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인성에 있어서 예수님은 사람처럼 정감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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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이란 정서적인 애정 감각(affection), 혹은 애착(tenderness)을 말한다. 예수님이 이런 정감이 있었을까?
예수님이 우셨다고 했다. 미래의 사람이 처할 상태를 내다보면서 그 참상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고 애정
과 애착으로 나타난 것이 그의 눈물이다. 우리가 그냥 스처 지나가서 그러하지 예수의 4복음을 연구할 때
그 속에는 우리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깃들여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아마도 다 말할 수 없는 측량할
수 없는 애정과 애착일 것이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요한 복은 14장 1-3절에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
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
도 있게 하리라'고 했다.
예수님은 예수님 당시의 생활상을 잘 알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가난하게 살았다. 유목민족인 유대인들을
애급인들은 '가증이 여겼다.'(창 46:43) 이 유대인 유목민족들은 늘 자리를 옮겨 살았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
다. 그래서 그들은 안정한 생활을 그렇게도 희구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내갭사막 같은 곳만 해도 10만 이상이나 되는 유목민들이 산다. 목 마름을 잘 참아내는
귀가 작은 양들을 치는 사람들은 매마른 광야를 자주 옮겨다녀야 해도 귀가 큰 양들은 목마름을 잘 참아내
지 못하기에 가능한 물이 많은 곳에 정주하는 편이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귀가 큰 양들을 치면서 거의 한 곳
에 정주하는 목자들을 부러워한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렇게 방불한 목자들의 심리를 잘 이해했을 것이로
사료된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첫 마디에 '근심'하지 말아라, 나를 믿어두라, 가서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하
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할 것이니 말이다!'라고 했다. 있을 곳은 살 곳,
영주하는 곳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심지어 호화스러운 더 좋은 집, 영주할 집을 상기하고 말씀했을 것이
다. 이래서 예수님의 사상에는 애절하고도 애정이 깃든 말씀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재림의 허락' 말씀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것을 넘어 영구히 있을 호화스런 저택을 목적하
신 말씀선언인 것이다.
성령께서도 정감이 있을까? 물론이다. 우리가 빌 바를 모를 때, 어쩌면 눈물을 흘리면서 구할 때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느니라'(롬 8:26)하시지 않았는가. 말할 수 없는 탄식'은 정서적이
고도 애정적인 탄식으로 보지 않는 것이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지금 하늘에 계신 주님은 지금 하늘에서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히 4:15)라 함을 살
필 때 그는 연민의 정을 가지고 애타게 우리를 위해 간구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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