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말의 세상에서 마귀와 마귀 역사의 식별법에 능숙하게 대처하고 경계해야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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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마귀는 사람을 속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2중 가면을 쓴 유혹자입니다.
마귀가 있고 마귀가 역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그것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마귀가 있습니까? 마귀가 역사합니까?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것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마귀의 역사와 분별은 예수님과 다른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켤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또 하나의 '그러므로'의 성경절을 살펴봅시다!
같은 책 로마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화평을 누리자'(롬 5:1)
또 하나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롬 8:6) '화평',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1)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2) '화평'을 누립니다.(롬 5:1, 롬 8:6))
그런고로 정죄와 불화 및 분열의 정체는
1) '인간의 죄성'에서 옵니다.
2) '마귀의 역사'에서 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성과 마귀의 역사는 언제나 동시에 '정죄'를 동반합니다. 이 수법의 골자는 언제나 변하지 않습니
다. 그런데 성경이 그것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성을 그들이 고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고칠 수 있
다면 일찌기 마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죄'를 분석해 봅시다!
'정죄'는 '죄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 그리고 그 죄의 처벌과 결과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정죄'의 헬라어 원어는 '카타크리마'인데 '끊는다', '잘라낸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전혀 희망이 없음을 말합니다.
싹둑 잘라버리려는 것, 불화와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주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죄는 1차적으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며, 2차적으로 사람이 마귀와 타협한 결과로 마귀의 역사에서 옵니다.
그것이 명목상 사랑이든지, 공의이든지 간에 하나님 사이를 내거나 사람 사이를 내게 하고 불화와 분열이 조성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 '카타크리마'적인 정죄의 장본들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롬 8:2)기 때문에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영감의 빛에 의해 그 정체를 어느만치 그리고 선명하게 알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정죄'를 현미경적으로 자세히 고찰해 봅시다!
'정죄'는 세가지 특성을 공격목표로 삼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경우든지, 그리고 반드시 그러합니다.
1) '죄인'이라고 '지목'합니다. - 따라서 온갖 '잘못'을 들어내고 조장하는 일을 합니다.
2) '성품'을 '흠집'냅니다.- 성품이 그래가지고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3)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 '이래가지고는 안된다거나 미래에 대한 '여망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결과는 파멸이 공격목표입니다.
이러한 현미경적인 분석과 고찰로 마귀의 나타난 역사 여부의 징후를 어느만치 추적하거나 가늠해 볼 수 있습니
다.
마귀의 역사는 사람을 매개체(해와에게 뱀을 이용하는 것처럼)로 삼거나 이용하는데 사람이 적절한 호감의 인용
물이 되지 않아야만 합니다.
만약 인용물이 되어지는 날이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무서운 것은 자신의 마음이 그처럼 올가미 씌어져서 더 이상 분별력을 잃거나 분별하지 못하게 되는 힘(마력)을
갖습니다.
연약한 줄로 감기려 할 때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그 줄을 끊어버려야 하지 그 연약한 줄이라도 찬찬 많이 감기게
되면 도저히 끊을 수 없다 하지요. 그래서 '정죄'는 큰 함정의 길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
라'(롬 12:2)
오직 '분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1) '생명의 성령의 법이 ...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롬 8:3)
2)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막 14:38)
3)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조심하라'(히 2:1)
4) '화 있을진저... 발람의 '어그러진 길' 로 '몰려 갔으며'...'(유다 1:11)
이것은 자칫하면 당을 짓거나 편당이 되기 쉬움을 말합니다. 사람의 죄성은 이 일에 연약합니다.
그 '정죄'가 하나님을, 하나님의 사업을 정면 도전하거나 돌격하는 경우도 역사에는 있어왔습니다.(슥 3:1-5)
'그럴듯한 말'에, '인정상의 말', '편당이 된 말'에' , '손익이 걸리는 일에 조심해야 하겠지요.
재판도 양편의 말을 공평하게사려깊게 듣고'...'증거'를 찾아 명백하게 합니다.
'분별력'이 없는 '고지 듣기'는 굼물 중에 금물입니다.
보장의 말씀이 있을까요?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 신앙의 '요새'이며 '보장'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슥 8:8 하단),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
아올찌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슥 9:12)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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