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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라오디기아교회 연구(계 3:14-22) ;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알지 못하도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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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17)

 

 



1)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라오디기아교회의 심각성은 중병(죄)이 아니고 그 병을 취급하는 정신과 태도입니다. 가령 환자가 자

기 중병을 모르거나 소홀히 하거나 부인하고 거절할 때 명의나 처방의약이 필요가 없게되어집니다.

최악의 병이나 따분한 병은 자신이 병이 든 줄을 모르는 상태의 병입니다. 병은 조기에 예방하거나 발

견해야 하는데 병에 따라 자각증상 때는 이미 늦은 감이 있거나 난치병이 됩니다.  여기에 나타난 라오

디기아교회의 중병의 증상은 심각한데 '알지 못하도다'라고 했습니다.

라오디기아교회는 무엇을 모르고 있습니까? 왜 모르고 있습니까?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정신적인 부를 스스로 치부합니다. 또한 '이러한 물질적인 번영이 눈을 어둡게 하고 영혼을 기

만하고 있다.'(교증 2. 184)는 것입니다.

라오디기아교회 지방은 61년 경에 대 지진이 일어나 그 도성이 대파되었을 때도 로마제국이 제공하는

복구비를 거절할만큼 물질적인 부가 풍부했고 자고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그리스도의 필요와 도움

까지도 거절하는 영적 교만의 상태에 비교됩니다.

'거의 소망이 없거나 치유하기 곤란한 질병은 교만한 의견이나 자부심입니다. 사람이 심각하게 결함

이 있으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할 때 자기만족에 빠져서 자기의 결점을 볼 수 없는 때에 어떻게 그가

정결하여질 수 있겠는가'(교증 7. 197)하는 것입니다.

'자만과 자기 만족만큼 하나님께 거슬리고 사람의 영혼을 위험하게 하는 것은 없다. 모든 죄들 가운데

서 이것은 가장 희망이 없고 가장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실물교훈 154)고 했습니다.

 

 

 

2)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고 합니다.

곤고하고 가련하고 벌거벗었고 눈까지 먼 상태, 라오디기아의 이런 상태는 가장 처참한 상태인데 알

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기아 기별은 해부해 놓고 보면 '무서운기별이다.'(교증 1.186)라고

했습니다. 성경주석 7권 959-967 페이지에서 이. 지. 화잇은 심각한 라오디기아의 병을 잘 종목별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임, 겸손의 부족, 맥없고 생기가 없으며 감정이 없는 신앙의 경험을 가지고 있음, 절반만 마음

을 바침, 그리스도인 자아만족, 영적 자아 기만, 신령적인 사물에 있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함, 나는 안

전하다는 생각으로 만족함, 이중거래, 불평,  반역, 세속화, 자신을 제일로 나타내려 함, 자고함, 외식

함, 분쟁, 헛된 기만, 교만의 탐익, 탐심, 세속적 야망, 이상의 것들은 우리의 마음에 소름을 끼치게 하

며 날카로우며 심한 전율을 일으키게 하는 낱말들이다.'고 했습니다.

'라오디기아에 보내는 참된 증언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슬픈 기만에 처했으나 정직한 마음으

로 기만 당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여기에 언급된 자들이 높은 영적상태에 처해 있다고 스스로 아

첨하고 있는 동안 참된 증인의 기별은 그들의 진정한 영적 소경됨과 가난함과 곤고함을 맹열히 책망

함으로 그들의 안일한 상태를 깨우치고 있다.'(교증 3. 252-253)고 했습니다.

 

 

 

3) 그런데 라오디기아시대 사람들에게 무엇이 그리 큰 곤고함을 가리거나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이 곤고함을 구성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의 부족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

로써 어두운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옷을 입었

다고 아첨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기만이 있을 수 있겠는가'(리뷰 앤 헤랄드1894,8. 7.)

세속화의 세대에 민감한 사상이 영적인 순수성에 병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결국 사람이 살

고 영이 쇄잔해 가는 근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라는 진단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라오디기아교회의 기별에는 '뜨뜻 미지근함'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뜨뜻 미지근함은 실상 영적으로 죽은 상태, 영적으로 죽어가는 상태를 묘사하

기에 적절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라오디기아에 주신 이 전말의 기별은 빈사상태에서라도 살리려는 기별입니다. 아직 여지

가 있는 것입니다. 경성하기만 하면 가망이 있고 희망을 가진 라오디기아교회의 시대입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계 3:2)고 하는 기별이 적용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한주 후쯤 뵙게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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