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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7:20.

太公이 曰 見善如渴하고 聞惡如聾하라 又曰 善事란 須貪하고 惡事란 莫樂하라.

태공이 왈 견선여갈하고 문악여롱하라 우왈 선사란 수탐하고 악사란 막락하라.

태공이 말하기를,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 본 듯이 주저하지 말며, 악한 것을 듣거든 귀머거리 같이 하라 또  착한 일이란 모름지기 탐내야 하며, 악한 일이란 즐겨하지 말라. 고 하셨다.


어느 숲 속에 살던 소와 사자가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죽도록 사랑을 하게 되어, 그들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며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자고 두 손을 걸어 다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맞벌이 부부인지라, 식사 준비는 교대로 하자고 합의했습니다. 소가 당번이 되자, 아주 맛있는 무공해 풀들만을 엄선하여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서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풀로 만든 음식이 싫었지만 참고 먹었습니다. 사자가 식사 당번이 되었습니다. 사자는 기름기가 적고 맛있는 살코기만으로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서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는 육식이 싫었지만 사자의 정성을 생각하고 억지로 먹었습니다. 그러나,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말하기를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당신은 나에게 너무 무성의하다”

고 주장했습니다. 숲 속 마을에서 아주 떠들썩하게 연애하고 결혼한 그들인지라, 이혼만은 피해볼 생각으로 대화를 계속 시작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가정법원에 가서 합의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가정법원 앞에서 마지막 작별의 키스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끝날 줄이야!”

하고 허탈해 했습니다. 그들은 그 최선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끝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갈 길을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최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손에게도 좀더 많은 유산을 물려주려는 생각에서 주야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사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를 지으신 조물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 자신의 기쁨이나 행복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콩이나 팥을 심고 소나 돼지를 기르는 것은, 그들 콩과 팥, 소나 돼지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재배하거나 기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지으신 것은, 당신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그 반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께 올바로 쓰임 받기를 원하기보다는, 그 반대로 하나님을 이용만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불충을 행하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까?

그런고로, 사람들이 행복한 인생을 기대하면서 애를 쓰지만, 그 결과는 최선(最善)이 아니라 최악(最惡)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화에서, 소나 사자가 서로 최선을 다했지만, 실상은 상대방에게 최악을 행했던 것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최악이 되는 일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행자는 그 지은 죄로 말미암아 불행을 겪게 되고, 끝내는 멸망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5장에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을 조성하셨다고 했습니다. 아주 기름진 땅에다가 돌덩이들을 골라낸 후에 가장 좋은 포도나무 품종을 골라서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보통 농부들이 다 그러하듯이 좋은 포도가 많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정성껏 포도원을 가꾸셨습니다. 그래서, 망대도 짓고 술 틀도 마련한 다음, 포도 따는 철을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좋은 포도는 열리지 않고 시디신 들포도만이 잔뜩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포도원 울타리를 헐어내고 나무들은 찍어내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장 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좋은 포도'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공평과 정의'라고 하는 열매를 거두고자, 그들에게 온갖 정성과 마음을 다 기울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아닌 '잔학하고 울부짖음'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새번역성경 5장 7절 말씀에 '주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었다. 주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평(미쉬파트)과 잔학(미쉬파흐)의 원어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정의(체다카)와 울부짖음(체아카)의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발음은 비슷한데, 그 뜻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요컨대, 겉보기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 속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이 추구해야 할 진실과 정의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들포도'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실망시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성껏 베푸신 그 은혜와 사랑에 배반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믿음 없이 무조건 열심을 사는 것도 문제지만, 믿음은 있으나 행함이 없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은 올바른 믿음을 바탕 삼아 용기 있게 실천함으로써, 성경에 기록되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見善如渴(견선여갈)이란 3'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에 물을 본 듯이 주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옳다고 여겨지거든 주저하지 말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생기면, 조금도 주저치 말고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고난도 이겨내고 적들도 물리쳤습니다. 히11:35 말씀에서, 기자는 말하기를 '어떤 여자들은 믿음이 있었으므로,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면, 우리 인생이 거듭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실천하는 믿음'을 가지려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일 어떻게 되든지 무슨 상관이랴, 오늘 당장 편안하게 살면 최고지!'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올바른 믿음을 지켜 살기가 어렵습니다. 히브리서 말씀대로, 예수께서 십자가 뒤에 올 기쁨을 아시고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믿음을 신실하게 지켜 살았을 때에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라야, 오늘 진실한 마음으로 정의를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聞惡如聾(문악여농)하라 악한 말을 듣거든 귀머거리처럼 하라.�� 또 말하였습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귀머거리처럼 지내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은 어렸을 때 실수로 말미암아 어른에게 뺨을 맞았는데 그 후로 에디슨은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중에 그것을 도리어 감사하기를 내가 귀머거리가 됨으로 감사한 것은 연구에 몰두할 때에 잡음이 들리지 않아서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세상에 대해서 귀머거리가 될 때 영원한 소망에 더욱 관심을 갖게될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눅12:56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 살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거기에다가, 인생을 마치게 되었을 때, 쭉정이나 들포도가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 받을 만한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남다르게 땀흘리는 수고와 인내하는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따라 정의롭게 살면서 믿음의 경주를 열심히 해야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몸부림쳐야합니다. 아니, 자기 스스로 생각할 때에,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믿음의 나무'를 잘 돌보고 열심히 가꿔야 합니다.

좋은 열매가 많이 맺히기를 기도하면서 가지도 치고 약도 뿌려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의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사탄이라고 하는 병충해가 좋은 열매가 맺히도록 가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환난과 시련이라는 바람도 불게 마련입니다. 도둑이 침입할 염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결실을 많이 맺히게 된다면, 그 보람과 기쁨도 아주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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