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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 그 누가 헤아릴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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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왜 그렇게 백팔번뇌를 없애는 108번 절을 그렇게 하게하고,

자아를 완전히 비우도록 훈련을 시키는지 이해가 되는데...


여기 예언의 신 "실물교훈: 씨 뿌리는 자와 씨"  &  "탕자" 에 나오는

큰 아들의 성격 (대부분 교회에서 열심히(?) 하나님 사업한다고 뛰는(?)분들에게서 쉽게 볼수 있는 사람들의 성격들) 에서

보석과 같이 귀중하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발견하고 여기 소개합니다.



마음밭의 준비

56 그리스도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그 뿌린 결과가 토지의 여하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모든 경우에 씨 뿌리는 자와 씨는 다 동일하다. 그렇게 하심으로 주님께서는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과 생활 속에서 기대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이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 결과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일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에 속한 청중들일지라도 그러한 상태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성령은 늘 사람을 세상 사물에 몰입시키는 마력을 깨뜨리시고 그들로 썩지 아니할 보화를 찾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고자 노력하신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주의하고 등한히 하게 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한 결과이다. 좋은 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마음이 완고해지고 그것의 성장을 저해하는 악이 자라게 된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마음 밭은 잘 갈려져야 한다. 흙은 죄에 대한 깊은 회개를 통해 잘게 부서져야 한다. 유해한 사단의 잡초는 뽑아 버려야 한다. 가시떨기에 덮였던 밭은 부지런한 노력에 의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선천적으로 악한 성질도 예수의 이름과 힘을 의지하며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렘 4:3)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호 10:12).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이 일을 이루고 싶어 하시며, 우리에게 그와 협력하기를 요청하신다.


57 씨를 뿌리는 자들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말씀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설교를 너무 많이 하고 진정으로 마음과 마음을 통하는 일은 너무 적게 하고 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동정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가까이 접촉해서 영생에 관한 중대한 문제에 그들의 관심을 일깨워 주도록 힘써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밟혀 굳어진 한 길처럼 단단하여 겉보기에는 그들에게 구주를 소개하는 일이 전혀 허사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론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변론으로 설복시킬 수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개인적 봉사를 통해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돌 같은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진리의 씨가 뿌리를 내리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씨를 뿌리는 자들도 그 씨가 가시덤불에 기운이 막히지 않게 하고 흙이 얕아 말라 죽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다.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에 신앙의 기초가 되는 원칙을 잘 배워야 한다. 58 그들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가 그들의 생애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들의 품성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들에게는 져야 할 짐이 있고 고쳐야 할 타고난 나쁜 본성이 있다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좋은 군사로서 자기를 부정하고 어려움을 참으며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을 위해 일하는 것이 큰 축복임을 배워야 한다. 그들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하고 그분께 그들의 모든 염려를 맡기도록 가르치라. 그들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기쁨을 맛보게 하라, 그렇게 하면 그들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과 관심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세속적인 쾌락이 그 매력을 잃게 되고 우리를 낙심케 하는 온갖 짐들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진리의 보습이 자기의 일을 하게 되어 묵은 땅을 갈아엎을 것이다. 땅위에 나와 있는 가시덤불을 자를 뿐 아니라 뿌리까지도 뽑아 버릴 것이다.


영문:   Preparation of the Soil

     Throughout the parable of the sower, Christ represents the different results of the sowing as depending upon the soil. In every case the sower and the seed are the same. Thus He teaches that if the word of God fails of accomplishing its work in our hearts and lives, the reason is to be found in ourselves. But the result is not beyond our control. True, we cannot change ourselves; but the power of choice is ours, and it rests with us to determine what we will become. The wayside, the stony-ground, the thorny-ground hearers need not remain such. The Spirit of God is ever seeking to break the spell of infatuation that holds men absorbed in worldly things, and to awaken a desire for the imperishable treasure. It is by resisting the Spirit that men become inattentive to or neglectful of God뭩 word. They are themselves responsible for the hardness of heart that prevents the good seed from taking root, and for the evil growths that check its development. {CSA 23.4}


     The garden of the heart must be cultivated. The soil must be broken up by deep repentance for sin. Poisonous, Satanic plants must be uprooted. The soil once overgrown by thorns can be reclaimed only by diligent labor. So the evil tendencies of the natural heart can be overcome only by earnest effort in the name and strength of Jesus. The Lord bids us by His prophet, 밄reak up your fallow ground, and sow not among thorns.뵑Sow to yourselves in righteousness; reap in
24
mercy.?Jeremiah 4:3; Hosea 10:12. This work He desires to accomplish for us, and He asks us to co-operate with Him. {CSA 23.5}
The sowers of the seed have a work to do in preparing hearts to receive the gospel. In the ministry of the word there is too much sermonizing, and too little of real heart-to-heart work. There is need of personal labor for the souls of the lost. In Christlike sympathy we should come close to men individually, and seek to awaken their interest in the great things of eternal life. Their hearts may be as hard as the beaten highway, and apparently it may be a useless effort to present the Saviour to them; but while logic may fail to move, and argument be powerless to convince, the love of Christ, revealed in personal ministry, may soften the stony heart, so that the seed of truth can take root. {CSA 24.1}


     So the sowers have something to do that the seed may not be choked with thorns or perish because of shallowness of soil. At the very outset of the Christian life every believer should be taught its foundation principles. He should be taught that he is not merely to be saved by Christ뭩 sacrifice, but that he is to make the life of Christ his life and the character of Christ his character. Let all be taught that they are to bear burdens and to deny natural inclination. Let them learn the blessedness of working for Christ, following Him in self-denial, and enduring hardness as good soldiers. Let them learn to trust His love and to cast on Him their cares. Let them taste the joy of winning souls for Him. In their love and interest for the lost, they will lose sight of self. The pleasures of the world will lose their power to attract and its burdens to dishearten. The plowshare of truth will do its work. It will break up the fallow ground. It will not merely cut off the tops of the thorns, but will take them out by the roots. 42 {CSA 24.2}


     But the teacher of sacred truth can impart only that which he himself knows by experience. 밫he sower sowed his seed.?Christ taught the truth because He was the truth. His own thought, His character, His life-experience, were embodied in His teaching. So with His servants: those who would teach the word are to make it their own by a personal experience. 43 {CSA 24.3}


     The sower is not always to meet with disappointment. Of the seed that fell into good ground the Saviour said, This 밿s he that heareth the word, and understandeth it; which also beareth fruit, and bringeth forth, some an hundredfold, some sixty, some thirty.뵑That on the good ground are they, which, in an honest and good heart, having heard the word, keep it, and bring forth fruit with patience.?CSA 24.4}


     The 밾onest and good heart?of which the parable speaks, is not a heart without sin; for the gospel is to be preached to the lost. Christ said, 밒 came not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Mark 2:17. He has an honest heart who yields to the conviction of the Holy Spirit. He confesses his guilt, and feels his need of the mercy and love of God. He has a sincere desire to know the truth, that he may obey it. The good heart is a believing heart, one that has faith in the word of Go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receive the word. 밐e that cometh to God must believe that He is, and that He is a rewarder of them that diligently seek Him.?Hebrews 11:6. 44 {CSA 24.5}


     God bids us fill the mind with great thoughts, pure thoughts. He desires us to meditate upon His love and mercy, to study His wonderful work in the great plan of redemption. Then clearer and still clearer will be our perception of truth, higher, holier, our desire for purity of heart and clearness of thought. The soul dwelling in the pure atmosphere of holy thought will be transformed by communion with God through the study of Scriptures. 45 {CSA 24.6}


     Through conflict the spiritual life is strengthened. Trials well borne will develop steadfastness of character and precious spiritual graces. The perfect fruit of faith, meekness, and love often matures best amid storm clouds and darkness.  46 {CSA 24.7} 


....................................the end............................



또 다른 예화 소개: 실물교훈: 탕자


     구주의 비유 가운데서 지금까지는 이 기쁜 장면의 화음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 없었으나 이제 주께서는 이와는 성질이 다른 이야기를 소개하신다.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며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였다. 이 형은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자기 부친의 염려를 나누지도 아니하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처럼 잃었던 동생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지도 않았다. 기뻐하는 노래 소리는 그의 마음에 아무런 즐거움을 주지도 못했다. 그는 한 종에게 그 잔치의 까닭을 물었고 종의 대답은 그로 몹시 질투하게 만들었다. 그는 잃었던 동생을 만나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탕자를 후대하는 것이 자기를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부친이 나와서 그를 달랠 때에 그의 교만과 악의가 드러났다. 그는 자기 아버지 집에서의 자신의 생활을 보수 없이 일한 봉사의 쳇바퀴 생활로 논한 다음 그 사실을 방금 돌아온 동생에게 베풀어진 호의와 비교했다. 그는 이때까지의 그의 봉사는 아들로서가 아닌, 종으로서의 봉사였다는 것을 밝히 드러냈다. 208 자기 아버지 앞에서 일하는 것을 영구적인 기쁨으로 생각했어야 할 그가 자기 근로 생활(勤勞生活) 에서 생기는 소득(所得)만을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가 한 이 말은 단지 그의 근로에 대한 소득을 얻기 위하여 죄악적인 쾌락을 삼가왔다는 것을 나타낸다. 만일 이 동생이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 받게 된다면 자기는 맏아들로서 몹시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동생이 후대 받은 것을 시기하였다. 또 형은 만일 자기가 아버지였더라면 그 탕자를 맞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형은 그를 자기의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냉정하게 “이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친은 부드럽게 그 형에게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고 말하였다. 네 동생이 방랑 생활을 하던 이 몇 해 동안에 너는 나와 같이 사는 특권이 있지 않았느냐?”

아버지는 자녀들이 행복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그들에게 주고 있었으므로 그 아들은 자기가 받을 선물(유산)이나 부수에 대하여 문제 삼을 필요가 없었다. 209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 너는 내 사랑을 믿고 값없이 주는 선물을 받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한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얼마 동안 가족을 떠나 살았다. 그러나 그 아들이 지금 돌아오게 되어 그로 인한 기쁨이 모든 불안한 생각을 일소하여 버렸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또한 얻었”노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이때에 형은 자기의 비열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정신을 깨달았을까? 그는 자기 동생이 비록 방탕했을지라도 역시 자기의 동생이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맏형은 자기의 시기심과 완악한 마음을 회개하였을까? 이 점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 비유는 아직도 계속 중이며 그 결과를 청중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맏아들은 세리와 죄인으로 간주되던 사람들을 업신여기던 그리스도 당시의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과 각 시대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저희 자신이 그다지 큰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방자들을 저희의 입장에서 논박하셨다. 그들은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과 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특권을 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의 아들들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사실은 품꾼의 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에 근거해서 일하지 아니하고 보수를 받을 생각으로 일했다. 저희가 보기에는 하나님은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주인과 같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리와 증인들에게 당신의 은혜의 선물 곧 랍비들이 수고와 고행(苦行)을 해서 얻으려던 선물을 아낌없이 받으라고 초청하시는 것을 보고 몹시 화가 났다. 부친의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케 한 탕자의 귀가가 그들에게는 오히려 질투심을 일으킬 뿐이었다.


     비유 가운데 맏아들에 대한 부친의 권고는 바리새인에 대한 하나님의 부드러운 호소이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 그것은 보수가 아니고 선물이다. 210 그대들은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공로 없이 주시는 그것을 탕자처럼 받기만 하면 된다.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못 나타내게 할 뿐 아니라 형제들을 냉정하고 비평적인 눈으로 보게 한다. 맏아들은 이기심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의 동생의 모든 행동을 비평하고 조그마한 결점에 대해서 비난하고자 늘 엿보고 있었다. 그는 동생의 잘못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할 수 있는 대로 그것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용서하지 않는 정신을 변명하려 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이 홍수같이 밀려오는 시험에 맞서 싸우기를 시작하면 그들은 곁에서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불평하고, 비방하는 태도로 방관하고 있다.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칭하지만 실제로는 사단의 정신을 따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자들은 저희의 형제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로 인하여 저희 자신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실 수 없는 자리에 두게 된다.


     많은 사람은 끊임없이 이렇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미 6:6~8), 그러나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봉사는 이것이니 곧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사 58:6, 7)이다. 그대 자신이 오직 그대의 천부의 사랑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대는 죄 가운데서 고생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불행을 당한 자와 참회하는 자들을 질투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에서 이기심의 얼음이 녹아내리면 그대는 하나님과 같은 동정심을 가지게 되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게 될 것이다.


     211 그대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죽었다가 살았으며…잃었다가 얻”은 자가 “네 동생”이 되어야 한다. 그는 가장 밀접한 끈으로 그대에게 붙들어 매어져야 하는 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아들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대가 만일 그러한 아들과의 관계를 부인한다면 그대는 하나님의 가정에 속한 자녀가 아니고 품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비록 그대가 잃어버린 자를 환영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기쁨은 계속될 것이며 도로 찾는 자는 하늘 아버지의 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이 용서받은 자는 많이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대는 바깥 어두운데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대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영문:

"Christ's Object Lessons: Lost, And Is Found"


Thus far in the Saviour's parable there is no discordant note to jar the harmony of the scene of joy; but now Christ introduces another element. When the prodigal came home, the elder son "was in the field; and as he came and drew nigh to the house, he heard music and dancing. And he called one of the servants, and asked what these things meant. And he said unto him, Thy brother is come; and thy father hath killed the fatted calf, because he hath received him safe and sound. And he was angry, and would not go in." This elder brother has not been sharing in his father's anxiety and watching for the one that was lost. He shares not, therefore, in the father's joy at the wanderer's return. The sounds of rejoicing kindle no gladness in his heart. He inquires of a servant the reason of the festivity, and the answer excites his jealousy. He will not go in to welcome his lost brother. The favor shown the prodigal he regards as an insult to himself.  {COL 207.2} 
     When the father comes out to remonstrate with him, the pride and malignity of his nature are revealed. He dwells upon his own life in his father's house as a round of unrequited service, and then places in mean contrast the favor shown to the son just returned. He makes it plain that his own service has been that of a servant rather
                                                                           208
than a son. When he should have found an abiding joy in his father's presence, his mind has rested upon the profit to accrue from his circumspect life. His words show that it is for this he has foregone the pleasures of sin. Now if this brother is to share in the father's gifts, the elder son counts that he himself has been wronged. He grudges his brother the favor shown him. He plainly shows that had he been in the father's place, he would not have received the prodigal. He does not even acknowledge him as a brother, but coldly speaks of him as "thy son."  {COL 207.3} 
     Yet the father deals tenderly with him. "Son," he says, "thou art ever with me, and all that I have is thine." Through all these years of your brother's outcast life, have you not had the privilege of companionship with me?  {COL 208.1} 
     Everything that could minister to the happiness of his
                                                                           209
children was freely theirs. The son need have no question of gift or reward. "All that I have is thine." You have only to believe my love, and take the gift that is freely bestowed.  {COL 208.2} 
     One son had for a time cut himself off from the household, not discerning the father's love. But now he has returned, and the tide of joy sweeps away every disturbing thought. "This thy brother was dead, and is alive again; and was lost, and is found."  {COL 209.1} 
     Was the elder brother brought to see his own mean, ungrateful spirit? Did he come to see that though his brother had done wickedly, he was his brother still? Did the elder brother repent of his jealousy and hardheartedness? Concerning this, Christ was silent. For the parable was still enacting, and it rested with His hearers to determine what the outcome should be.  {COL 209.2} 
     By the elder son were represented the unrepenting Jews of Christ's day, and also the Pharisees in every age, who look with contempt upon those whom they regard as publicans and sinners. Because they themselves have not gone to great excesses in vice, they are filled with self-righteousness. Christ met these cavilers on their own ground. Like the elder son in the parable, they had enjoyed special privileges from God. They claimed to be sons in God's house, but they had the spirit of the hireling. They were working, not from love, but from hope of reward. In their eyes, God was an exacting taskmaster. They saw Christ inviting publicans and sinners to receive freely the gift of His grace--the gift which the rabbis hoped to secure only by toil and penance--and they were offended. The prodigal's return, which filled the Father's heart with joy, only stirred them to jealousy.  {COL 209.3} 
     In the parable the father's remonstrance with the elder son was Heaven's tender appeal to the Pharisees. "All that
                                                                           210
I have is thine"--not as wages, but as a gift. Like the prodigal, you can receive it only as the unmerited bestowal of the Father's love.  {COL 209.4} 
     Self-righteousness not only leads men to misrepresent God, but makes them coldhearted and critical toward their brethren. The elder son, in his selfishness and jealousy, stood ready to watch his brother, to criticize every action, and to accuse him for the least deficiency. He would detect every mistake, and make the most of every wrong act. Thus he would seek to justify his own unforgiving spirit. Many today are doing the same thing. While the soul is making its very first struggles against a flood of temptations, they stand by, stubborn, self-willed, complaining, accusing. They may claim to be children of God, but they are acting out the spirit of Satan. By their attitude toward their brethren, these accusers place themselves where God cannot give them the light of His countenance.  {COL 210.1} 
     Many are constantly questioning, "Wherewith shall I come before the Lord, and bow myself before the high God? Shall I come before Him with burnt-offerings, with calves of a year old? Will the Lord be pleased with thousands of rams, or with ten thousands of rivers of oil?" But "He hath showed thee,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th the Lord require of thee, but to do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thy God?" Micah 6:6-8.  {COL 210.2} 
     This is the service that God has chosen--"to loose the bands of wickedness, to undo the heavy burdens, a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hat ye break every yoke, . . . and that thou hide not thyself from thine own flesh." Isaiah 58:6, 7. When you see yourselves as sinners saved only by the love of your heavenly Father, you will have tender pity for others who are suffering in sin. You will no longer meet misery and repentance with jealousy and cen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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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the ice of selfishness is melted from your hearts, you will be in sympathy with God, and will share His joy in the saving of the lost.  {COL 210.3} 
     It is true that you claim to be a child of God; but if this claim be true, it is "thy brother" that was "dead, and is alive again; and was lost, and is found." He is bound to you by the closest ties; for God recognizes him as a son. Deny your relationship to him, and you show that you are but a hireling in the household, not a child in the family of God.  {COL 211.1} 
     Though you will not join in the greeting to the lost, the joy will go on, the restored one will have his place by the Father's side and in the Father's work. He that is forgiven much, the same loves much. But you will be in the darkness without. For "he that loveth not knoweth not God; for God is love." 1 John 4:8.  {COL 211.2}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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