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쓴 라오디기아교회 연구(계 3:14-22): 라오디기아의 배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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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라오디기아교회 연구에서 비교적 주석을 통해 본 오늘날의 라오디기아교회시대의 교훈을 찾
아보고 여기에서 이. 지. 화잇의 권면과 기별을 음미해 보려는데 중점을 둔다. 가능한 이 시대 이 기별을
통해 우리 개인의 기별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바래진다.
우선 아래는 라오디기아의 지리적, 역사적, 종교적 배경의 욧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지리적 배경
라오디기아는 당시 소아시아(지금 터키)의 서부 해안 가까이 7교회와 함께 위치해 있고 에게해 바다를
건너 헬라가 있다. 또 가까이에는 당시 동서양의 문화가 이어지는 씰크 로드가 있다. 흑해에서 흘러내
리는 보로포로스 혀협을 건너면 유럽이 되고 막 건넌 그곳이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블))이 있다.
당시 라오디기아는 상업 농산물 등 기타 산업의 중심지였고 상업의 중심지로써 금융과 은행업이 발달
한 지역이었고 유흥업소가 많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부에 대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의 지역
이었다고 전한다.
2) 역사적 배경
서기전 223-187년 경 라오디기아 지방에는 유대인이 7500명 정도 살았다고 한다. 기원전 90년 경에는
로마에 의해서 점령되었고 버가모의 통치를 받았었다. 그후 번영을 누리는 도시로 존재하다가 서기
60년 경의 대지진으로 도시가 대파되었으나 로마의 도움을 거절하고 라오디기아의 자력으로 복구되었
다고 전하며 1119년에 토이키에 의해 점령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토이키어로 '에스키 히스아'(Eski Hisar)라는 말로 '옛성'이라 불리는 폐허가 되고 채석장이 되었
다. 지금 라오디기아를 찾으면 역시 자연경관들이 즐비한 산들과 평원이며 라오디기아교회는 이때의
지진으로 폐허가 된 채로 주변에 아무런 인적이 없는 큰 돌들만 남아있다.
3) 종교적 배경
라오디기아 지방은 브르기아의 주신 멘카론을 주신으로 섬겼고 이들 신전과 관련하여 유명한 의학 학
교가 있었으며 안약의 분말이 유명했다.
그런데 라오디기아에 교회가 이룩된 것은 사도 바울이 에배소에서 3년 가까이 전도한 결과로 이룩되
었지만(행 19:10) 바울이 라오디기아를 방문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편지를 라오디기아에 보내라
하였고 골로새의 편지를 라오디기아에도 보내라고 하였다.(골 4:12, 15-17) 골로새서 4:17절에 나타난
아깁보는 라오디기아교회의 최초의 감독이었다.
라오디기아 종교회의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서기 364년 32명의 감독들이 모여 이때 정경의 목록작
성이 있었는데 이 목록에서 계시록을 빼버린 우끼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아마도 계시록에 기록된 칭
찬이 없는 라오디기아의 책망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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