동행'인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되는 일이다.

구원을 얻는 방법에 대한 이 쉬운 사실이 확실한가? 그렇다. 에녹은 그래서 하늘에 가지 않았는가!

성경에서 제일 이해하기 쉬운 구원의 방법 이해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초보자도 이해하기 쉽고 단순해서 좋다.

신약에서(물론 구약에도 있지만)는  그렇게 사는 것을 '믿음의 의' 하는 것인데 주님과 단순하게 동행하

면 그 믿음의 의가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에녹은 하늘에 갔다. 그의 천국 감은 쉬운 방법 이해의

하나의 확증이다.

조금 달리 설명한다면 '동행'이란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것'이다.

닮아가는 것, 이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되기에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신'다.

 

 

어떤 이들은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했는데 성경 본문이 어디 하늘로 옮겼다고(Enoch was taken to heaven) 하지 않지 않았느냐? 하면서 의구

심을 갖는다. 'God took him away'(NIV), 'He was no more'(NIV) 한 것은 이 땅에서 에녹이 어디로 숨은 것도

아니고 죽지 않은 이상 하늘에 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한 것이 확증적으로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어려운 내용 설명은 잠시 하나의 삽입구로 쓴 것 뿐이다.

'에녹이 떠나가는 장면은 몇몇 의인들 뿐 아니라 몇몇 악인들도 목격하였다.'(부조와 선지자 88)

구원의 이해란 얼마나 쉬운 것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구원의 길이 되는데 에녹이 그 본보기가 되었

다는 이야기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예언의 신 '복음 사역자'에서 아래와 같이 발취한다.

'그는 영원한 세계의 문턱에 서있었으며 그와 축복의 땅과의 사이는 불과 한걸음 뿐이었다. 드디어 하늘

문이 열리고 지상에서 오래 동안 행해오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계속되어 마침내 그는 인간 중에서 최초

로 하늘 성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기를 원했으며 점점 그 교제가 두터워져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대려가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나온 에녹은 한층 더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였다. ...세월이 갈수록 그의

미음은 더욱 굳어지고 그의 사랑은 점점 뜨거워졌다. 기도는 그에게 있어서 영혼의 호홉이었다. 그는 언

제나 하늘 분위기 속에서 생애했다.'

'에녹은 환상이나 혹은 계시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아니고 일상생애의 그 모든 일을 행하는 가

운데 동행했던 것이다.'

이상은 에녹의 하나님과의 동행이 어떻한 것이었는가를 잘 설명한 내용이다.

오늘날의 에녹이나 다름이 없는 우리가 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더욱 첨가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제를 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다. 에녹의 품성이 거룩했던 것 처 

럼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구원 받을 사람들의 품성도 거룩하여야 한다.'

결론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은 우리의 품성의 변화이다.

이리하면 저가 기뻐하시는데 저가 기뻐하신다는 뜻은 '향기로운 냄새'를 흠향하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그래서 에녹을 한걸음 하늘로 끌어당기시듯 마지막 날 우리를 하늘로 이끌어 올리실 것이다.

댓글목록

profile_image

고송자님의 댓글

no_profile 고송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참 단순한데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어떤 이해를 잘 하기를 원합니다.

믿음과 구원의 문제는 언제나 어려워 합니다.

오늘 목사님의 이 단순한 원리에 힘을 실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