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쓴 라오디기아교회 연구(계3:14-22) : '볼찌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1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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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기아교회 기별의 핵심, 혹은 열려있는 해결의 통로는 무엇(무슨 말씀)일까요? 결코 진단
이나 처방에 대한 긴 3:14-19절까지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3:20-22절까지 입니다.
이것이 라오디기아시대의 출혈증이나 혈전증을 처방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칭의나 성화
의 길이요 믿음의 의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
어 먹으리라'
주님은 최선의 길을 제안하시되 강요하지 아니하십니다.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 언제라도 주님
의 본의입니다.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있기를 바라는 것이 주님의 본뜻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 7절)고 했습니다. 라오디기아교회의 급선무는 개인적으로 주님을 마음 속 깊이 모시고 그분
을 사랑하며 교제하는 그것입니다.
'나는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격이 없는 만족한 교제란 마치 음식을 서
로 같이 나누는 영적인 교제 자체가 최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는 심각했던 병증의 진단
이나 처방이 다 끝나고 이루어지는 모습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분의
만남의 신앙은 성경진리의 성찬의 진수를 이루게 하십니다. 죄인이 영으로 거듭남의 칭의와 성
화를 일구어 냅니다.
그래서 20절에 나타난 이 기별이 성경의 모든 진리를 아울리는 삶의 기별일 뿐 아니라 21절에
나타난 보장의 진리로 라오디기아 신자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 21절의 기별은 정점을 보이
는 기별입니다. 당시의 모든 크고 작은 도시 국가나 나라들의 싸움을 보고 승리의 영광이나 패
배의 쓴잔을 마시는 것을 라오디기아인들은 많이 보아온 실물교훈이었습니다. 역시 오늘날의
선악의 대쟁투에서도 이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기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기기로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 싸움에 참가하고 있는 바 우리가 이 싸움에 실패하여 패배한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
해 보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로 말미암아 지불된 영생을 가히 잃어버릴 것이다.'(1903.
편지 1)
'요한은 이 교회가 세상 권세와 더불어 마지막 큰 싸움을 하는 것을 보았으며 동시에 그는 충실
한 자들의 최후의 승리와 구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또한 교회가 짐승과 그의 우상과 더불어 치
열한 투쟁에 들어갔으며 그 짐승의 숭배가 죽음의 고통을 조건으로 강요되는 것을 보았다.그
러나 그 전쟁의 치열한 연기 넘어로 그는 어린양과 더불어 시온산 위에 있는 무리를 보았는데
그들은 그들의 이마에 짐승의 표 대신에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다시 그는 짐승과
그 우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자들이 유리바다 위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로 모
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교증 5권 752-753)
라오디기아 기별에서도 다른 교회 기별과 같이 마지막으로 '귀있는 자는 성령의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2)라고 썼습니다.어쩌면 마치 정체나 베일을 벗고 나타나듯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영으로 말씀하시는 그 세미한 음성은 영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자에게 그 세미한 음성을 '들을찌어다'라고 기대하고 선포하면서 라
오디기아기별을 끝냅니다.
라오디기아교인들은 이 기별이 무슨 곡절이 있는 기별처럼 심각하게 신경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라오디기아기별은 승리에 대한 보장의 기별 자체입니다. 역시 여전히 믿음
은 순종으로 부여잡는 승리인 것입니다. 또 믿음의 조상들은 그렇게 알고 믿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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